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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Oct 07. 2020

너는 나에게 여전히 예뻐.그때 그대로야

                       

영화를 보면 김지영과 정대현은 서로 많이 사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의 연예 시절이나 신혼 시절의 달콤함 같은 사랑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현은 아내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을 하는 모습과, 지영은 자신의 아픔을 얘기해 주는 대현에게 “오빠, 마음고생 했다”고 손잡아 주는 모습에서 부부의 사랑이 참 절실하게도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각자만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에 가지고 삽니다. 그 시절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가정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맘 카페나 판 등의 커뮤니티 글을 보면 부부간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다투거나 누가 옳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하는 많은 일들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지인 부부와 식사도 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부부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가 꽤 있습니다. 단순히 최근에 다툼이 있어 서로 미워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부부도 두 분 어떻게 만나게 됐냐고 물어보면 이내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대학 CC로 만난 부부, 아빠가 매일 집 앞을 찾아왔다는 부부, 아빠가 인기가 많아 주변에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는 부부 등 그들만의 옛날 사랑 얘기를 들으면 어느덧 그때로 돌아간 듯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 초기부터 쌓여왔던 많은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되어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항상 기억한 채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저는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MBN의 <부부수업 파뿌리>를 자주 시청합니다. 제 아내는 그런 방송 보면 부정적 감정이 많이 생긴다고 보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꽤 즐겨 보고 있습니다. <부부수업 파뿌리>는 갈등 관계에 있는 가정을 관찰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고 전문가들이 각종의 도움을 주는 방송입니다. 이미 부부 관계가 많이 멀어진 가정이지만, 방송의 끝에는 대부분 관계를 회복하고는 합니다. 프로그램의 중간에 작가분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때 아내 또는 남편의 모습은 어떠셨어요?” 등 부부가 연인 관계였을 때에 대한 질문입니다. 질문을 듣고 과거를 상상하는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참 예뻤죠” “거의 매일 만났어요” “그때는 저 사람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도 했었죠” “참 든든했어요. 뭐든 다 해주었죠” 등의 그들만의 아름다웠던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다들 웃습니다. 

    

우리 시대는 남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가마 타고 시집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때 그 시절, 배우자에 대한 마음이 움직여 누구보다 절실한 사랑을 해왔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 아닌 적절한 조건이 가미된 만남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틋했을 것입니다.     




유난히도 행복하게 웃는 가정이 우리 집에 왔었습니다. 아이들도 꽤 성장해서 두 아이 다 한참을 뛰어다니고 놀았습니다. 아빠는 아가들과 온 힘을 다해 놀아 주고 있었으며, 엄마는 아가들이 놀기에 필요한 장난감을 바꿔 주고, 간식을 먹이는 등 너무나 화목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침 우리도 아이들과 정원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의 아이들과 얘기도 하고, 부모님과 이런저런 대화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부가 싸우는 과정과 여행 오기 전까지 서로 티격태격했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맞벌이 부부라서 엄마가 전날 짐을 다 챙겨 놓았고, 아빠가 반차 후 잠시 집에 들러 짐을 가지고 엄마를 픽업해 여행을 떠나는 완벽한 코스로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제는 딸 아이의 짐가방에서 시작됐습니다. 아빠가 엄마가 시킨 것을 다 잘 챙겨 왔는데, 여행 가서 신으려고 했던 아이 신발을 안 챙겨 왔습니다. 엄마는 옷을 맞춰 세팅했으니까 신발이 맞지 않는 것이 속상하고, 남편은 정신없이 회사를 나와 엄마가 말한 대로 짐을 잘 챙겨 왔는데, 작은 소품 하나 정도 빼먹은 걸로 한마디를 들으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러다 시작한 말다툼이 원래 남편은 꼼꼼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발전했고, 남편은 내가 정말 바쁜 회사에서 집에 충실하기 위해 수없이 눈치 보고 다니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맨날 트집만 잡는다고 이어졌으며, 신혼 초부터 있었던 얘기들이 나오면서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빠는 아가들과 열심히 놀아 주고, 엄마는 간식을 챙겨 주었던 게 아니라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묵혔던 얘기를 엄마가 조금씩 하면서 약간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손님 부부가 대화하면서 공감한 점이 있습니다. 정말 별일 아닌데도 말이 한마디씩 오가다 보면 크게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이제 무엇이 싸움의 원인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그저 서로의 싸울 때 싫어하는 모습이 다시 나오는 것에 분노할 뿐이었습니다. 시작은 다양하나 결국 싸움의 모습은 비슷하게 끝이 납니다. 서로 그렇게 싸움이 커지길 원하지 않지만, 한마디씩만 보탠 것이 일이 커져 버리면 그때부터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께서 해주신 싸움의 조언을 이 부부에게도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같은 모습이며, 되도록 싸우게 된 원인만 가지고 얘기하려고 하나, 그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냥 묻어야 합니다. 무조건 묻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많은 다툼을 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미운 감정이 깊이 박혀 있습니다. 평상시에 말을 안 하는 것일 뿐, 마음속에 상대방의 미운 모습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싸우고 지난 이야기지만 다시 그 주제가 나오면 똑같이 싸우게 됩니다.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때도 그냥 넘어간 문제가 상당합니다.     


서로 그런 민감한 주제가 있습니다. 지금 비록 상대방이 집에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온 것으로 말다툼이 시작되었지만 문제는 과거에 유사한 일들이 있었고, 상대방의 반응이 비슷하게 나올 것을 우려하여 조금만 비슷한 행동과 말이 나와도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묻어야 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만족스럽고 좋은 시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과거의 상대방의 행동을 완전히 묻어 버리지 않으면, 자주 쓰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휴, 또 시작이네. 또 저러네.”     


