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 문제 아동이 한 사람의 어른이 되기까지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문제 아동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저는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며 일상을 보내는 작가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대단히 큰 사고를 치는 비행 청소년도,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고, 또 평범하다기에는 또래에 비해 우당탕탕 다소 시끄러웠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브런치에 학부모들의 육아 관련 에세이가 올라오는 것을 읽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저는 바로 그 아동 입장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더군요.
그런 아이들이 어떤 도움을 통해 정상적으로 성장했는지 들려드린다면 학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작은 기대를 안고 글을 시작해봅니다.
관심사에 대한 지지
중학생은 사춘기 시기인 동시에,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학생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구체화하며 마음에 드는 정보를 탐닉합니다.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습니다. 만화만 보느라 공부는 뒷전이라 늘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날이 지금도 눈 앞에 선연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만화가 꽤 많은 일들을 시작하는 계기였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고, 자막 없이 만화를 보고 싶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사실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혼자서 이리저리 그려본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었고, 일본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아야했거든요.
저는 열심히 그림을 그릴 열정도, 일본어 공부를 위해서 한자를 달달 외울 정도의 의지도 사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리 끝에 그냥 수업 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결론이 이상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셨고, 한자어를 제일 익히기 쉬운 방법은 그냥 학습 과정에서 한자를 접하는 것이었어요. 그냥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정도를 넘어 방과후 학교나 방학 보충 수업에 해당 과목이 있으면 신청했습니다. 도서실 부원같은 봉사를 하면서 선생님과 안면을 트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요지는 개인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기에, 때로는 학생들이 탐닉하는 분야가 공교육 범주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탐닉이 학생의 성적 향상에는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탐닉을 저의 주변 어른들은 용인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마음껏 탐닉하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제 취향을 확립하고 정신적 성숙의 토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제 성장의 토대는 이러한 방황을 믿고 지켜봐준 어른들의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의 관심이 학생에게 유해한 방향으로 뻗는다면 보호자와 교육자는 응당히 개입해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주변의 어른들이 지켜봐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로 가더라도 서울로 갈 수 있고, 미처 생각치 못한 지점에서 일이 잘 풀리기도 하니까요.
사실 저 역시 그렇게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해서 성적이 대단히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해당 과목의 성적이 높지 않더라도 꾸준히 흥미를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그 태도는 제가 훗날 고등학교 3년간 국어와 사회탐구 과목을 학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훗날 현역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게 되었어요.
개인이 가진 흥미와 애정만큼 커다란 원동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는데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돌아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황이 가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적절한 사제관계
또한 이러한 흥미가 가져다 준 두 번째 선물이 있다면 제가 선생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본디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치마를 줄이길래 저도 치마를 줄였고, 수업 시간에 자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가끔은 대들다가 혼나기도 했어요.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나를 사람 만들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사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혼내는 이유는 단 하나,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의도와 달리, 자주 혼나는 학생은 ' 혹시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시나?' 라는 생각에 더 엇나가기 쉽습니다. 선생님은 응당히 해야 할 일을 하셨는데 상황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죠.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훈육을 그만두신다면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자주 혼나는 학생에 속했음에도 탈선 없이 무사히 학창시절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이유가 내심 궁금했습니다. 똑같이 혼났는데 누구는 괜찮았고 누구는 안괜찮다고 한다면, 그 차이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한 것일까.
저는 선술한 경험들 덕분에 혼난 경험을 덮을 만큼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여유를 주었습니다. 또한 제가 공교육에 의존하며 학업을 이어가다 보니 평소에 선생님들과 교류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유대관계가 잘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선행 절차들이 있었기에 선생님의 훈육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가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대체로
' 얘가 아직 규칙을 잘 못 지키지만 선생님을 무시할 생각은 없구나. 나한테 더 배우고 싶구나.'
라는 시선으로 보시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제 잘못된 지레짐작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선생님들이 저를 싫어하셔서 혼내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위 간절함이나 근성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도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그 빈 자리에 타인의 조언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선생님들께서 저를 좋아해주셨다고 해서 저의 훈육에 소홀하신 적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버릇없는 말을 할 때에 선생님들은 언제나 "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을 쓰면 안되지." 라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셨습니다.
제가 " 에이 ㅎㅎ 알겠어요~" 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선생님께서는 훈육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반드시 제가 이러이러한 점에 대해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해야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인격적으로 무시당한 적은 없으며, 훈육이 끝나면 선생님도 저도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두서 없는 글이지만 이 글이 ADHD 아동의 부모님이나 교육자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아동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