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개월 차.
나는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보고서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보고서를 만들던 날이었다.
나는 밤 11시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다.
문장을 고쳤다.
‘추진’은 너무 딱딱해서 ‘추진한다’로 바꿨고,
‘추진한다’는 너무 강해서
‘추진할 예정이다’로 바꿨다.
그리고 다시 '추진한다’로 바꿨다.
완벽했다.
다음 날 아침.
본부장이 보고서를 넘기다가 멈췄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했습니다.”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했네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그리고 본부장이 말했다.
“근데 방향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방향?
어제 밤 11시까지
모든 방향을 고려했는데.
그날 점심.
나는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씨, 보고서 방향이 왜 계속 바뀌죠?”
민수는 김치찌개를 먹다가 말했다.
“사람이 바뀌니까겠지요.”
“사람이요?”
“생각이요.”
그는 덧붙였다.
“그리고 생각은 매일 바뀌니까요.”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그 다음 보고서는
그래프를 세 개 더 넣었다.
‘한눈에 보기 쉽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그래프를 보다가 말했다.
“그래프가 많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한눈에 보시기 편하게—”
“근데 한눈에 안 보이는데.”
그래프는 두 개 삭제됐다.
다음 보고서는 그래프를 줄였다.
대신 문장을 늘렸다.
본부장은 말했다.
“텍스트가 너무 많네.”
나는 조용히 그래프를 다시 넣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믿었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고.
조금만 더 정확하면,
조금만 더 논리적이면,
조금만 더 정리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어느 날이었다.
본부장이 말했다.
“이거 누가 시킨 거예요?”
나는 말했다.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왜 했어요?”
나는 잠깐 멈췄다.
왜 했지?
본부장이 이어서 말했다.
“열정은 좋은데…”
그리고 덧붙였다.
“쓸데없는 열정은 본인이 피곤해요. 허허허”
그날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잘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다른 문제라는 걸.
그래도 한동안은 믿었다.
나만 제대로 하면
이 조직은 돌아갈 거라고.
내가 조금 더 버티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나는 꽤 오래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민수가 나에게 말했다.
“도윤 선배.”
“네?”
“회사 바꿀 생각도 있으세요?”
나는 웃었다.
“아직은요.”
민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전 그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떤 생각이요?”
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 잘하는 것보다
다른 데 가는 게 더 빠르겠다.”
그때 나는 웃어넘겼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다를 거라고.
나는 계산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나는 나름 계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