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서를 지키지 않는 어른(무단횡단, 새치기)
길을 걷다 보면 빨간불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너는 어른들을 종종 마주합니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요. 약속에 늦었거나, 급한 일이 있거나,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당당히 무단횡단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씁쓸해집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초록불이 들어올 텐데, 뭐가 그리 급하실까?’ 싶고, 차가 오는지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건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목숨이 하나 더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혼자 걸을 때도 그런 장면은 불편하지만, 아이와 함께일 땐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엄마, 저 할머니는 왜 빨간불인데 건너?”
아이의 질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하면 누군가를 탓하는 것 같고, “아마 바쁘신 일이 있으신가 보네.”라고 하면 잘못된 행동을 이해시키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초록불이 켜지고, 주변을 잘 살핀 다음에 건너자. 그게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통질서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정작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어른들이 무단횡단을 하면, 그 가르침의 힘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른들의 무질서는 도로 위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거리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료 컵, 소주병, 맥주캔 등을 보면, ‘왜 여기에 이런 게 있지?’싶은 마음이 듭니다.
물론 쓰레기통이 부족하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두고 가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치우는 사람도 일하지 않냐.”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입니다.
대놓고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공원 구석구석에 남겨진 어른들의 흔적을 보면, ‘어른이라면 이래선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이들이 과자 포장지를 버리는 건 미숙함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습니다. 가르치면 되는 일이지요.
그런데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교육의 힘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마트에서는 대부분 질서를 지키지만, 동네의 저렴한 가게나 시장에서는 새치기를 하거나 먼저 계산해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특히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런 일이 더 자주 벌어지지요. 줄을 선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본인이 먼저라며 돈을 내미는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몇 개 안 되니까 금방 돼.”라는 말이 그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도 분명 누군가의 부모이고, 조부모일 텐데 왜 이렇게 무질서할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짐합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예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르신이 타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우며 자라왔고요. 그래서 어르신이 타시면 서슴없이 자리를 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양보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억지로 자리를 차지하거나 눈치를 주는 어른들의 모습에 젊은 사람들의 마음이 닫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어떤 어르신이 빈틈을 보자마자, 가방을 멘 채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는 이들은 불편했지만, 그 어르신은 아무렇지 않게 앉아 계셨죠.
아이들이 힘들어 앉고 싶어 할 때 “젊은 사람이 왜 벌써부터 힘들다 그러냐”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앉고 싶은 마음은 똑같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요.
어른이라고 해서 항상 양보만 받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양보받기를 기대하기에 앞서, 나는 얼마나 양보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짜 어른다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