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코로나 확진자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DH(글쓴이 아들)도 유치원 안 보내고 있어요."
할머니는 늘 우리의 소식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남편, 시어머니, 시동생 부부의 근황을 내가 대신 순서대로 구구절절 상세하게 말씀드린다.
"부산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는 요즘 어떠셔?"
할머니는 그저 의례히 묻는 안부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하신다.
"아빠는 수술하고 병원에 오래 계셨지만 다행히 잘 회복하셔서 지금은 괜찮으세요. 엄마도 건강하시고요."
"아버지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아빠가 작년부터 큰 수술을 두 번을 하셔서 그런지, 할머니는 나랑 통화할 때마다 진심으로 아빠를 걱정하신다.
"아빠는 내년이면 일흔 되세요."
"어머. 70이면 청춘이네~! 나이가 젊은데 그렇게 아프시니... 내가 돌이켜보니까, 70대가 제일 좋은 나이였던 것 같아."
시할머니는 올해 92세이다. 숫자로만 보면 연세가 너무나 많지만, 실제로 뵈면 청력도 좋고, 피부도 곱고 세련되셔서 92세처럼은 안 느껴진다. 지금도 여전히 주변 도움 안 받고 혼자서 식사를 다 해 드실 정도로 건강하신 편이다. 우리가 한 번씩 찾아뵈면 항상 토마토 스파게티를 손수 요리하셔서 대접해 주신다. 대충 시판 소스만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닌, 각종 채소와 소고기도 듬뿍 넣은 아주 고급스러운 스파게티이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요리해 주신 것 자체가 감사해서 나도 그날 하루만큼은 간헐적 단식도 잊은 채 몇 접시 싹싹 비운다. (할머니도 손이 크셔서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찾아뵐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챙겨주신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오이지며 각종 밑반찬 등등.
나에게는 시할머니이지만, 나와 할머니는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사이다. 할머니도 날 예뻐하고 나도 할머니를 좋아하고.(DH엄마(글쓴이)가 제일 좋다는 말도 자주 하신다.)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바깥 외출은 못하시고 전화기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계신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한 해 한 해 넘어갈수록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니 이제는 전화할 사람이 나 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런 말 들으면 나라도 자주 전화드려야지 하면서도 마음만큼 잘 안된다. 나는 엄마, 언니들 말고는 전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한테도 전화 안 한다.) 만나면 살갑게 잘할 자신이 있지만, 이상하게 전화는 뭔가 가식적인 것 같아 불편하다.
그래도 막상 할머니랑 통화하면 편해서 그런지 항상 통화시간은 30분을 넘긴다.
할머니는 가족들 근황 토크가 끝나면, 내가 보내드린 밑반찬과 여러 식품들을 잘 먹고 있다는 얘기로 넘어가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주신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긴 통화의 마지막은 늘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로 끝난다.
그러면 나는 "제가 더 감사해요."로통화를 마무리한다.
할머니와의 통화에서 내 뇌리에 남는 말이 있었다.
70세도 청춘이다. 제일 좋은 나이다.
나는 까먹기 전에 재빨리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한테서 '나이가 곧 70이다. 나이가 징그럽다. 이제 살아봤자 얼마 살겠나.'라는 말을 가끔씩 들은 적이 있어서다.
"엄마! 시할머니랑 통화했는데, 70도 청춘이래요. 돌이켜보니 제일 좋은 나이였대요. 그니까 이제는 나이가 많다는 생각하지 마세요~"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흰 머리카락 한올, 점점 더 진해지는 이마 주름을 보며 세월 탓, 나이 탓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난 제일 좋은 나이가 되려면 아직 30년은 더 남았으니 지금을 즐기고 30년 후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