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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Dec 01. 2023

나에게 도서관이란.

마리코 아오키 현상


난 가까운 지인들한테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변비 있어요?"

"불면증 있어요?"


나의 물음에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난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 저랑 같이 도서관가요."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고 다들 푸하고 웃어버리지만,

난 진심이고 진지하다.




난 밖에서  일 다가도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곧바로 동네 근처 도서관으로 간다. 룰루랄라 즐거운 마음으로.


어쩔 땐 삐죽 튀어나온 기다란 대파가 든 검은 봉지를 든 채 가기도 하고, 어쩔 땐 묵직한 과일이 든 장바구니를 들고 가기도 한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아 짐들을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책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눈으로 재빨리 스캔한다.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발견하면 세상 설레면서 기대감이 생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자리로 돌아가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기분 좋게 책의 첫 장을 펼친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기분 좋고.


자, 이제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읽어볼까... 하는데,

이상하게 배에서 살살 신호가 온다.

그러면 책을 덮고, 곧바로 화장실로 GO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지니 이제는 제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은 보다 훨씬 좋아진다.


서둘러 책 읽던 자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 장 넘기고, 두 장 넘기고, 세 장 넘기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도서관 창문 블라인드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이 나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준다.

나의 눈꺼풀은 스르르 감기고 나의 머리는 자연스레 벽에 기대게 된다. 잠자기 좋은 자세로 말이다.


어느새 난 꾸벅꾸벅 졸게 되고,

그러다 아이 하교 진동 알람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아, 졸고 있었구나.'


책을 원래자리에 다시 꽂아두고,

짐들 챙겨 서둘러 도서관을 나온다.

그러면서 기분 좋게 혼잣말을 한다.


'내일 또 책 읽으러 와야지.'




그동안 몰랐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마리코 아오키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85년, 책의 잡지(本の雑誌)라는 책을 주제로 한 잡지에 아오키 마리코라는 독자가 보낸 엽서에서 유래된 현상으로, 이상하게도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면 변의 혹은 요의를 느끼게 된다는 현상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는 해명되지 않은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내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화장실을 간 이유에 대한 의문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도서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 읽고 싶은 책을 찾았을 때의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이 나의 배변 욕구를  자극시켰나 보다.




나에게 도서관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하겠다.


변비와 불면증이 해결되는 곳이라고.


아오키 마리코 현상은 서점에 갔을 때 변의 또는 요의를 느끼는 현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갔을 때 변의도 느끼고 졸음도 쏟아지는 이 현상은 뭐라고 해야 되나? 아직 용어가 없다면 내 이름을 딴 '밝을 여름 현상'이라고 해도 될라나? 하하하


(아참! 오해할 수도 있을까 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책이 좋아서, 책이 읽고 싶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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