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3 : 휘림의 시야
남산 자락 뒷골목에서는 늦은 오후면 아스팔트 도로 위에 깨진 회반죽 조각이 데골 구르는 소리가 바닥을 쓸어간다. 탁탁 소리를 내며 다방 골목 언덕을 웬 아해가 숨가쁘게 달음박질 치매 올라온다. 아해는 번잡해진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 인근의 갈림길에 발길을 턱 하고 멈춰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헉헉거릴 때마다 목젖이 당기듯이 아팠다. 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정신이 혼곤해지는 모양이 머잖아 쓰러질 것만 같이 아찔하다. 아해는 이곳에 오기 위해 부지런히 땅을 박차고 바람을 갈랐다. 두 갈래길의 왼 편은 S여대 별관으로 향하는 계단 초입이었으매 오른편은 아스팔트 우에 붉은 페인트가 성의없이 이어진 비탈길 표면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오른편의 페인트 자국은 어데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목적없이 잘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겉는 길 끝에 무엇이 있건 상관치 않고도 지금으로부터 더 먼 사건의 지평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라도 가면 되었다. 어쨌든 멈추는 법은 없었다.
아해가 이런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해는 자신이 사는 곳을 썩 사랑하지 않았다. 아해는 남산 자락에 자리한, 필동 방면을 바라보는 주택가에 살았다. 남산에서 큰 길로 내려가면 을지로에서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다차선 대형 도로가 이어진 큰 사거리가 나왔다. 을지로 일대는 고층 건물이 죽 늘어섰고 그 사이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오가곤 하였다. 거기서 명동 성당을 가로질러 대각선 방향으로 직진하면 명동의 중심 거리였는데 이 지역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가는 상점가였다. 남산 자락의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보아도 아해가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번잡한 거리였다. 아해는 늘상 횟빛 거리에서 서성이며 모종의 소속감을 갈망하고 있었다.
아해는 가만히 숨을 고른다. 숨을 고르며 시간을 걸어간다.
저 산 너머, 그러니까 대충 어림잡아 이천십오년 언저리로부터 바람이 불어들었다. 이 걸음, 아해는 스믈입곱살 남짓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이천십일년, 끝모르게 걷노라면 이천사년... 몇년이고 걷다보면 전생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붉은 페인트 길 쪽으로 들어섰다. 다방이 늘어선 언덕을 걸어내려간다. 중간에 나오는 샛길로 발걸음을 꺾는다. 걷고 걸으매 또 걸었다. 이어지는 비탈길을 따라 마침내 남산 삼호 터널 의 요금소 근처에 당도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근에 큰 건물이 몇 있었지만 사람이 많지는 않아 퍽 고요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온 듯 하다.
아해는 요금소 곁 승강기 정류장에 있는 쉼터에 가 털썩 앉았다. 땀방울이 선명하게 주륵주륵 흘러내리며 가슴께와 등을 푹 적시고 있었다. 그러니 얼굴로 맞부는 매캐한 바람조차도 제법 시원하게 느껴졌다.
자아, 낯선 길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또 어데로 가볼까.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 뒤편 동호대교와 지면을 잇는 육교 초입 앞에 가 섰다. 은행나무에는 별안간 다갈하게도 누르런 빛이 들었다. 부유 사이에서 부유하는 이에게 그만하면 참으로 적절한 안식처였다.
아해는 그 곳에서 한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뭇길 뒤편 아파트 단지로 돌아들어 벤치에 앉았다. 낙엽이 요람처럼 쌓인다. 벌레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시야에 벌레가 들어오기 전에 생각을 빨리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버리는 편이 낫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아파트 단지 풍경은 기억의 내용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었다. 아해는 정말로 답습이 좋았다. 그 시절에는 답습할 것조차 없으리만치 어렸기에 답습을 몰랐을 뿐, 내일에서 온 아해는 정말로 답습을 좋아했다. 후일의 아해도 여전히 여기 앉아있는 것은 아니런지.
' 결국 언젠가 때가 오거든 이 정경 밖으로 다시 나가보아야 하는건 아닐까.'
지금껏 걸어온 길마따나 아해는 이 곳 밖의 풍경을 수 없이 보았다. 아해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졸업할 때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무수한 환승의 연옥을 돌았다. 아해가 다닌 학교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 있었고, 어른이 된 아해는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거진 절반 이상 외울 수 있었다. 이제 아해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학창 시절의 아해는 늘 더 먼 곳에 가고 싶었다. 더러는 버스나 전철 따위를 잘못 타는 실수조차 즐길 정도로. 그럼에도 어인 일인지 어른이 된 아해는 그저 이 풍경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아해의 경험치란 그저 학창 시절에서 끝난 것일까? 아니면 아해가 사는 이 땅이 너무 좁아서 가볼 만한 곳은 정말로 이미 다 가봤던걸까.
