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모두 다 가치 있는 존재

by 밝을 여름

아들이 남편에게 묻는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나에게 되묻는다.


"그러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지?"

"음... 어렸을 때는 탕수육을 제일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럼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음... 분홍색도 좋아하고, 초록색도 좋아하고, 하늘색, 연두색도 좋아하고..."

"그러고 보니, 여보는 뭘 딱히 '제일' 좋아하는 게 없는 것 같아~"

"하긴 그러네. 난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렵더라. 반대로 여보 꺼는 바로 얘기할 수 있는데. 여보는 파란색을 제일 좋아하고, 갈비찜을 제일 좋아하고, 태양 노래를 제일 좋아하잖아~"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바로 '제일 좋아하는'이다.



만약 아들이 남편이 아니라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어도 나 또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을 거다.


나 자신 말고, 타인에 대한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나에 대한 질문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바로 대답할 수가 없다.


느닷없는 아들의 질문에 나는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왜 '제일 좋아하는~'이라는 질문에 항상 머뭇거렸을까? 나에게 관심이 없었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뭘 '제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생각해보려고도 안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일란성쌍둥이다. 어렸을 때는 이름보다 언니랑 한 세트로 뭉뚱그려 그냥 쌍둥이로 불다. 우리랑 가깝게 지내는 친척조차 내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할 정도로 그냥 내 이름이 쌍둥이였다. 지금은 쌍둥이가 흔한(?) 세상이 되었지만, 내가 어렸던 90년대에는 학교에 보통은 한 쌍, 많으면 두 쌍 정도의 쌍둥이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외모에, 똑같은 옷, 똑같은 가방을 멘 두 명이 나란히 학교를 가니, 신기하고 호기심이 생겼을 거다. 언니랑 손잡고 등교하면 어김없이 내 등 뒤에서 "어이~쌍둥이! 헤헤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마음엔 마치 동물원에 원숭이가 된 것처럼 우리를 쳐다보는 게 꼭 놀리는 것 같아 쌍둥이라는 말이 욕처럼 느껴졌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쌍둥이라는 말만 들어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었.


난 쌍둥이라는 이유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보다는 항상 뭐든지 잘하는 쌍둥이 언니와 비교되는 비교대상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말로는 둘이 똑같아서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항상 언니를 더 좋아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남자애들도...

나와 언니, 둘 사이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비교 때문에 난 점점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래서일까.

쌍둥이이기 때문에, 언니와 항상 비교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나'라는 사람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으니, 내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거다.




어느 날 우연히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마음에 확 와 닿는 글이 있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을 했든 혼자 살든, 당신은 이 세상에 소중하고 독특한 선물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70억 명 중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은가? 내가 쌍둥이라고 해서, 언니랑 외모가 거의 똑같다고 해서, 쌍둥이 언니가 나 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엄연히 다른 존재 것이다.


지구에서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어서, 그래서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쓸모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듯, 모두가 가치 있는 존재이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새삼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지니, 길 가다가 마주친 사람들도 오늘따라 유난히 더 특별해 보인다.


길 가장자리 가로수 옆에서 유산균 음료를 파는 요구르트 아줌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앞머리에 헤어롤 한 학생.

할머니 유모차 끌면서 걸어오는 꼬부랑 할머니.


이들 모두가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 같다. 사람 사는 인생을 들여다보면, 모두의 인생이 곧 소설이 드라마라고 하는 것처럼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 모두가 여자 주인공, 남자 주인공같이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40년 가까이 연구 중이지만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론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있어 '제일 좋아하는'이라는 질문은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숙제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천천히 내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려고 한다.


그동안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 겉모습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앞으로 40년은 내면의 나 자신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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