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잡지 원고 마감일이기도 해서 새벽 두 시에 작업실에 들러 원고 송부를 마치고 볼음도로 향한다. 어제까지 이틀 동안 가족과 함께 선유도, 신시도를 다녀왔고, 잡지사에 보낸 원고는 마라도를 다녀온 이야기다. 이번 이틀간의 여행은 볼음도, 강화도, 교동도를 다녀오는 여정이다. 지금 머릿속엔 온통 섬이다.
볼음도에 가는 이유는 저어새를 만나기 위함이다.새벽부터 강화도를 동에서 서로 횡단한다. 은은한 새벽빛에 들판 위로 안개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마을 입구를 지날 때마다 아름드리나무가 새벽녘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김포에 거주할 때 운동하러 들렀던 화도초등학교를 지나고 볼음도를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수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창 너머 보이는 석모도
고요한 선창 너머 잘 그려낸 수묵화처럼 석모도가 물안개 뒤로 희미하게 비친다. 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도 작은 섬처럼 멀찌감치 바다에 떠 있다. 승선표를 구매하고 대기열 첫 번째에 차를 대었다. 섬에 들고 나는 배 시간 때문에 시간 안에 섬을 둘러보려면 차를 가지고 섬에 들어가야 한다.
오전 일곱 시, 볼음도 행에 앞서 주문도로 향하는 배가 출항 준비를 한다. 새벽 바다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 여객선이다. 몇 명의 승객과 공사 차량이 승선을 마치고 여객선은 기적소리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출발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타지 않았는데 ‘잘 가시오!’ 인사를 건넨다.
볼음도 가는 배가 도착하였다. 차를 몰고 배에 들었다. 배는 석모도를 끼고돌아 나온 후 한 시간쯤 지나 볼음도에 접도 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은 마중 나온 오토바이와 차를 타고 저마다 가야 할 길을 떠난다. 고요한 선창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여행의 목적지로 향한다.
저어새 서식지로 알려진 조개골 해변을 찾았다. 볼음도는 대부분 벼 농사를 짓 는 평야 지대여서 길이 훤히 보여 이정표만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 농로를 통하여 해변으로 가는 길은 온전한 시골의 풍경이다. 몇 년 전부터 늦여름 찾아오는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때쯤 내리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부른다. 처서비가 적당히 내리면 풍년이 들고 많이 내리면 곡식이나 과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흉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조개골 해변 갯바위의 저어새와 그 밖의 새들
해변에 도착하자 보이는 갯바위에 새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저어새뿐인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니 갈매기, 가마우지, 오리, 도요새, 노랑부리황새 함께 먹이를 살피고 있다. 여러 종류의 새가 한데 뭉쳐 있는 광경은 처음 본다. 갯벌에 먹이가 풍부하니 영역 다툼 없이 무리를 이루는 것 같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저어새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주로 분포하는데 오천여 마리밖에 서식하지 않는다.
영뜰해변의 건간망
저어새 무리가 잘 나타난다는 또 다른 서식지인 근처의 영뜰 해변을 찾았다. 이 해변은 갯벌을 길게 두르는 건간망이 갯벌의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져 있다. 그물의 길이는 수 km에 이른다. 건간망 조업은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에 나갈 때 그물에 걸리게 하여 잡는 방식이다. 저어새들이 다른 곳으로 먹이활동을 하러 갔는지 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식지라고 해서 항상 그곳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정자에 앉아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눈이 머문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걷으러 경운기를 타고 일을 나서는 어부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멀어진다.
그물질하러 가는 어부
볼음도를 지켜주는 은행나무를 찾아 나섰다. 연꽃이 만발한 볼음 저수지를 지켜보며 서 있는 은행나무는 800년 전에 홍수로 떠내려온 것이라고 전한다. 이 은행나무는 가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영적인 나무다 . 둘레가 9m 높이는 25m에 이른다. 1950년대까지 이 나무 아래서 풍어제를 지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460건 중 24건이 은행나무인데 볼음도 은행나무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혹시라도 소원을 들어줄까 하여 은행나무를 한 바퀴 돌아본다. 저수지의 연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고개를 흔든다. 저어새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볼음도 은행나무와 저수지의 연꽃
마을 중심부로 나오는 길옆으로는 폐교된 상태의 학교 두 곳이 나란히 붙어 있다. 서도초등학교 볼음분교와 중학교 볼음분교다. 초등학교는 1942년, 중학교는 1976년에 개교했지만 2019년 2월에 한꺼번에 폐교되었다. 길에서 만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동네 어르신의 이야기로는 학생 수가 많을 때는 한 학년에 50명이 넘어 2부제로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날들이 또 와야 할 텐데요.” 하니 “그런 날이 오겠어?” 하신다. 교문을 활짝 열어 놓은 학교 운동장에는 풀들만 가득하다.
폐교된 볼음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저어새를 가까이 보겠다는 생각에 다시 조개골 해변을 찾았다. 덜 마른 모랫바람만 날린다. 새도 없고 사람도 없고 무너진 절벽이 뒹구는 해변을 거닐며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본다.
배편을 이유로 이 섬에서 허락된 시간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네 시간뿐이다. 서둘러 마을의 식당에 들렀다. 아침 여객선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여럿이 식사 중이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하며 서로 섬에 들어온 용무를 물었다. 싱크대 설치하러 온 사람, 에어컨을 수하러 온 사람, 지적도를 들고 소화전 실태를 파악하러 온 사람들이다. 시 반 마지막 배를 타고 떠나는 승객들이다. 이 식당의 주인은 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 승선권 발권 업무도 한다. 지적도를 들고 온 사람이 식당에서 승선권을 사려고 한다. 식당 주인은 여기서는 발급해 줄 수 없고 대합실에서 만나자고 한. 식당 주인을 포함해 식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두 시까지 선착장으로 가야 한다.
먼저 식당에서 나와 선창으로 향했다. 서식지에서도 가깝게 볼 수 없었던 저어새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름처럼 고개를 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차에 두고 왔다.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남겼다. 커다랗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주걱처럼 생긴 검은 부리는 분간 할 수 있을 정도다.
바다 건너에는 석모도의 암벽이 마주 보인다. 저기쯤이면 보문사의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다. 마애불이 멀리서 볼음도까지 오가는 길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석모도에 들르면 보문사 마애불 앞에서 이곳을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아야겠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두 시에 모두 대합실에 도착했다. 서로를 모른 채 섬에 들었던 우리는 아는 사람이 되어 섬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