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에 이러고 있다(3)

다행_20대

by 조운생각
감정이라는 큰 방에 사는 우리들

만약 당신이 깊은 산속에서 갑자기 뱀을 만난다면, 어떤 반응이 먼저 떠오를까? 차분히 멈춰 서서 독사인지 아닌지 이성적으로 분석하려 할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공포가 온몸을 휘감아 도망치고 싶어 질까? 또, 지하철을 걷다 누군가 어깨를 세게 쳐 지나가면,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애쓸까, 아니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내고 싶어 질까?


나는 감정의 동물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마음속에서 먼저 솟아오르는 감정이 나를 이끌고, 그 후에야 머릿속에 이성이 들어와 하나하나 질서를 잡아간다.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감정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련다.

파스칼(17세기 프랑스 철학자)

“심장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


키르케고르(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불안과 열정이 인간 존재의 핵심”


그들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삶의 근본임을 주장했다.

이처럼 감정은 우리 내면의 큰 방, 그 안에서 이성이 책처럼 펼쳐지는 공간이다. 이 방의 분위기가 강렬할수록 이성은 때로 뒷전에 밀리며, 우리를 진짜로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성은 그 방안의 책장에 꽂혀 있다가 한 번씩 꺼내서 방을 정돈할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물론 잘 활용하면 방 정리뿐 아니라 방을 확장하고 방의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게 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어지럽혀진 감정의 방

어린 시절, 나는 이성이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내면이 복잡해질 때마다 눈물만 터져 나왔다.

기쁨도 슬픔도 억울함도, 그 모든 감정이 뒤엉켜 방 안을 어지럽혔고, 어쩔 줄 모르던 나는 틱장애까지 겪게 되었다. 미친 사람처럼 킁킁 소리를 낼 때, 그건 억눌린 감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신호였다. 감정의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혼란스러웠고, 나는 그 안에서 무기력하게 갇혀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감정은 여전히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미로 같다. 나만 이런 걸까?


딸들을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이 보여서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딸이 울고 있으면 다가가서 여러 가지 감정들의 보기를 들려주고, 그중에 제일 가까운 것을 골라보라고 한 다음, 아빠가 겪었던 일들 중 딸의 공감을 살 만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리고 안아주며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속상했지?’ 토닥인다. 딸들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점에 들러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9살 마음사전>을 보고는 딸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얼른 지갑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책들이 좀 더 알려지고 많이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딴 길로 샜다. 암튼.


어릴 적 경험들을 되새기며 나는 깨달았다. 감정 표현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구 하나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수학이나 과학을 배우지만, 내면의 방을 정리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감정의 혼란을 다스리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면, 내 방은 덜 어지러웠을까?




감정 표현의 깨달음과 타인에 대한 영향

사촌형과 함께 1년을 보낸 나는 점차 입이 트이기 시작했다. 기쁨, 분노, 행복, 억울함, 감사함 같은 감정을 하나씩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오랜 시간 응축된 감정들이 진한 액기스처럼 흘러나와, 처음엔 나 자신만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들이 나를 ‘도인’이나 ‘재야의 고수’처럼 여기며 다가왔다. 10대였던 나는 동아리 회장으로 추대받았고, 고민 많은 친구들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귀찮다는 듯이 쉽사리 정답을 주려 했지만, 나는 그들의 현재 상태와 감정 상태를 조심히 읽어내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타고난 내향형인 나는 상처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았다.

이미 생채기가 많은 나는 다른 곳에서 풍기는 상처의 냄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러다 외향성을 덧입게 되자 이제는 그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공감했다.

이 과정에서 내 감정의 방이 열리며, 타인의 방과 연결되었다. 내 아픔이 다른 이를 위로하는 힘이 된 순간, 그 연결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공감의 힘과 한계

억눌렸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끔은 불쌍한 나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배고픔과 학대 속에서 감정을 삼켰던 기억은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아픔 덕분에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그들 편에 서서 말없이 위로한다. 때로는 공감 능력이 너무 커져 그들의 아픔이 내 가슴에 스며들 때가 있다.

친구의 깊은 슬픔을 덜어주려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억울함이 내 분노로 변할 때면 내가 다 지친다. ‘내가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려 하지만, 마음은 자꾸 그들을 향한다. 이 끌림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아마도 내 방에 쌓인 경험의 조각들이, 타인의 방과 맞닿아 공감이라는 다리를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힘은 기특하지만, 때로 나를 지치게 하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이성으로 감정의 방을 다듬기

아픔을 가진 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은 커졌지만, 감정만 풍부해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공부가 필요했다. 서점에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펼쳐 읽으며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재미를 발견했다. 조금씩 감정의 방을 이성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아픈 놈이 고친다 했다. 내가 겪은 아픔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힘이 되었다. 모든 경험을 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도전하며 다양한 삶을 살았다. 눈물 많고 감정에 휩쓸리던 나는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부터 점차 적극적이며 이성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이성은 감정의 방을 다듬는 책처럼, 혼란을 질서로 바꾸는 도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지키며 타인을 돕는 균형을 찾아갔다.


과거를 찬찬히 되돌아보니, 배고픔, 학대, 무기력 속에 널브러진 감정 조각들이 보였다. 처음엔 그 조각들이 보기 흉하게 느껴졌지만, 어느 날 문득 그것을 예술로 승화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지 않은 재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곳에 쓰려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겠냐는 자신과의 대화였다. 한 번은 억눌린 감정을 소설로 써보았다. 펜을 잡은 손이 떨렸고, 미완성 소설을 읽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러운 습작에 지나지 않은 그 소설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진 않았지만 왠지 내 감정의 방이 좀 더 정리된 느낌을 받았고 그걸 심리학에서는 내적 치유(트라우마 회복)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의 방에 갇혀 있던 나는 이제 정리된 그 방문을 열어 다른 이들을 초대하고. 혹은 다른 이의 방에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그때쯤 나는 남부럽지 않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말 한마디 못하던 꼬맹이가 이젠 누구를 만나든 넘치는 자신감과 언변을 가지게 되었으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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