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무 Jul 31. 2022

내공

“내공이 나쁘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한번씩 듣게 되는 내공이야기들..

그놈의 내공이 뭐길래

병원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표현이 있지만, 주로 당직때마다 응급환자가 밀려오거나, 환자가 계속 나빠지거나, 유독 환자가 하필 그 사람이 당직인 날 무슨일이 생기면 “내공이 안좋다”, “환자를 탄다" 또는 “전생에 무슨죄를 지었길래" 등의 말을 듣게 된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은 환타를 먹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아시는가, 환자를 타기 때문에 절대 마시지 않는 다는 불문률아닌 불문률이 있기도 하고, 과마다 다르지만 “오늘은 환자가 없네요"라는 말이 금기인 응급실이나, 응급 분만이 생길까봐 치킨을 시키지 않는다는 산부인과 처럼 미신과 같은 내공관련 이야기는 하다보면 끝이 없다.


나 역시 내공이 안좋은 편에 속한 전공의, 전임의였다.

외과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수술장에서 12시를 넘겨서 맞았고, 심지어 군병원에서 근무할때도 그랬다. 

물론 나보다 훨씬 안좋은 레전드급 동기들이 있어서 다소 묻히긴 하였지만, 전공의 시절 덕분에 많은 장비와 술기를 배우게 되는 측면에서는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물론 본인은 당직때마다 초죽음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게 다 피가되고 살이되는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공이 미친듯이 좋은 사람도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이 사람만 당직을 서면 응급실이 조용하고, 중환자실에 환자를 내려본 적이 없어 4년간 인공호흡기를 걸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고, 왜 동료들이 외과계를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남들이 밤새 일을 할때 당직임에도 꿀잠을 잔 동기도 있었다.


아무튼 내공이 역대급으로 안좋은 사람들은 늘 자책감에 시달린다. 전공의 1,2년차들에게 선배들은 별 뜻없이 놀리려고 하는 말이지만 당사자들은 정말 본인때문에 환자가 안좋아지거나, 응급수술을 계속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하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때도 있다(물론 나도 그랬다..)

실제로 내공이 안좋은 전공의 선생이 턴교대를 하자마자, 멀쩡하던 환자들이 피가 나서 응급지혈술을 일주일 내내 돌아가며 하거나, 뇌사자 간이식이 계속 생기는 일이 생기면, 내공따위 믿지 않는 다는 사람도 어느정도 수긍을 하게 된다.


이번달 우리 전임의도 그렇지만 같은 병동을 쓰는 이식혈관외과 전공의는 역대 급 내공을 자랑하는 친구다. 두달 전 우리팀을 돌았을 때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환자들이 넘쳐났으며, 그 와중에 뇌사자간이식도 많이 생겨서,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늘 겪는 일인냥 힘들지만 헤쳐나갔던 기억도 잠시…


아무튼 이번달 신장이식이 거의 매일 생기는 통에 거의 체력이 바닥나서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저 친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지…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익숙한 듯 자조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선생님...전생에 저는 아마도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옵니다…”


내공이 나쁜 친구들에게는 그래도 늘 힘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곤 한다. 지나고 나면 그것들이 자네들을 더 성장시켜 줄 거라고, 실제로 나도 2년차 즈음에 나름 외과에서는 ECMO와 CRRT, ventliator등등을 제일 많이 돌려본 지라 동기나 후배들을 많이 도와주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그 정도를 가뿐하게 넘는 내공나쁜 후배들을 보면서 … 흠.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연속된 뇌사자신장이식에 지쳐 키보드에 손을 올린채로 기절한 이식혈관외과 전공의 A,그를 바라보는 Pf, Hong

미신같지만 전공의 전임의 시절을 다 마치고 나면 이런 내공이야기만큼 재미있던 추억도 없는 것 같다.

SNS에 가끔씩올라오는 몇년전 추억 들에 당시 이야기들이 가끔 올라오면 추억도 돋고, 한번 다시 그 때 생각에 잠겨보곤 하는 것 같다.


월요일에 들어가서 금요일까지 계속된 뇌사자 간이식으로 나오지 못했던 기억속에 사라진 일주일 이라든지, 매주 주말마다 응급수술환자를 받아서 치프선생님을 고통스럽게 했던 추억이나, 그때는 진짜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지금 읽어보면 그래도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도 뇌사자가 하나 생겼다가 취소되었다. 안좋은 대기자들이 있어서 늘 긴장속에 있지만 그래도 며칠 간 내공이 줄줄새는 전임의 선생턴이라 힘들었다가 잠시 숨돌린 틈에 이렇게 끄적여본다.


JY 전임의 선생 내공이 나쁜 만큼 크게 성장하길, 그리고 매일 신장이식으로 고통받는 전공의 A선생도 전생에 지은 죄를 어여 씻고 전문의가 되어 행복한 삶이 되길 비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격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