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있어야 할 곳
‘너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
상추를 씻다가 달팽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밭에서 우리집 부엌까지 오는 동안 용케 살아남은 걸 보니 보통내기가 아닌가 봅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떠오릅니다. 산책로의 어느 잎에서 낮잠을 자던 달팽이를 생각 없이 입에 넣었다가 온몸이 마비된 어느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문득 그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집니다.
덩달아 달팽이의 심정도 궁금해집니다. 너무 느려 움직이는 게 안 보이는 건지, 수돗물에 놀라 기어가는 법을 잊은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재활용하려고 말려두었던 우유갑을 3면만 남겨두고 잘라냅니다. 상추와 달팽이를 통째로 우유갑에 담아 아파트 앞 화단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탐구생활 과제로 달팽이를 키웠습니다. 옆집 강아지 도리와 자주 놀기는 했지만 어떤 생명체를 직접 돌보기는 처음이라 애지중지했지요.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달팽이를 살폈습니다. 칼슘을 보충해 줘야 한다며 깨끗이 씻은 계란 껍질을 잘게 부숴 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달팽이 등껍질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더워서 그런가 싶어 분무기로 물도 뿌려주었어요. 하지만 결국 등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달팽이는 죽고 말았지요. 가정집에서 계란 껍질을 먹으며 살 수 있었을 리가 없는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잘 돌봐주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네요. 밀크 캐러멜 통에 달팽이를 담아 땅에 묻어주며 엄청 울었습니다. 달팽이가 나보다 더 서글펐을 텐데 말이에요.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유갑 위의 상추 위의 달팽이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검색창에 ‘달팽이’를 검색했습니다. 달팽이는 뭘 먹는지 찾아보고 싶었거든요. 풀과 잎을 먹는다고 하네요. 오래전 떠나보낸 달팽이에게 달걀 껍질이 아닌 풀과 잎을 줬더라면 어땠을까. 돌본다고 하면서 뭘 먹고 사는지도 몰랐던 게 미안해집니다.
풀과 잎으로 침대를 만들어줬어도 달팽이는 아마 오래 살지 못했을 거예요. 학교 과제를 하겠다며 데려온 것부터가 문제였지요.
사람이라고 다를까요? 누구나 나에게 맞는 곳에서 살아야 무탈한 것 같아요. 환경은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물주가 아닌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들도 많으니까요.
달팽이가 제 명을 다하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 달팽이. 너는 행복해라.
[일간 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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