말쟁이_30대
그 얘기, 저번에도 들었는데요…
꼰대들이 가진 여러 특징 중 하나는 ‘했던 이야기 또 하기’다.
본인의 리즈 시절(검증되지 않은) 영웅담을 매번 반복한다.
죽을 뻔한 이야기,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성에게 얼마나 인기 많았는지…
분명 지난번에도 했던 얘긴데, 또다시 구간 반복 재생된다.
나도 그랬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사람들을 위로해 준답시고 만나기만 하면
내 가난했던 시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아픈 과거를 늘어놨다.
눈물이 안 나면 허벅지를 꼬집어서라도 짜내야 할 판이었다.
아, 이거 뭐지…
스무 살에 벌써 꼰대가 되어버리다니.
당당하게 말은 잘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 내용이 부실했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미래를 향한 건설적인 방향도 없었다.
그냥 임기응변만 늘었다.
그때그때 사람들을 얄팍하게 위로하거나 위기를 모면하는 기술만 늘었을 뿐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다 보니,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우… 말 잘하네. 번지르르르르.”
내가 속해 있던 직장, 동아리, 모임들의 리더들은 하나같이 말을 잘했다.
적절한 비유, 시간을 버는 말기술,
심지어 본인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임기응변으로 떠올려
팀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기도 했다.
팀원들이 당황할 틈도 없이 회의가 소집되고,
새 아이디어는 강화되고 정당화되며,
얼레벌레 분위기에 모두가 끌려간다.
이 흐름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얼마 안 가 퇴사의 뜻을 밝힌다.
말빨 팀장의 파워는 실로 대단하다.
말빨 하면 또 종교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본 어느 스님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을 하더라.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말 진짜 잘하시네.”
기독교 목사님들도 마찬가지다.
성경 해석을 기가 막히게 하시고,
웃다가 울게 만드는 설교는 정말 예술이다.
물론 모든 스님과 목사님들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비도덕적 행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타고났든, 훈련의 결과든,
말 잘하는 건 정말 큰 재능이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말 잘하는 사람들이 점점 싫어졌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휘감고, 통제하려는 느낌 자체가 거부감이 들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상처받은 적도 많아서 그런가.
그냥… 치가 떨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말쟁이를 싫어하는 걸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가? (뜨끔)
나는 말을 많이 할 때가 언제였을까?
내 결함을 가리기 위해 미사여구로 포장할 때
불안을 감추기 위해 과거를 들먹이며 여유로운 척할 때
계획이 없는 데 있다는 듯이 말로 때울 때
결과물이 없으니 ‘하지 않은 것’의 의미를 뭔가 있어보이게 철학적으로 말할 때
상대가 대단해 보일 때, 태연한 척하며 말을 돌릴 때
내가 한 일이 스스로 대견해서 흘러나오는 말의 홍수
말이 많은 순간을 설명하다 보니 말이 많아졌다.
진심도 실천도 없이, 말빨과 포장으로 어떻게든 굴려보려는 사람들의 모습. 바로 내 모습이었다.
역사 속에도 많았다.
소피스트들.
궤변으로 청중을 사로잡던 고대 그리스의 말쟁이들.
아우, 정말 싫다.
물론 말이 필요한 순간은 있다.
임기응변도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결국,
진짜 실력이 아닌 임기응변으로 처리한 일은 언젠가는 뽀록난다.
그게 일주일 뒤냐, 한 달 뒤냐의 차이일 뿐이다.
표현 하나 제대로 못하던 내가
이제는 말로 사람을 설득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된 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 말로 나를 과대포장하거나 스스로를 기만한다면?
그건 정말 볼품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실력을 키우자.
결과로 말하자.
삶으로 보여주자.
성장한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지,
뭔 말이 그리 많은가.

그리하여 난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기로 맘 먹게 되었다는 옛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