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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Feb 11. 2023

홋카이도 2.

조 시장의 카이센동

식도락 여행은 아니었지만, 딸아이의 먹거리 계획은 세밀했다. 3일째 아침은 카이센동이었다. 아침 일찍 나와, 사실 거의 새벽같이,  니조시장으로 갔다. 니조시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노량진 수산시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점포들은 대부분 문을 열고 있었고, 아침을 먹기 위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시장에는 두 종류의 점포들이 있었다. 하나는 건어물과 수산물을 파는 점포, 다른 하나는 카이센동 같은 음식을 파는 점포였다. 점포들은 역시나 예외 없이 좁았다. 아침밥을 파는 점포는 문이 없는 개방형태로 식탁 용도의 매대가 있고 매대 앞에는 작고 좁은,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덩치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앉고 싶을 것 같고 두 명 정도 앉으면 무리가 없을 듯한 크기인데 그 의자에 보통은 3명, 어떤 곳은 4명이 오밀조밀 끼어 앉아서, 팔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하며 덮밥을 먹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시장 안은 더 추운 것 같은데 온기 하나 없는 시장통 의자에 앉아 찬음식을 먹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동일본 대지진 때의 기사들이 떠올랐다. 지진이 멈추고 밀려온 쓰레기들이 산을 이뤄 마을을 덮은 채 몇 개월이 지났지만 누구도 쓰레기를 치우라고 정부에 항의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참고 있다는, 세계가 경악한 일본인들의 인내심에 대한 내용들, 몇몇 기사에서는 소리 질러도 돼, 아프다고 해도 돼,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었다.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추위나 좁은 의자쯤이야하지만 나는, 그런 인내심이 없고 사실 갖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 없는 음식이라도 좁은 의자에 끼어 앉아 추위와 싸우며 먹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딸아이가 목적한 식당은 시장 안 점포가 아니라 독립된 곳이었다. 일찍 서두른 덕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식당 안은 역시 노포였다. 지금까지 간 식당마다 종업원 수가 손님 수만큼 많은 게 또 하나의 특징이었는데, 이곳 역시 종업원이 아주 많았다. 종업원이 우리를 주방과 마주한, 일인용 독서실처럼 가림막이 되어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싱싱한 회와 새우 조개 등이 양념된 밥 위에 올려져 있는 카이센동이 나왔다. 이걸 먹기 위해 이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나온다 생각하니 인생이 약간 어이없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고가의 카이센동은 내 입 속에서 제 값을 했다.  


노보리베쓰!!!

오후 1시경 예약한 노보리베쓰행 버스를 탔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온천마을이라는 노보리베쓰는 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이었다. 아이는 일본에 왔으니 일본풍을 느껴보자며 료칸식 방으로 호텔을 예약했는데 다다미로 된 방에는 좌식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녹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항상 뜨거운 물을 따를 수 있는 포트도 코드 가까이 놓여 있었다. 일본인들은 집에서도 녹차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느낌 그대로였다. 장롱 안 서랍에는 유카타가 사이즈별로 들어 있었다. 유카타는 처음에는 귀족들의 목욕가운으로 쓰이다가 점점 일반으로 퍼졌고 어느 시기부터는 일상복이나 외출복으로도 자연스럽게 입게 되었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본 옷을 실물로 대하니 재미있기도 했지만, 허리띠로만 앞을 여미는 유카타를 입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에고이고,  온천욕장은 물론 식당이나 기념품 샵에서도 이 옷을 입은 한국인이 계속 보였다.

짐을 풀고는 고대했던 온천욕장으로 갔다.

온천욕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야외 온천욕장에 있는데 눈까지 나풀나풀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날씨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물은 세포 하나하나를 녹여낼 만큼 기분 좋게 뜨거웠다. 그 위에 내리는 눈, 이 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온천욕장에서 나와서 저녁식사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에서 죽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200년 전 폭발한 화산 분화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지옥계곡이었다. 이름이 왜 지옥계곡인지 궁금했는데, 포장된 길이 끝나고 첫 번째 가파른 산길을 올라 산마루에 이르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산마루에서 올라온 산길을 등지고 바라보니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분지가 발아래 펼쳐지고 굽이 친 봉우리들이  그 분지를 둘러싸는 형태로 연이어져 있었다. 멀리 있는 봉우리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발아래 바위로 뒤덮인 분지에서 솟아오르는 김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험한 바위로 뒤덮인 분지, 여기저기 녹지 않은 채 그대로인 하얀 눈, 그 사이에서 기세 좋게 피어오르는 연기, 자연이 주는 공포가 실감되었다. 지옥계곡은 더할 나위 없는 이름임에 분명했다.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이 데크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시간상 더 가는 것은 무리였다.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데, 넓지 않은 언덕 마루 끝자에 염라대왕으로 보이는 상이 있는 작은 사당이 보였다. 앞에는 촛불도 타오르고 있었다.

