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날돌이, 아홉 번째 이야기
엄마 뒤를 쫓아가던 어린아이가 중심을 잃고 넘어집니다. 무릎에서 피가 나고 아이는 울기 시작합니다. 아파서 우는 건지 놀라서 우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 나의 별명은 ‘멍 부자’였습니다. 선생님들이 가정 학대를 걱정할 정도로 온몸이 멍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정말로 집에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데이빗 학생 부모님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아이언 고등학교에서 신고받고 왔습니다.”
엄마의 놀란 눈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조심성 없는 내가 사고를 친 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프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병 때문입니다. 피부가 익다 못해 허물을 벗을 때도, 테이블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혀 피멍이 들 때도, 아픈지 몰랐습니다. 연필이 쥐어지지 않아 손가락이 부러진 걸 알았고, 사람들이 피가 난다고 걱정해 줘서 삐져나온 철골에 팔꿈치가 긁힌 걸 알았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둔 의사 소견서를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갔습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와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의 엄마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냅니다. 엄마는 늘 당부했습니다.
네가 아프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야.
여전히 아픔은 잘 모르지만, ‘무릎이 까진 곳이 아프겠구나, 쓰라리겠구나’ 생각합니다.
심리상담가 잭은 이 비밀을 아는 유일한 친구입니다. 아니, 친구였습니다. 편도선이 부어 목소리가 갈라지던 날, 그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다.
“너는 아프지 않아서 좋겠다.”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종종 공포에 시달립니다. 타인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픔을 알고 싶어집니다. 천하무적이 된 게 아니라 삶을 십 프로도 못 사는 기분입니다.
나는 아픔이 뭔지 잘 모릅니다. 당신의 아픔도 모릅니다.
[일간 날돌이]
인스타그램 @dolphinintheair 에 매일 500자 내외의 글을 연재 중입니다. / 수요일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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