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2 : 온정의 시야
봄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교실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방학에도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따금 교무실로 나와 당직 근무를 했을 뿐이었다.
교실 문을 열자 낮은 목소리로 조잘조잘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2월은 대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없는 달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긴장감이 있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살짝 올려 입을 열었다.
" 안녕 여러분, 다들 겨우내 잘 지냈나요?"
걷은 프린트들을 팔락팔락 넘겨보았다. 과제라고는 하지만 다들 책 참 열심히 읽었구나, 미안하다, 나는 겨울동안 드라마 정주행밖에 안했단다. 어쩐지 머쓱해진다.
그렇게 주욱 넘기다보니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이상의 날개를 읽고」
날개? 내가 아는 그 이상의 날개를 읽었다고? 난이도도 주제도 여러모로 생각해보아도 이 나이대 아이가 읽을 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읽은걸까.
나는 홀린듯이 그 글을 바로 집어들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독후감의 형식이 아니었다. 날개의 내용도 직접적으로 나와있는 것은 없었고, 느낀 점은 더더욱 나와있지 않았다. 사실 그 글을 독후감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것은 외려 소설의 작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날개의 내용은 그 책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장치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종로에서 서울역을 지나 신세계백화점 본점까지 걸어가는 듯한 묘사가 생생하게 녹아있었다. 직접 가본건가? 정말로 잘 쓴 글이었다. 결코 열세살이 쓸 어휘와 문장력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인터넷의 표절률 검사기를 켰다. 텍스트로 긁어서 붙여넣고 검사 버튼을 눌렀다. 초조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 일 분, 이 분... 삼 분 정도 지나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표절률은 삼퍼센트였다. 하물며 대학교 레포트도 대개 십퍼센트까지는 허용이 되는데 삼 퍼센트는 정말 낮은 수치다.
창가에서 정말 하이얀 날개를 가진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았다. 선명하게 검은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꼿꼿하게 목깃을 세우던 그 새는 이내 담담하게 날아가버렸다.
애가 타도록 붙잡고 싶은 것이 늘어간다. 소중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