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은 업무 도구가 아니다

by 조직을 읽는 여자

이 회사에는 메신저가 없다.
대신 카카오톡이 있다.
첫날 점심 먹고 돌아왔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단체방이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이름이 길었다.
[전체] 프로젝트 공유 및 긴급 대응 방
긴급?
메시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장: 지금 상황 공유 좀 해주세요
사장: 왜 조용하죠


나는 키보드를 잡았다.
누가 먼저 쓰지?
3초.
아무도 안 썼다.
5초.
한 명이 썼다.


직원1: 현재 자료 정리 중입니다.
바로 이어서
사장: 어떤 자료요
사장: 구체적으로요

옆자리 사람이 나를 봤다.
“처음이시죠?”
“네.”
그는 작게 말했다.
“빨리 쓰셔야 돼요.”
나는 급하게 썼다.


도윤: 관련 데이터 검토 중입니다.
보내고 나서 다시 읽었다.
너무 애매하다.
3초 뒤.
사장: 어떤 데이터요


왔다.
나는 다시 썼다.
도윤: 기존 자료 기준으로 수치 재확인 중입니다.
이번엔 5초가 걸렸다.


사장: 방향은요
나는 잠깐 멈췄다.
방향?
옆자리 사람이 속삭였다.
“그냥 맞춰서 쓰세요.”


나는 썼다.
도윤: 말씀 주신 방향 기준으로 정리 중입니다.
10초.
조용했다.


나는 숨을 쉬었다. 넘어갔다.
그날 오후. 나는 깨달았다.
이 회사에서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답장 속도라는 걸.


오후 4시.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고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사장: 도윤 씨
나는 손도 제대로 안 닦고
휴대폰을 들었다.
사장: 방금 이야기한 거 확인하셨어요?
나는 잠깐 멈췄다.
방금?
나는 급하게 썼다.
도윤: 확인 중입니다.
그리고 단체방을 다시 봤다.


메시지가 27개 쌓여 있었다.
나는 하나씩 읽었다.
읽다가 중간부터 이해를 포기했다.
다시 썼다.
도윤: 확인했습니다.


그때 옆자리 사람이 말했다.
“진짜?”
나는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퇴근 시간.
아무도 안 일어났다.
나는 눈치를 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민수 생각이 났다.
6시 01분.
사라지던 모습.
나는 자리에서 조금 움직였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사장: 보고서 공유본 다 됐으면 봅시다.
나는 다시 앉았다.
아무도 답을 안 했다.
3초.
직원2: 네 준비되는대로 공유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안.
휴대폰이 또 울렸다.
사장: 오늘 내용 정리해서 올려주세요

나는 화면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뒤집었다.
5초.
다시 뒤집었다.
읽음 표시가 늘어나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읽씹.
가능할까?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올라왔다.
사장: 봤으면 답 주세요
나는 바로 썼다.
도윤: 네 확인했습니다.
전송.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오늘 하루 종일 카톡을 보고,
답장을 하고, 확인을 했다.
문득 생각했다.
여기는 보고서도 없고, 회의도 짧고,
검토도 없다.
대신 계속 확인하고 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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