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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Aug 31. 2023

섬으로 떠난 기독교 순례

인천 강화도

갯벌이 섞인 회색빛 물결은 쉽게 깊이를 내보이지 않는다. 강화도는 인류가 일만 년보다도 훨씬 전부터 살아온 흔적이 발견되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역사가 시작된 오천 년 전부터만 생각하여도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고인돌, 마니산 참성단, 보문사, 전등사, 병인양요, 연산군과 광해군의 유배지, 신미양요, 인삼, 쌀, 쑥 등 이름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육지와 가까운 곳이지만 풍랑이 거세어 조선왕조실록 같은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곳, 유배지, 피난지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 곳이다.     


1969년 강화대교가 건설되면서부터 초지대교, 교동대교, 석모대교 순으로 모두 네 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강화도 일대는 육지 못지않게 사람들이 드나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강화도의 기독교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담장 밖을 내다보는 갑곶돈대의 배롱나무

나는 특별히 따르는 종교가 없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교회에 나갔지만 다른 종교 또한 학습하고 탐구하는 편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원불교의 한 재단이 설립한 학교였고 심지어 서초동에 있는 인도박물관에서 3개월 동안 밤에 찾아가 힌두교 강의를 들었던 적도 있다. 산 중에 있는 절에 가서 경내 울려 퍼지는 스님의 독경을 들으면 마음은 또 얼마나 평온해지던지.     


강화도에서 기독교 이야기를 찾으려는 이유는 얼마 전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절두산순교성지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천주교는 백성들에게 평등의 꿈을 지니게 해 주었고, 백성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종교를 따르다가 수많은 천주교 신부와 신자가 순교하였다. 그런 희생을 조금이라도 기리기 위하여 기독교의 상징적인 지역 중의 하나인 강화도를 찾은 것이다.   

  

평일 오전 강화도 갑곶에 들었다. 화려하게 꽃을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성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천주교 신자가 처형당했던 강화대교 일대와 갑곶돈대 앞 모래밭

갑곶에는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를 펼친 갑곶돈대가 있는 곳이다. 돈대란 흙무더기나 돌로 쌓아 놓은 소규모의 군사시설을 말한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다. 천주교 신자 팔천여 명과 아홉 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병인양요 때 600명의 프랑스군은 갑곶돈대에 상륙한다. 갑곶에서 조선군은 패배하지만 결국 정족산성에서 승리에 도취하여 느슨해진 프랑스 군대를 철수하게 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전사자는 40여 명에 달했다. 대부분의 성곽이 피해를 입었고 강화행궁도 불에 탔지만 조선군의 전사자는 5명 내외였다.

갑곶성지 입구와 기도상
고행하는 예수님과 세 그루의 은행나무

갑곶돈대 근처에는 갑곶순교성지가 있다. 미국과의 전투였던 신미양요 당시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 세 명의 천주교인이 미국 군함에 드나들었던 일이 조선 관군에게 발각된다. 붙잡힌 이들은 갑곶진두라는 곳에서 처형되어 효수되고 만다. 갑곶순교성지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그 자리에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는 특별한 나무가 있다. 누가 심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한 뿌리에서 나와 갈라진 은행나무가 세 그루가 있다. 세 그루의 나무가 비슷한 형상이다. 마치 순교한 세 명의 신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숙연한 모습의 은행나무가 수많은 교인이 처형당했던 갑곶돈대 앞바다를 향해 위로를 전하는 모습이다. 은행나무 근처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이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십자가도 마련되어 있다. 아직 날씨가 더워 고행 체험은 생략하였다.    

 

신미양요 때 미군의 군함에 드나들다가 순교한  박상손, 최순복, 우윤집 순교자 삼위비
강화기독교역사박물관

2022년에 건립된 강화기독교 역사기념관에 들렀다. 오래된 성서와 선교사의 가방, 기독교를 전파하고 역할을 한 인물의 정보와 역사를 들을 수 있고 강화도와 그 주변의 섬에 있는 교회들의 의미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곳이다. 이 역사기념관을 통하여 우리나라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 기독교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따르는 종교와 관계없이 알아야 할 것임을 깨닫고 떠난다.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된 곳, 진무영 순교성지

갑곶 인근 강화읍 관청리 강화성당의 잔디밭에는 2004년 조성된 진무영순교성지가 있다. 진무영은 해상방어를 위해 설치한 군영인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행해졌던 장소이다. 이곳에 성지가 조성되어 진무영에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영혼을 달래 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강화성당은 또한 1986년 산업화의 길목에서 희생만 강요당하는 직물공장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천주교와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교회 활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강화성당을 나와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성공회 강화성당을 찾았다. 오후 여섯 시가 되어서 성당 앞에 도착했다. 관리자가 대문을 걸어 잠근다. 여섯 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기어코 나는 뒷골목으로 통하는 입구로 들어가라는 허락을 받아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시청 맞은편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주황색 지붕의 십자가 모양 건물 대한성공회성당의 모습도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강화성당은 마치 산사와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한옥으로 된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동양의 불교 양식을 혼합하여 지어졌다. 부속실은 어릴 적 유교양식의 할아버지 집을 보는 듯하다. 회벽의 십자가가 예배당임을 구분할 뿐이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의 장식을 찾아볼 수 없다. 앞뜰에는 18m 높이의 130년 된 보리수가 있다. 보리수나무는 불교를 상징한다. 1900년 영국 선교사가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있었는데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나무가 쓰러졌다. 보리수나무 아래 일곱 개의 돌의자 배열은 북두칠성의 배열로 놓여있다.      

성공회 강화선당 천주성전

천주성전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본당은 2단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지붕에는 한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실내는 문이 잠겨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아직 해가 완전히 기울지 않아 유리창을 통해 내부에 빛이 들어오고 있다. 옛날 학교의 문과 같은 현관문 너머 예배당을 들여다본다. 내부의 기둥과 바닥은 목조로 장식되었고 조명만이 확연한 유럽식이다. 일요일에는 오전에 두 차례에 걸쳐 예배가 열린다는 안내문이 있다. 1900년에 지어진 목조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느낌은 어떠할까? 나무에 스며드는 고요한 오르간 연주가 궁금하다.      

천주성전 내부

성당의 뒷마당에는 마치 원형 미로와 같은 라브린스라는 문양이 있다. 이 문양은 고대 그리스와 마야의 유적지와 중세 유럽 교회에도 남아있다. 라브린스를 따라 걸으면서 기도해 보고 명상에 잠겨 본다. 해는 바다로 들고 아랫마을에 하나둘 불빛이 켜진다.

걸으며 기도하고 명상하는 라브린스
유교양식의 강화성당 부속건물
인도에서 10년 된 묘목을  가져다 심은 130년 수령의 보리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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