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메일이 다섯 통 와 있었다.
제목은 전부 비슷했다.
– 자료 수정 요청
– 보고서 관련
– 어제 말씀드린 건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노트북을 켰다.
회사에서는 앉는 순간 이미 늦는다.
“도윤 씨.”
뒤에서 박서연 책임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자료, 숫자 하나만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느 부분이요?”
“페이지 14요.”
나는 페이지 14를 열었다.
“여기요?”
“네. 이게 3분기 기준이죠?”
“4분기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표 제목만 바꾸면 되겠네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그거 오전 중으로 가능하죠?”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네.”
가능하지 않았다.
잠시 후 팀장 메신저가 울렸다.
도윤 씨, 본부장님이 자료 다시 보신대요.
오전 회의 전에 정리 가능?
나는 ‘네’라고 답했다.
이미 오전 중 세 번째 ‘네’였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본부장은 이미 앉아 있었다.
단장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팀장은 수첩을 펴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며 말했다.
“자료 업데이트했습니다.”
본부장이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음… 근데 이 방향이 맞나?”
방향.
나는 속으로 방향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씹었다.
“어떤 쪽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서연이 물었다.
본부장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좀 더 정책적으로.”
서연은 바로 받아 적었다.
“그럼 정책 연계 포인트만 보강해볼게요.”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도윤 씨, 그럼 아까 표도 같이 수정해서 공유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회의실 문을 나서자마자 서연이 말했다.
“도윤 씨, 아까 데이터도 같이 넣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네.”
웃음이 자동 반사처럼 나왔다.
자리로 돌아오니 최민수 선임연구원이 컵라면을 뜯고 있었다.
“또 방향 바뀌었어요?”
그가 물었다.
“응.”
민수는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그리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의 ‘아’는 늘 완벽했다.
더 묻지도 않고,
더 공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
“민수 선배는 진짜 태연하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오래 다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오래 다닐 생각은 없는데.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메일이 또 와 있었다.
본부장님 코멘트 반영 부탁드립니다.
코멘트는 두 줄이었다.
‘조금 더 임팩트 있게.’
‘전체 톤 다시.’
나는 파일 이름 뒤에 _v7 을 붙였다.
저녁 7시, 사무실엔 나와 서연만 남아 있었다.
서연이 말했다.
“도윤 씨, 오늘도 야근이네요.”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러게요.”
서연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다시 볼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본다.
나는 지금 고친다.
밤 10시.
보고서를 저장하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그리고 동시에 답했다.
나만 제대로 하면 되니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이렇게 썼다.
‘공공기관 이직 성공 사례’
나는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번 선택만큼은 계산 끝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보고서의 무덤에서 빠져나오면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보고서는 끝이 아니라,
예고편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