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정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 동안 유튜브에 올릴 콘텐츠를 기획했다.
자기소개, 일상 브이로그, 영상 에세이 등 가장 가까운 이야기, 그리고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들로 기획서를 써 내려갔다.
채널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기획은 '흰 지팡이 꾸미기'였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 흰 지팡이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5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혼자 사용하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장애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고, 이걸 들고 다니면 왠지 동네 명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과 독립보행을 위해서는 흰 지팡이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지팡이를 꾸미는 시간을 통해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처럼 아직 흰 지팡이, 혹은 장애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영상을 보며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친한 친구와 회사 동료 중 저시력 시각장애인 PD님과 그동안 뮤직비디오 기획을 같이 진행해온 우리님까지 함께 채널 운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팀원들과 모여 채널명을 정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우리 정인이'라는 채널명은 장애와 장애인인 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낯설고 먼 이야기가 아닌 친한 친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짓게 되었다. 동료들의 이름이 마침 우림, 우리여서 찰떡이라고 생각했다. 영문명 'Studio Dear J'는 이 채널이 나와 비슷한 수많은 정인이(J)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채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실 같은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주변에서는 시각장애인 콘텐츠가 대중성이 없으니 아예 장애라는 주제를 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얼굴을 가리고 가면을 쓰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장애를 감추고 싶지 않았다. 장애를 부정하고 숨겼을 때 스스로 얼마나 초라한 사람이 됐는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창피하지 않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채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먼저 영상 에세이 첫 화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겪은 퇴사를 고민하며 들었던 생각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5년 동안 써온 골동품 같은 휴대폰에 PD님께 빌린 3만원짜리 마이크를 연결해 에세이를 녹음했다.
과거의 나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을 주어진 상황과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 수동적으로 부여된 역할과 관계 안에서 나를 정의했다. '뭔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면 그때는 이미 한발 늦어있었다. 덮어 놓고 지나쳐버린 나에 대한 무시는 결국 돌고 돌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정확히 저격했다.
내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만이 될 수 있다. 그 자리를 다른 무언가에게 내어줄 것인가? 우리는 항상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 온전히 내 삶이 내 것이라고 느껴질 때 삶에 대한 만족도도 커지는 것이다. 그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쭙잖은 배려와 양보야말로 사람을 더 치사하고 이기적으로 만든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타인에게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늘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나요?
내 채널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