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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Sep 29. 2023

가을 동해, 고성

가을바람을 맞으러 동해의 푸른 물결을 찾았다. 상상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이 치유되는 듯하다. 고성의 푸른 바다라면 더욱 그렇다. 가을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곳 고성의 해변을 걷는다.


고성의 바닷길은 어림잡아 직선거리로 50Km이다. 바람과 파도가 조각한 걸작의 암석이 곳곳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바닷길이다. 이름만으로 가슴 설레는 화진포, 겨울 아침이면 바다 안개 가득 차는 곳 해무의 성 아야진, 걸어야만 하는 고요한 솔밭길 송지호 해변은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삼포 해변 근처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곳이다. 삼포 해변을 찾은 이유는 다른 해변과는 달리 상업시설이 적고 여러 들를 곳의 중간지점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삼포해변 곁의 울창한 솔밭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이곳으로 정한 또 한 가지 이유다.


숙소에 짐을 던지고 해안을 걷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드문드문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안에 갇힌 물고기는 다시 들어올 파도를 기다린다. 먼발치 모래언덕에서는 갈매기 떼가 먹이를 찾는다. 해안길을 따라 남쪽으로 해변 끝에 다다르면 작은 섬 둘이 형제처럼 떠 있다. 많은 전설이 묵혀 있을 검은도와 백도다. 어둠이 밀려오면 검은도는 먼저 어둠으로 사라지고 동이 트면 서둘러 백도가 나타난다. 장난기 서린 아이처럼 밀려오는 파도로 하얀 거품을 연거푸 만든다. 백도는 갯바위가 많아 새들이 쉬기 편한 곳이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가마우지 떼의 배설물로 하얗게 변해서 백도가 되었다. 백도의 끄트머리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사공바위가 있다. 마치 백도를 배 삼아 노를 젓는 모습인데 해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삼포해변의 끝자락 커다란 암반 위에는 원형으로 파인 성혈이 있다. 성혈은 암벽이나 바위에 동그랗게 파 놓은 구멍이다. 선사시대부터 이 문양을 파는 풍습이 있었는데 죽서루 용문바위 위에는 찻그릇 크기로 열 개가 넘고 월출산 구정봉에는 직경이 150Cm가 되는 것도 있다. 삼포 해변의 성혈은 세숫대야 크기로 10여 개가 파 있다. 사람들은 성혈을 파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어둠이 슬슬 내려온다. 해안도로를 따라 삼포 해변에서 봉수대 해변으로 걷는다. 해변 뒤로 해발 53m의 산 위에 봉수단이 있어 이름이 봉수대 해변이다. 1996년 4월 삼포리 일대에 산불이 났다. 이 화재로 마을 전체 50 가구 중 38 가구가 불에 전소되고 14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때 피해를 본 주민의 생계를 위하여 군사 통제구역이었던 곳을 1997년 봉수대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게 된다.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면 멀리 금강산까지 보였다고 한다.


봉수대 해변을 지나면 오호항이 나온다. 오호항 절벽 너머에는 서낭바위가 있다. 그 일대는 서낭바위와 부채바위 그리고 돌고래와 상어 무리가 몰려드는 형상의 ‘토어’라는 바위들이 해안 절벽 아래를 가득 메우고 있다. 물결이 돌이 된 것처럼 보이는 바위도 있다. 서낭바위는 오호리 마을의 서낭당이 있었던 곳이다. 서낭바위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상의 부채바위가 있고 무속인이 재를 치른 흔적이 있는 구멍이 파인 커다란 바위도 있다. 두 바위 위에는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씩 자란다. 비와 이슬만 먹고 자란 수령이 250년이 넘은 소나무다.


바위 군락을 빠져나와 송지호 해변을 걷는다. 먼 곳 한 쌍의 등대가 불을 차례로 깜빡인다. 어둑해진 모래사장 위 여름을 보낸 서핑보드가 거두어있다. 한여름이 지난 접경지역의 어둠 속 해안가는 술집과 카페의 등불만이 고요하게 새어 나온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흥얼거린다. 고성의 해변은 걷기만 해도 넉넉한 곳이다. 가을은 이미 고성에 도착했고, 나는 동해를 걸으며 가을 노래를 부른다. 


https://youtu.be/9JCmAN_L6VM


삼포 해변 앞 검은도
삼포 해변 앞 백도
삼포 해변의 성혈
누구라도 데려가고 싶은 오호항의 한 횟집
서낭당이 자리했던 서낭바위
기도하는 듯한 부채바위 정면과 측면
이름 없는 동굴처럼 생긴 바위
서낭바위 일대


송지호 해변
송지호 해변 소나무와 긴 의자
송지호 해변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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