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연애 고수의 금쪽같은 조언
‘왕자님을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디즈니의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 덕분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당연히 언젠가 나의 왕자님을 만나는 것을, 누군가 기적처럼 나타나 내 인생을 구원해 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화건 드라마건 소설이건 간에 불완전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만나 서로를 치유하고 완전한 존재로 거듭난다. 위대한 사랑의 힘이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완벽하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란 이토록 위대한 것이다!
그렇게 사춘기 이차성징이 발현된 이래로 나의 모든 신경은 바로 그 나의 반쪽을 찾는 것에 집중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종류의 연애를 했다. 하지만 왜인지, 사랑을 해서 행복한 순간보다 사랑 때문에 괴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솔로일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연인이 있는 경우에는 '나는 이만큼 노력하는데 상대방은 노력을 안 한다,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유로 괴로워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면, 그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있지 않고 어느 순간 소유욕과 집착으로 변했다. 기대감으로 시작된 연애가 여김 없이 괴로움으로 끝이 날 때면 나는 자괴감에 밤잠을 설쳤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연애를 잘 만 하고 결혼도 하는데, 나는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왜 나의 사랑은 이토록 괴로운 것인가?
평소 친분이 있던 스님께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누가 알았을까, 스님이 엄청난 연애의 고수인 것을.
나: 스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모두 행복한 사랑을 하는데, 주변에선 모두 행복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하는데, 저는 사랑을 해서 괴로운 경우가 더 많아요. 그리고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괴로운 마음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스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개연성을 가진 허구의 내용이기에 모든 것이 좋게 포장되어 행복하게 보일 수가 있으나, 현실은 사랑해서 괴로운 경우가 더 많아. 그리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 중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는 괴로운데 괴로운지를 모르고 사는 세계'라고 정의를 하셨는데, 항상 중생삶을 사는 속에는 괴로움이 그 바탕에는 있다는 말씀이야.
누군가를 좋아할 때, 사실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자기의 좋고 설레는 마음이 좋은 것인데, 차츰 상대방과 친해지다 보면, 그 사람 전부를 알고 싶어 하고 내 마음대로 상대가 해주었으면 하는 자신의 소유욕과 집착되는 마음이 시작되고, 그 욕심과 집착이 자신을 괴로움에 빠지게 하는 거야.
상대를 좋아할수록 괴로움이 커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바라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상대가 알아서 나에게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고, 나에게 잘해줬으면 좋겠고, 나만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또 반대로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상대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누구나 갖는 중생심이야.
그 바라는 마음을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해줄까?'하고 줄 생각을 하면, 뭔가 에너지가 좋은 에너지로 전환이 되기 시작해. '내가 그런 것은 상대도 그런 것이고, 상대가 그런 것은 나도 그런 것이다'는 말씀이 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도 똑같이 원하게 되어 있기에, 내가 싫은 것은 상대한테도 강요하지 않고, 내가 좋은 것을 상대한테 해주면, 상대도 그것을 좋아하겠지.
내 눈앞에 있는 대상은, 어찌 보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어. 나는 안 그러면서 상대는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은 상대도 똑같이 나에게 그런 것을 바라기에 서로 평생 평행선을 갈 뿐 서로의 마음이 만날 날이 없겠지. 그래서 상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주면 상대가 나를 고맙게 생각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겠는지 답을 찾아서, 상대 마음이 곧 내 마음이니 그렇게 해보면 상대와도 곧 편해질 수 있을 거야.
지금처럼 안 되는 어려운 마음을 내가 노력하고 닦아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가는 일이 마음공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가 있어. 올라오는 감정 따라 생각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을 노력하며 살다 보면 너는 어느 누구에게든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만약 그런 매력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너의 남자 친구 될 자격이 없는 사람 같으니, 과감히 내려놓아도 될 거 같네.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 절을 다니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법문을 들으면서도, 스님의 말씀이 이토록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와 같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특별히 못나고 부족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괴로움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란다. 그리고 나를 괴로움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란다.
이후 거짓말처럼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스님 말씀처럼 올라오는 마음을 그대로 부리지 않고 내가 노력하며 사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괴로운 순간이 생길 때마다, 그 괴로운 마음을 상대에게 그대로 부리지 않고 (aka 짜증, 히스테리) 우선 그 올라오는 마음을 지켜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상대가 해주기를 하염없이 기대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하고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고도 나의 그 마음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과감히 끊어냈다.
사랑과 괴로움이 원래부터 떼어낼 수는 없는 것이라면, 나에게 왜 이런 괴로움이 오는 것인지 묻는 대신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편안함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묻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