몹시 무거워 보이는 염라대왕을 여기까지 옮기고, 올라와서 와서 초를 켜고 다시 와서 초를 끄는 그 마음은 아마도 인간사에 대한 두려움 혹은 간절한 기원이었으리라…, 멀리 있는 산 정상의 희디 흰색이 눈인지 하늘인지 연기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들의 친절

노보리베쓰 호텔에서 딸아이가 체크아웃을 할 동안 나는 캐리어 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을 찾았다. 여행지 호텔 로비에는 저울이 있는 곳이 많아 이곳도 있을 것이라 여기고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도리 없이 데스크로 갔다. 아이의 계산이 끝나는 중이었다. 나는 데스크 직원에게 어설픈 일어로 여기에 저울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데스크 뒤쪽으로 가 30센티 정도의 조그만 막대기를 갖고 데스크 밖으로 나왔다. 그게 저울이었다. 그는 막대모양의 저울을 캐리어 손잡이에 넣고는 캐리어를 들어 올렸다. 곧 막대저울에 숫자가 표시되었다. 그는 내가 쉽게 볼 수 있도록 저울을 돌려 숫자를 보여주었다. 나는 일본에 가서 아무 곳에서나 마구 남발했던 예의 그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로 답을 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체크아웃 줄이 아주 길었다. 데스크에는 직원 두 명이 서 있었고, 각기 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직원이 우리 캐리어의 무게를 재는 동안 딸아이 다음 사람부터는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다. 차라리 나에게 막대저울을 내주고 직접 재라고 했으면하지만 직원은 기다리는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게 그들의 방식으로 보였다. 지금 응대하는 손님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하는 것. 그 방식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줄을 서는 여러 곳에서 경험했다. ‘빨리 고 다음 사람’,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그 방식이 일본에는 없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공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출국 수속을 마칠 때쯤 아이가 낭패한 얼굴로 모자잃어버렸다고 했다. 공항 어딘가에 유실물 센터가 있을 테니 어디 있는지 물어볼 요량으로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유실물 센터가 어디냐고 아이가 영어로 물어보니 젊은 공항직원은 왜 그러냐고 다시 물었다. 상황과 대비하면  의아할 만큼 긴 대화가 이어졌는데 공항직원은 영어가 부족한지 중간중간 패드를 꺼내 번역된 영어를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메모지를 내주며 모자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림까지? 아이가 모자를 그려주니 그녀는 박스 형태로 돼있는 안내실 문을 열고 나와 바로 뒤에 있는 로비 의자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가 유실물 보관센터에 연락하겠다고 했단다. 조금 있으니 직원이 우리에게 와 비슷한 모자를 보관하고 있어서 담당직원이 모자를 갖고 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딸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모자를 갖고 온다는 직원은 금방 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안내 여직원이 한 번 더 나와 지금 오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마침내 직원이 왔을 때 그 손에 딸아이의 모자가 들려 있어 아이는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뻐했다. 당연히 고맙기는 했지만, 이해하기는 힘든 방식이었다. 유실물 보관센터의 위치나 방향을 알려주면 그들로서는 더 수월할 텐데, 굳이 서로 몇 번씩이나 연락을 주고받고 직접 오기까지암튼 그들은 해당 손님의 요구를 끝까지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오더가 입력된 AI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최선을 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웃는 얼굴로 이미지 되는 친절한 서비스와는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었다. 무엇일까...? 실제로 도움을 주면서  미소를 띠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력하는 표정! 그들은 대체로 그런 얼굴을 하고 도움을 주었다.


여행을 마칠 때면 늘 처음에 가졌던 설렘의 충족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은 여기서 한 달이라도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의 모습이다. 아무 관심도 없던 것들에 관심이 생기고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궁금해진다. 홋카이도 역시 그랬다. 홋카이도라는 지역, 거기 사는 사람들, 그들의 생각,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이방인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홋카이도는 어디나 그렇듯 사람 사는 예사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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