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아이는 '사랑해'라는 말에 재미를 붙였다. 유치원에서 선생님한테 하루 10번은 알라뷰를 외친다고 한다. 수업 중에도 "알라뷰", 어디 잠깐 다녀오시면 "아이 미쓔~ 알라뷰" 못하는 영어로 꼬물꼬물. 영상통화로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한테도 "사랑해요"를 남발한다. 가끔은 지렁이 같은 글씨를 스케치북 한가득 그리고는 "엄마, 엄마, 내가 엄마한테 편지 썼어요." "오~ 진짜?? 뭐라고 쓴 거야?" "엄마 사랑해,라고 쓴 거예요." 아이의 시도 때도 없는 사랑 고백에 우리 모두 심장 어택 흐억..
우리 남편은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가끔 경상도 남자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시부모님들께서 경상도가 고향이신데 아마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는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 적이 없다(물론 뭔가 사고 쳤을 때 빼고). 쉽게 말해 "로맨틱? 그게 머선 129??"와 같은 남자다. 가끔 내가 그 말(사랑해)을 강요하는데, 그때마다 닭살 돋는다며 도망간다. 이제 내려놓고 산다. (딸은 아빠를 안 닮아서 다행)
이런 남편이 웃기게도 가끔 행동으로 그 말을 할 때가 있다. 음식점에 가면 식탐이 많은 나는 보통 한 개 이상의 메뉴가 먹고 싶은데, 그럴 때면 남편은 늘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자신이 주문해 내가 먹고 싶은 메뉴 두 개를 다 먹을 수 있게 해 준다. 아, 너는 말보다 행동인 사람이었지. 이게 이 남자의 '사랑해'인 셈. 내가 조개 구이를 먹고 싶다고 한걸 기억하고 조개 구이집을 찾아서 짜잔 데려가 준다거나, 뭐 아주 가끔이지만?
나의 그 말, '사랑해'는 먹이는 일인 것 같다. 앞선 일화들처럼 나에겐 먹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이건 우리 엄마의 영향이 큰데, 우리 엄마는 늘 정시에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여행 중에도 12시가 되면 근처 휴게소든 식당이든 어딘가 들어가서 밥을 드셔야 한다. 어려서는 이해가 잘 안 됐었는데, 나이가 들 수록 나에게 그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 아이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매일 아침 남편에게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보내는데 가끔 늦잠을 자거나 해서 못 챙겨줄 때는 하루 종일 뭔가 미완성 과제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 싸서 보냈어야 하는데.. 물론 이건 나의 강박과도 연결된 일이지만 어쨌든 끼니를 챙겨준다는 건 나에게 특별한 사랑의 의미인 것이다. 가끔은 남편이 도시락 안 가져가겠다고 사춘기 고딩 같은 반항을 하는데 내 글을 좀 봤으면 좋겠다.
야, 그게 바로 '사랑해'란 뜻이라고!
나이를 먹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말에 인색해지는 것 같다. '사랑해'라는 직접적인 말보다 우회적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그래서 그 말을 알아듣기 위해선 열심히 해석해야 한다. 아이들처럼 쑥스러움 없이 계산 없이 '사랑해'를 말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에너지 소모가 확 줄텐데 말이다. 뭐 어쩌겠는가, 어쨌든 어떤 방식이든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아무튼 남편 이번 주말 조개구이, (가성비는 떨어졌지만) 정말 맛있었어.
고..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