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인 문화라고 했잖아요

by 조직을 읽는 여자

“저희는 수평적인 조직입니다.”
면접 때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그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네.


첫 주 수요일.
단체카톡방이 울렸다.
사장: 오늘 오전 건 관련해서
사장: 다들 의견 주세요
나는 잠깐 멈췄다.


의견?
옆자리 사람이 말했다.
“좋은 기회예요.”
“뭐가요?”
“의견 내는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평적이니까.
나는 키보드를 잡았다.
그리고 썼다.
도윤: 개인적으로는 기존 방향을 유지하면서

이 부분만 보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내고 나서 다시 읽었다.
깔끔하다.
3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5초.


사장: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나는 바로 썼다.
도윤: 현재 자료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방향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0초.
사장: 꼭 안정적이어야 하나요?
나는 잠깐 멈췄다.
옆자리 사람이 작게 말했다.
“그냥 전면 보완하겠다고 해요”
나는 다시 썼다.
도윤: 실행 측면에서도 빠르게 진행 가능할 것 같습니다.
5초.
사장: 음
이 ‘음’은
좋은 ‘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올라왔다.


사장: 다른 분들 의견은요
3초 만에 메시지가 쏟아졌다.
직원1: 방향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직원2: 좀 더 공격적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직원3: 기존 안은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나는 화면을 봤다.
아까까지 조용했던 사람들이었다.
사장이 말했다.
사장: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만 반대였다.
잠시 후, 개인톡이 왔다.


직원1: 도윤님 처음이시죠
직원1: 괜찮아요 다들 한 번씩 겪어요


나는 답장을 쓰다가 멈췄다.
옆자리 사람이 다시 말했다.
“괜찮으세요?”
나는 웃었다.
“네.근데 여기 수평적이라면서요.”
내가 말했다.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은 다 낼 수 있잖아요.”
나는 잠깐 멈췄다.


“근데요.”
그가 덧붙였다.
“맞는 의견만 남는 거죠.”
오후 회의.
사장이 말했다.
“아까 얘기 나온 것처럼 방향 바꿉시다.”


사장이 나를 봤다.
“도윤 씨도 괜찮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와 카톡을 다시 봤다.
내 메시지는 위에 있었다.
그 아래로 다른 사람들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스크롤을 내렸다.
내 메시지는 점점 위로 올라갔다.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없는 것 같았다.


퇴근길. 나는 생각했다.
수평적인 조직.
맞다.
의견은 평등하다.
결과만 수직일 뿐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단체방을 한 번 더 봤다.
읽음 표시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수평적인 문화라고 했잖아요.

이전 13화카톡은 업무 도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