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는 늘 제시간에 퇴근한다

by 조직을 읽는 여자

오후 5시 58분.
최민수 선임연구원은 이미 저장을 눌러둔다.
5시 59분.
모니터를 끈다.
6시 00분.
외투를 입는다.
6시 01분.
그는 사라진다.
정확하다.
시계보다 정확하다.


“민수씨, 오늘 회의 정리 안 하세요?”
내가 물었다.
민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 하면 되죠.”
“근데 본부장님이 오늘 안에 달라던데요.”
그는 가방을 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일 아침이 오늘 안이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느 날 본부장이 갑자기 물었다.
“민수 씨, 이거 진행 상황 어때요?”
민수는 단 2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현재 방향 검토 중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직 시작 안 했으니까.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 정리해봐요.”
끝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보고서를 붙잡고 있었고,
서연은 원장 보고용 자료를 다듬고 있었다.
민수는 조용히 말했다.
“도윤 씨,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왜요?”
“열심히 하면, 일이 늘어나.”
나는 웃었다.
“일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닌가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아니야.”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민수씨는 왜 승진 생각 안 해요?”
민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한 번 계산해봤거든.”
“뭘요?”
“책임 달면 야근 두 배, 연봉 조금.
수석 달면 스트레스 세 배, 회의 네 배.”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전 지금이 가성비 제일 좋아요.”


신기한 건,
그는 한 번도 크게 혼난 적이 없다.
보고서는 무난하고,
태도는 공손하고,
회의에선 말이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엔 한 줄을 던진다.
“그건 리스크가 좀 있습니다.”
그러면 다들 멈춘다.
그리고 그 말은 늘 맞다.


어느 날 야근을 하다
나는 민수의 자리를 봤다.
깔끔했다.
파일 이름도 단순했다.
_v1
_v2
끝.
나는 _final_v5_진짜최종_수정_최종 이런 식이었다.


저녁 9시.
사무실엔 나 혼자였다.
메신저가 울렸다.
민수: 아직 회사세요?
나: 네
민수: 왜요?
나는 잠시 멈췄다.
왜지?


다음 날 아침.
본부장이 말했다.
“어제 자료 잘 봤어요.”
나는 밤 10시까지 수정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이 방향이 맞나?”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민수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래서 저는 안 합니다.”
퇴근길.
나는 일부러 6시를 기다렸다.
6시 01분.
민수는 오늘도 사라졌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나도 나갈 수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손이 움직였다.
파일을 열었다.
나는 아직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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