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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돌고래 Sep 23. 2022

ㅋㅋㅋㅋㅋ

일간 날돌이, 여섯 번째 이야기 / 말의 실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해? 진짜 이런 식으로 할 거야?”


72인치 디스플레이에 문서를 하나 띄워 놓고 마이클이 목청을 높였다. 잠만보 엠마가 며칠 밤 잠을 줄여가며 작업한 신제품 캠페인 기획안이었다.


“회사 그만 다니고 싶어? 3개월짜리 캠페인에 100억이나 쓴다고? 우리 회사 매출이 얼만데, 사비 털어서 할 거야?”


엠마는 쏟아지는 비난을 맞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주 전 주간 회의 


“11월에 중요한 신제품 출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연말 연초까지 분위기 쭉 이어갈 수 있게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100억 정도 선에서 기획해 보세요.”


그렇다. 100억은 마이클의 입에서 나온 액수였다.


‘직원 70명에 연 매출이 100억인데 무슨 100억짜리 캠페인이야.’


엠마는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클이 하도 성화이니 온갖 아이템을 다 넣은 것이다. 


‘그래. 예산만 있으면 뭔들 못 하냐.’



“10억 규모로 다시 작성해 와. 가성비 좋게!”


저렇게 돌변하여 합리적인 척하는 것을 보니 예산 확보가 안 된 모양이었다. 신제품 출시가 미뤄졌거나. 


마이클은 자기가 틀리면 미친개처럼 짖어대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엠마가 그의 호통에 맞서지 않은 건 그가 종종 미친개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소파에 널브러져 좋아하는 제주 맥주를 한 캔 들이켰다. TV에서는 범고래의 일상이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고래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너무 작아지면서 뒤늦게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가 왜 살면서 그런 미친개를 상대해야 하지? 저런 미친개가 어떻게 본부장일까? 원래 저렇게 미쳐야 위로 올라가는 건가?’


속이 부글거리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나는데 카톡이 왔다. 대학교 동창 날돌이었다.


‘엠마, 오랜만이야. 잘 있지?’

‘나는 잘 있지. 너는 어때?’


날돌이와 대화를 할수록 화가 솟구쳤다. 엠마가 휴대폰으로 타자를 치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나야 똑같지. 내일까지 지도 교수님 딸 국어 숙제해줘야 해.’

‘너도 참 가지가지다. ㅋㅋㅋㅋㅋ’



[일간 날돌이]

인스타그램 @dolphinintheair 에 매일 500자 내외의 글을 연재 중입니다. / 수요일 OFF

완성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아카이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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