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연 책임은 회의에서 절대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마지막에 말한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이 회의 결론이 된다.
“이 안건, 어떻게 보세요?”
단장이 먼저 물었다.
팀장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고,
나는 데이터를 근거로 숫자를 설명했다.
본부장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 일리는 있는데.”
그 순간까지도 서연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그녀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팀장님 안으로 가되, 도윤 씨 데이터만 보강해서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정책 방향에 맞추면 될 것 같습니다.”
본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네요.”
끝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나는 물었다.
“방금 그거, 애초에 그 방향 아니었어요?”
서연은 웃었다.
“맞아요.”
“근데 왜 마지막에 말해요?”
“처음에 말하면, 수정 당하잖아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녀는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채택되도록 말한다.
자리로 돌아오자 민수가 속삭였다.
“오늘도 박 책임이 마무리했네.”
“응.”
“진짜 신기하지 않아요? 본부장님이 항상 ‘그게 좋겠네요’ 하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장님이 결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잖아.”
민수는 라면 물을 부으며 말했다.
“그게 기술이지.”
오후에 본부장이 불렀다.
“서연 씨, 아까 그 안 정리해서 원장님 보고 올릴게요.”
“네, 수정해서 드리겠습니다.”
본부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도윤 씨, 데이터는 서연 씨랑 맞춰서.”
나는 자동으로 대답했다.
“네.”
방을 나서며 서연이 말했다.
“도윤 씨, 10분만 시간 있어요?”
“네.”
회의실 구석에 앉자 그녀가 노트북을 돌렸다.
“아까 데이터, 여기 한 줄만 바꾸면 돼요.”
“근데 그럼 의미가 조금 달라지는데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근데 원장님이 좋아하는 표현이 이거예요.”
나는 화면을 봤다.
데이터는 그대로였다.
해석만 달랐다.
“이거… 괜찮아요?”
서연이 나를 봤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잠시 침묵.
“도윤 씨는 아직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전 승진이 더 중요해요.”
담담했다.
미안함도, 변명도 없었다.
그냥 선택이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
“서연 선배.”
“네.”
“왜 이렇게까지 해요?”
잠시 정적.
“여기서 오래 일하려면,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문이 열렸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내일 봬요.”
나는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오늘 수정한 파일 이름은
_final_v3_진짜최종 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직 싸우고 있고,
박서연은 이미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