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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Oct 16. 2020

뉴욕에서 Dog walker 가 되다

슬기로운 직업탐구생활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쳐보리라는 꿈을 품고 뉴욕에 도착한 지 4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 나의 일상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먹고, 점심을 뭘 먹을지 고민을 하고, 점심을 해 먹고 나면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일 외엔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가끔 마음을 먹고 내 인생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머리를 좀 굴려보려고 해도, 도저히 앞이 너무 깜깜해서 내가 가는 이 길 앞이낭떠러지인지 꽃밭인지 알 수 없었다. (feat. 지오디) 그저 엉거주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었다. 내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속도에 비해 나의 통장 잔고는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6년 간 회사생활을 하며 나름 열심히 돈을 모았다. 당장은 먹고 살 걱정하지 않고 천천히 나의 장래를 고민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는데, 뉴욕의 헉 소리나는 물가 앞에서 나의 찬란한 백수생활이 예산 부족으로 조기 종영되는 아침방송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럴 수는 없지. 용돈벌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와중, 뜻하지 않는 곳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송년파티를 했었는데, 그 파티에서 알게 된 사람이 요즘 독 워킹을 하며 부수입을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독 워킹이라니,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강아지도 만나고, 이보다 완벽한 직업이 또 있겠나 싶었다.



Dog walking이 직업?


먼저 미국에 온 언니가 몇 년 전 강아지를 입양했다. 하루에 네 번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시켜줘야 해서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산책을 시켜줄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거 내가 할 테니 나한테 돈을 주라는 얘기를 농담 삼아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체 왜 네 번이나 산책을 시켜야 되는 것인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돌아온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첫째로 화장실을 못 가고 참으면 병이난 다는 것과 (미국의 개들은 집에서 배변을 하지 않는다), 둘째로 좁은 집에서 해소하기 어려운 에너지를 산책을 통해 배출해 줘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개들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아 정말로 맞는 말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이유로 미국엔 독 워커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고, 이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와 독 워킹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https://barkpost.com/life/dog-walker-secrets/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이를 더 쉽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한다. 이동할 수단이 필요한 사람과 운전자를 연결해주는 Uber와 머물 곳이 필요한 여행객들과 빈 집을 가진 집주인들을 연결해주는 Air Bnb가 그러하다. 독 워커가 필요한 개 주인과 독 워커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있을까? 물론 있다.  Wag (꼬리를 흔다)라는 귀여운 이름의 앱을 이용해 개 산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앱에 가입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독 워커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만든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넘어야 했다. 목줄의 특성과 사용 방법, 혹시나 일어날 각종 사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제법 심도 깊은 질문들에 진땀을 뺐지만, 열심히 구글링을 해서 가까스로 수료증을 획득했다. 독 워커가 정식으로 되고 나면 독 워커를 찾는 포스팅들을 보고 매칭 요청을 할 수가 있다. 며 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Po라는 강아지와 매칭이 되었다.


주인을 만나 나의 강아지에 대한 애정과 경력을 어필하고 강아지와 인사를 하고 키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인터뷰(?)를 무사히 통과하고 어엿한 독 워커가 되었지만, 생전 처음 남의 개를 산책시킨다는 게 나름 부담되고 긴장되었다. 친구에게 부탁해 친구의 개를 대신 산책하며 예행연습도 하고, 유튜브에서 개 산책에 대한 비법들을 찾아보면서 첫 산책을 준비했다.



솜사탕같이 밝은 Po,  쓸쓸한 기관차 같은 Frank


Po는 손 끝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보다 조금 작은 몸에 검은 털과 하얀 털이 섞인 바둑이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12시부터 12시 반 까지 30분가량을 산책시키고 소변과 대변을 보게 하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활짝 웃는 그 특유의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고, 내가 떠날 때면 언제나 가지 말라며 떼를 쓴다. 기분 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덕스러운 나에 비해 Po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나를 애타게 찾는 사람도, 외로운 마음을 기댈 사람도 없는 타지 생활에 지쳐가던 차에 Po는 나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데 자신감이 붙어 갈 무렵, Frank라는 개와 추가로 연결이 되었다. Frank는 제법 덩치가 있는 슈나우저였는데, 듬성듬성 난 털 사이로 앙상하게 뼈가 보였고 처음 본 나를 보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마 전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 깊은 눈동자를 통해 전달되었다. 아직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데다가 주인도 개를 키우는 것이 처음이라, 초보인 내가 졸지에 훈련사가 되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기관차처럼 앞으로 전진하는 Frank를 산책시키는 것은 Po를 산책시키는 것보다 몇 배로 힘이 들었다. 간식으로 유인도 해 보고, 큰 소리로 혼도 내 보고, 각종 트릭도 시전 해 보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기의 덩치는 생각하지 못하고 안아달라며 나의 무릎 위에 올라오는데, 그렇게 Frank를 어르고 달래다 보니 나의 마음도 덩달아 치유되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정말로.’


왼쪽이 Po, 오른쪽이 Frank



단순히 용돈을 벌어보겠다고 시작한 개 산책은, 짭짤한 수입뿐 아니라 축 늘어져 있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당연히 회사를 출근할 때에는 알지 못했다. 반복되는 산책 시간에 맞추어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살아가다 보니,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 두던 일들도 조금씩 진전이 되었다.



그리고, 봄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길가에는 꽃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겨우내 앙상하게 말라 붙었던 나무에 초록색 이파리들이 올라왔다. Frank의 털에는 점점 윤기가 흘렀고 가끔씩 장난과 애교를 부리는 등 이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산책 훈련도 점점 효과를 발휘해 옆에서 얌전히 걸어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나의 인생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고, 계약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고,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쉽지만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를 긴 터널도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듯이, 나에게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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