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본부장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보내둔 자료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본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보았다.
“도윤 씨, 이 자료 어디까지 됐죠?”
나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어제 오후까지 반영 완료했습니다.”
본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나… 음… 조금 더 숫자를 정리해 주세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다 정리했는데…? 그래, 또 정리하면 되겠지.’
박서연이 내 옆에 서서 메모를 했다.
“도윤 씨, 이번엔 정책 연계만 보강하면 된대요.”
나는 한숨을 참으며 노트북을 켰다.
“네…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서연은 웃으며 말했다.
“본부장님 기억력은 정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력이라기보다, 매번 기분대로 바꾸는 습관 같았다.
점심시간, 최민수가 컵라면을 뜯으며 말했다.
“도윤 씨, 본부장님이 또 자료 바꿨네요?”
“응…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사람인 거 같아.”
나는 입맛도 안 당기는 점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민수는 젓가락을 돌리며 웃었다.
“그럼 그냥 내일 아침에 또 바꾸겠죠.”
“맞아.”
나는 노트북 화면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그 자료는 하루만에 세 번 바뀌었고,
나는 세 번 다 수정했다.
오후 3시, 회의실.
본부장은 문서 하나를 들고 말했다.
“도윤 씨, 이 자료 여기서 수정해 주세요.”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이거… 방금 다 고쳤는데…?’
서연이 눈치를 챘는지 속삭였다.
“이게 방금 업데이트한 거랑 조금 달라요….”
본부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새 버전으로 해주세요.”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서연은 내게 말했다.
“도윤 씨, 이렇게 반복되는 걸 보면, 본부장은 기억하지 않는 거예요.”
“아마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매번 새로 보는 거겠죠.”
나는 노트북을 켜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보고서의 무덤 속으로.
저녁 7시, 사무실은 조용했다.
민수는 모니터를 끄며 말했다.
“오늘은 진짜 끝인 거죠?”
“글쎄… 내일 아침이면 또 바뀔 걸.”
나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서연이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내일 아침에 다시 봐야겠네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네… 내일 또 만나겠네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얼굴이 오늘따라 조금 피곤해 보였다.
피곤함보다 이상한 안도감이 있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살아남았으니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본부장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내 선택은 오늘도 반복된다.
퇴사 버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