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시끌벅적했을 텐데, 오늘은 남편이 없으니 집안이 유난히 썰렁하다.
남편 저녁식사 준비와 설거지거리가 없으니, 나도 할 일이 없다. 아이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티브이도 보고, 이것저것 해보지만 시간은 8시에 멈춘듯하다.
평소 때보다 아이들 양치도 일찍 끝내고 다 같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서 좀 더 놀자는 핑계로.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막상 방에 가서 누우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 큰아이가 스트레칭 알려준다며 일어나라고 나를 재촉하지만, 내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엄마는 누워서 따라 할게."라고 말하고는 아이가 하는 대로 대충 따라 한다.
이래저래 시간 때우니, 8시 30분.
큰아이한테는 자기 전에 화장실 가서 '쉬' 한번 하라고 얘기하고, 난 작은아이 기저귀를 새 것으로 갈아준다.
화장실에서 나온 큰아이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센스 있게 알아서 방 불도 꺼준다.
침대에 우리 셋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오늘따라 침대도 넓게 느껴진다. 한 손은 아들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딸의 손을 잡고 누우니 행복감에 젖어든다. 캄캄했던 방 안도 조금 지나니 밝게 느껴진다. 난 아이들 얼굴을 번갈아 보며 기분이 좋아져 얘기한다.
"엄마가 너희들 다 클 때까지 열심히 잘 키울게."
딸은 천진난만하게 자기 발가락을 만지면서 꼬물꼬물거리는데, 아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
뭔가 싶어 아들을 쳐다보니 금세 눈물 한 바가지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말 하면 나 슬퍼."
"엄마는 행복해서 한 말인데?"
"그래도 난 그런 말이 제일 싫어. 난 그런 말 들으면 운단 말이야."
"무슨 말?"
"나 말하기 싫어. 그냥 안 해도 되지?"
"알겠어."
내가 주책맞았나 싶다. 괜한 얘기 꺼내 가지고 잘 밤에 아들 눈물이나 흘리게 하다니.
아들은 아마도 '다 클 때까지' 이 부분에서 감정이 울컥했나 보다. 내 말뜻과 상관없이, 아들은 다 크면 엄마가 옆에 없거나, 자신이 엄마 곁을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얘기에 오늘과 똑같은 반응이길래, 난 보충설명을 해줬었다. 스무 살이 되면 엄마 옆에 있으라고 해도 안 있는다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여자 친구 만나고 하느라 바쁠 거라고. 그랬는데도 아직은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6살 아이이다 보니, 아무리 설명해 줘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들을 생각조차 없다.
우리 아들은 정말 감수성이 풍부하다. 아기 때부터 그랬다. 100일도 안되었을 때 자장가를 불러준다고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하고 섬집 아기 노래를 불러주면 잠들기는커녕 대성통곡을 했었다.또 어떤 날은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 간다는 말에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운 적도 있다. 그러면서 아들은 꼭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엄마가 하늘나라 안 가도록 자신이 기술(?)을 만들겠다며 포부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들을 일찍 재운 뒤 거실에서 따뜻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나의 원래 계획이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다.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푹 잘 잤다.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