발치에 비둘기가 와 앉는다. 새에게도 둥지가 있잖은가. 사람이 접근 할 수 없는 곳에 둥지를 트는 까닭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 누구에게나 집이 있다. 아해에게도 집이 있다. 하지만 작금의 풍경은 지금의 집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해에게 있어 이 곳은 다시 떠나야만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집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해는 대체 어데로 가야하는 것인지 통 알 수가 없다.
결국 엉덩이에 묻은 낙엽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아, 이제는 어데로 가야하나... 어데로 가볼까가 아니었다. 어데로 가야하나였다. 아해는 결국 다시 가야만 했다.
아해는 인근의 버스 정류장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류장 의자에 앉기 전에 버스 대기 시간 안내판을 보려 살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일전에 만났던 비둘기가 별안간 안내판 우에 앉아 여독을 푼다. 꽤나 오래 날았던 모양인지 날개가 제법 낡고 깃털이 앙상하다. 그 밑으로 화면에서는 버스 대기 시간이 화면을 흘러간다.
' 사백칠십이번, 십분... '
...이상은 미쓰코시 백화점(*오늘날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에를 갔다. 나는 그 사람을 좇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정표가 현실에 있지 아니하더라도 내가 유일하게 길을 아는 거리로. 구분 여를 기다린 끝에 사백칠십이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압구정동에서 유일하게 단번에 종로 방향으로 가는 버스다. 정확히는 을지로 입구역까지 가서 신촌으로 방향을 꺾는 노선이지만, 을지로에서 내린다면야 거기서 종로까지는 대강 십오분만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 성 싶었다. 평일 오후의 간선 버스는 빈 자리가 많았다. 방학이니까 달리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타지 않아서 그런 듯 싶었다. 좌측 차창 너머로부터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우측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열었다. 이 방향으로 앉아야 한남대교를 지날 때 창문을 열어둔 채 강변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이 버스는 가장 우측 차선으로 가기 때문에 한강을 볼 수 있다는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버스는 신사중학교를 지나 잠원동 앞에서 빙글 돌아 한남대교 남단 초입에 들어섰다. 좌측의 신사동에서 잠원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변이 늘어서 있었다. 잠원동 한신 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재개발을 했는지 처음 보는 신축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있었다. 익숙하던 정경이 테세우스의 배처럼 한조각 한조각 차츰 바뀌어간다. 조그맣던 돛단배는 어느덧 대항해시대의 범선이 된다. 선수 우의 높디 높은 갑판이 아해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기시감을 느낀 나는 버스가 덜컹하는 새 차창에 고개를 처박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둠 속에서 발 밑으로 얕고도 널따란 진동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것은 육지의 것이 아니라 철골 구조물의 떨림이 전해져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뜨니 다리 밑으로 유달리 웅장한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지평선 방향으로 항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더 속도가 빨랐다면 능히 파도가 쳤을테지. 한강에서는 이토록 많은 각자의 풍경이 맞부딪히며 파랑을 낸다. 그렇게 모래톱을 깎아간다. 언젠가는 정말로, 정말로 큰 바다같은 강이 되어 범선도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그리 생각하니 스스로가 작은 물고기같았다. 수면에 잠긴 거대한 범선들의 중심축 사이로 애써 여린 물결을 가르며 유영하는 물고기...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그 순간 실감하게 되는건 바람결일까 물결일까. 숨은 참게 되는 것인지, 막히는 것인지.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기회로다... 다만 호기심을 해결하기에는 지금 온몸이 박동하고 있었다. 호흡하고 있음을 너무나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한 그것을 기회라 부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는 물이 아니다. 파랑이 이기를 바라보았자 바람만이 부는 공중.
그리 생각하는 순간 별안간 소나기가 쏟아져 나렸다. 그리 생각했노라면 지금 헤엄쳐보아라.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되는 법이 아니느냐. 빗방울 튀는 소리는 언어가 되었다. 언어가 아닌 것이 언어가 되는데- 안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어쩌면 을지로까지 돌아갈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연어라고 믿었던 몸이 차가운 비에 창백해져간다. 언뜻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벌겋고 힘찬 연어같았지만 돌고돌아 물결을 따르고 마는 민물고기. 그것도 바닥에서 가만히 창공을 관조하며 흘러가는 가시고기... 아해가 원하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되려 도착하고 나면 다시 움직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파도처럼 덮쳐든다.
아해는 숨을 한껏 들이킨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는 나머지 입 안에 물 한 모금이 고였다. 버스 좌측면 차창이 열린 틈새의 창틀을 손가락에 힘을 주어 움켜쥔다. 아해는 가슴부터 있는 힘껏 온 박동을 내던진다. 그게 꼭 이천이십삼년 팔월 삼십일일 늦여름 저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