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입맛과 미각은 조종이 가능하다.

'고기의 맛이 그립지 않아?'라는 질문에 대한 약간의 피로

by 샤인머스캣


이따금, 자신이 심히 좋아하던 음식을 먹고 심하게 체하거나, 식중독으로 고생을 하거나, 위경련이라도 겪고 나면 그 음식을 더이상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음식 고유의 '맛'은 변하지 않아도, 위처럼 인식과 경험으로 '입맛(flavor)'과 실제 느끼는 '미각(sense of taste)'까지도 변할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이라고 가정했을 때, 더 이상 맛있게 느끼지 않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더이상 맛있게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입맛(flavor)'은 인식이 개입하는 주관적, 감정적 요소인 반면, '맛(tasty)'은 미각이라는 생물학적, 감각적 요소다. 입맛과 맛(미각)이 크게 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상상 이상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단지 '나이가 드니 자극적인 음식이 별로 안 당기더라' 정도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다. 지금껏 쾌락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했던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유제품이 더 이상 내 입맛에 안 맞도록 하고, 이전만큼의 황홀한 맛이 느껴지지 않게끔 거대한 변화를 만들 수가 있다. 이는 단지 비건뿐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음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입맛과 미각은 분명 조종이 가능하다. '정확히 아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앎'으로 미각까지 달라져 같은 음식에서 이전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냐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다. 내가 뇌과학자는 아니지만, 뇌의 인식 변화는 미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을 몸소 했다. 일개 비건의 생체실험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공장식 축산의 실태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된 순간부터 육류 및 유제품, 난류가 '더 이상 음식으로 보이지(인식되지)' 않았다. 비건 아웃팅을 하면 '와, 어떻게 참아? 대단하다.', '육류의 그 기름진 맛들이 가끔 떠오르지(그립지) 않아?'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알면 행동할 수 있다. 행동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비건을 택했고, 더 이상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워하거나 참은 적이 없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음식에 섞여 입에 들어왔을 땐, 귀신같이 그 유쾌하지 않은 맛을 감지한다. 맛있지 않다.


채식을 하니 불필요하게 생명을 착취하지 않은 음식인 데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 보호에도 상대적으로 도움이 된다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 못한 음식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은 고착화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늘어날수록 내 삶은 더욱더 유동적으로 변하더라.


비건이 정도(正道)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가치와 삶의 선택이 일치하는 데서 오는 풍요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 운동하는 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