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사유지

by 고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가을쯤 열리던 백일장 대회에서 그림 그리기와 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난 대부분 글을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친구들이 그림 좀 그려달라고 줄을 섰던 같은 반 친구가 그린 풍경화를 보면 어쩐지 주눅이 들어 글쓰기를 고르게 됐다.


글은 찬찬히 읽어보지 않으면 잘 썼는지 못 썼는지 알 수 없고, 조금만 신중하면 꽤 괜찮게 쓸 수도 있었다. 가끔은 글쓰기로 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일 투성이었던 나에게 글은 작은 자부심이었다. 좋아하는 일이면서도 친구들보다 조금은 나은 편이라고 느꼈으니까. 열등감 덩어리였던 나에게 자신감을 준 이유도 있지만, 내가 글을 좋아하는 건 ‘진중함’ 때문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말로 할 때보다 글로 읽을 때 더 깊이 전해진다. 글은 쓸 때에도 ‘어떤 단어를 써야 오해 없이 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과 사려 깊은 마음이 더 들어가서인 것 같다. 그래서 맥락이 조금 어색하거나 서툰 글이어도 뜻과 마음이 충분히 통한다. 말에 힘이 있듯, 글에도 조용한 힘이 있다.


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준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고,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해 본 적 없던 것들에 대해 가만히 사유하게 한다. 그 사유의 시간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사유지’가 된다. 그곳에서 해방감을 얻는다.


처음엔 그저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가 내 글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발견해 주길 바라게 됐다.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가을밤 산책을 하다가, 주말 아침 천장을 바라보다가 든 생각들로. 그렇게 글로 이어진 마음들에 외로워도, 외롭지 않아도 ‘괜찮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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