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짧게 갑시다.”
본부장이 말했다.
회의는 10시에 시작했고,
‘짧게’라는 말은 늘 가장 길게 가는 신호였다.
팀장이 자료를 띄웠다.
“지난번 논의했던 방향으로—”
“잠깐.”
본부장이 손을 들었다.
“그때 그 방향이었나요?”
회의실 공기가 멈췄다.
나는 서연을 봤다.
서연은 이미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지난주 화요일 회의에서 정책 연계 중심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더 현장 중심이 좋지 않을까요?”
10시 37분.
우리는 아직 3페이지에 있었다.
“이 문장, 어감이 좀 딱딱하지 않나요?”
원장은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정책적 시사점 도출.’
이거 너무 교과서 같아요.”
서연이 바로 말했다.
“그럼 ‘현장 적용 가능성 제시’로 바꿔볼까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단어 세 개 바꾸는 데 12분.
11시 05분.
본부장이 말했다.
“근데 큰 그림이 좀 약한 것 같아요.”
팀장이 말했다.
“아까 정책 중심으로—”
“아니, 전략적으로.”
정책이 전략이 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나는 조용히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발언 1회당 평균 2분.
같은 말 반복 3회.
결론 보류 2회.
민수가 내 노트를 힐끗 보더니 속삭였다.
“뭐 해요?”
“회의 패턴 분석.”
“결론 나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패턴은 나오는데 결론은 안 나와.”
11시 48분.
원장이 물었다.
“그래서 오늘 결론이 뭐죠?”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팀장이 서류를 넘겼고,
본부장은 물을 마셨다.
서연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방향만 합의하고, 세부안은 다시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한 건 없었지만,
합의한 것처럼 보였다.
12시 03분.
회의 종료.
본부장이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점심 이후,
자리로 돌아오자 민수가 말했다.
“그래서 뭐 하래요?”
나는 잠시 멈췄다.
“다시 정리하래.”
“어느 방향으로?”
나는 모니터를 켰다.
“모르겠어.”
오후 2시.
메일 제목이 도착했다.
[긴급] 오전 회의 반영 수정본 요청
나는 파일 이름 뒤에 또 하나를 붙였다.
_v8
회의는 끝났지만,
회의는 시작된 셈이었다.
저녁 6시 01분.
민수는 사라졌다.
서연은 원장실로 올라갔다.
나는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회의는 왜 항상 길어질까.
아마도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책임을 나누기 위해서.
아니면, 누군가의 시간이 가장 싸기 때문일지도.
모니터에 뜬 수정 파일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저장을 눌렀다.
_v9
회의는 끝났지만,
보고서는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