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했던 그 때 그대로야.
맘카페나 판 등의 커뮤니티 글을 보면,
부부 간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다투거나,
누가 옳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하는 많은 일들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지인 부부와 식사도 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부부 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가 꽤 있습니다.
단순히 최근에 다툼이 있어
서로 미워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아보입니다.
그런 부부도 두 분 어떻게 만나게 됐냐고
물어보면 이내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대학 CC로 만난 부부,
아빠가 매일 집 앞을 찾아왔다는 부부,
아빠가 인기가 많아
주변에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는 부부 등등
그들만의 옛날 사랑 얘기를 들으면
어느덧 그 때로 돌아간 듯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부부 간의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 초기부터 쌓여왔던
많은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되어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항상 기억한 채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저는 최근에 유투브를 통해
MBN의 파뿌리를 자주 시청합니다.
제 아내는 그런 방송 보면
부정적 감정이 많이 생긴다고
보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꽤나 즐겨보고 있습니다.
‘파뿌리’는 갈등 관계에 있는 가정을
관찰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고,
전문가들이 각종의 도움을 주는
방송입니다.
이미 부부 관계가
많이 멀어진 가정이지만,
방송의 끝에는 대부분 관계를
회복하고는 합니다.
프로그램의 중간에
작가 분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 때 아내또는 남편의 모습은 어떠셨어요?”
등등 부부가 연인 관계였을 때에 대한 질문입니다.
질문을 듣고 과거를 상상하는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참 예뻤죠.”, “거의 매일 만났어요.”,
“그 때는 저 사람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도 했었죠.”,
“참 든든했어요. 뭐든 다 해주었죠.” 등의
그들만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다들 웃습니다.
“사랑”과 관련하여
제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교회를 다닙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요요”를 가장 잘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로 아이들을 모으고 다니시던
동네 교회 전도사님께서 예배 끝나고
아이들 앞에서 “요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고 하셔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둘러 앉아
저의 작은 재롱잔치를 보면서
박수 쳤었던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짜릿합니다.
와이프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교회를 나갑니다.
우리 딸이 식사하기 전에 기도를 참 잘합니다.
아빠, 엄마, 동생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그 작은 입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기도할 때는
이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해서 결혼 한 것이기에,
부부 간에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쉬워야 하는데,
종교의 힘을 빌어도 참 쉽지 않습니다.
반성하게 됩니다.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내 생각해서 그런다는 말 좀 그만해.
솔직히 믿어지지도 않아.
오빠도, 어머니도, 우리집도 다 똑같아.
어차피 한치 건너 일이라고.
그냥 나만 전쟁이야.”
김지영의 말입니다.
혼자만 전쟁 치르게 해서 미안합니다.
같이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한치 건너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어느 세대나, 누구를 대표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한 남성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아빠로서
세상의 모든 김지영에게
고생했다, 미안하다, 잘 하고 있다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가정의 김지영과 그 남편이 앞으로 함께하는
“동행”의 발걸음을 내딛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