‘또’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당신의 지금 그 행동과 말투가 잘못되었다는 것만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게 커지지 않을 다툼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상대방의 모습과 행동, 말을 다 묻어 버려야 합니다. 그저 따지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저 깊은 곳에 묻어 버리지 않으면 분노를 누르고 있던 마음속의 화가 결국 나오게 됩니다. 참을 만큼 참은 게 터져서 속이 시원하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상대방의 분노도 터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묻어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적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상대방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이 다퉈 오면서 정말 많이 바뀌었으나, 그와 유사한 작은 모습만 나와도 과거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직도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진 엄마, 아빠들도 많습니다. 제 지인의 남편은 제때 밥 먹는 걸 너무 중시해서 밥을 시간 맞춰 차려 주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고 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인데 밥 차리는 것에만 그렇게 예민하다고 합니다. 밥 시간이 중요하면 본인이 차려 먹으면 되는 것을, 꼭 아내가 차려 줘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정상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이 분이 어떠한 사연이 있어 밥을 제때 먹는 것에 예민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부부가 맞춰 간다는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최후의 마지막 자존심이나 지켜야 할 선까지 결국은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부부가, 나아가 부모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의 부부가 아니라면 과거의 다툼을 묻어 두고 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오다 같이 살고, 갑자기 육아라는 황당한 상황을 겪으면서 정말 많이 변해 왔습니다. 상대방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과거에 본 상대방의 모습을 아직 지우지 못해 그 상황들과 오버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거의 모든 부부가 겪고 있는 모습이므로 자신의 결혼 생활을 후회할 필요도 없습니다. 분명 좋은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묻어 버리고서 새로운 다툼은 새로운 다툼으로 바라본다면 부부 관계가 조금은 달리 보일 것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조금 내려놓으라고 자주 말합니다. 《분노 사회》라는 도서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가 더욱더 대립되는 관계를 만들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타협보다는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젠더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동서 간의 갈등, 지역 갈등, 정치적 갈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서로를 ‘충’이라 부르면서, 맘충, 개저씨, 할줌마, 한남충, 알바충, 지방충, 급식충, 김치녀, 극혐 등 혐오적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의 경제제재로 불매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행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나 국내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분노의 감정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적절한 비판보다는 맹목적인 비난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가족 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부부간에 이런 ‘충’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거나, 젠더 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다툼의 소지가 큽니다. 상대를 비난하는 마음속에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도 같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부 관계는 서로 묵혀 둔 사건도 많고, 그에 따른 악한 감정들도 어딘가 잠시 밀어 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분노의 소지가 많은 듯합니다. 부부간의 민감한 대화는 피하고, 묵힌 감정은 그대로 묻어 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부부의 외모 변화도 부부 갈등의 중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이후 많은 부부들의 외모가 변화합니다. 남편은 운동 부족, 술자리 등으로 살이 찌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들의 외모 변화는 산후 붓기가 안 빠지거나 임신했을 때 쪘던 살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산 이후에는 모유 수유를 해야 하므로 계속 허기가 집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때 섭취해 주면 좀 낫겠지만, 대부분 아이를 보면서 거의 마시다시피 식사를 합니다. 제 아내는 지금도 밥을 빨리 먹습니다. 아이가 꽤 성장한 많은 엄마들이 여전히 밥을 서둘러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가들 어렸을 때 급하게 먹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참 마음 아픕니다.     


몸이 지쳐 대충 먹고 마는 경우도 많으며, 한 숟가락 먹으려고 하면 아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겨 서둘러 먹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가가 신생아일 때는 그야말로 화장실도 못 갑니다. 물론 악착같이 출산 전 몸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많지만, 출산 후 식사량을 조절하면 주위에서 한마디 듣기 일쑤입니다. 자연스레 외모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친 삶이 계속되다 보니 인상도 편치 않습니다. 출산 전의 예쁘고, 밝은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이 잘 안된다는 부부도 많이 봤습니다. 결혼 후 서로의 달라진 모습이 우리 가정을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변해 버린 외모에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배우자 누구에게든 살을 빼라, 운동을 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배우자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을 겁니다.     




어떠한 방법이 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양평에 살다 보니 산책 코스가 꽤 있습니다. 어떤 자영업 하는 부부는 아침에 애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강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어떤 부부는 저녁에 서로 1시간씩 필라테스나 헬스장을 번갈아 가며 다닌다고도 합니다. 아가가 조금씩 커가면서, 습관처럼 먹던 야식을 줄이고, 남성들은 자기 전에 먹는 혼술을 줄여 가기도 합니다.     


저희도 아가들이 9세, 6세이다 보니 한 해 한 해 달라져 가는 걸 느꼈습니다. 막연한 보육의 대상이던 아이들이 점차 교육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부모의 역할도 변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육아했던 부모들도 아가가 크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서로 간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안고서 힘든 순간을 잘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출산 후 몸이 돌아오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남편도 점점 어디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합니다. 회사와 육아, 각종의 집안일, 여기저기 술자리 등으로 아가가 어릴수록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아주 약간의 노력으로, 같이 하는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걷기부터 시작해서 행복해지는 법을 하나씩 알아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우리 부부도 역시 서로의 변화된 외모를 보면서, 살짝 웃기도 하고, 같이 운동해 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우리 부부의 외모도 많이 변했습니다. 또한 제 아내는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출산의 흔적과 여러 생활 습관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저에게도 제 아내의 미운 점이 기억에 남으며, 싸웠던 순간을 돌이키면 또다시 감정이 올라옵니다.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려고 하는 걸 보니 얼른 이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어느 부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 아내이고, 제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최소 50년은 더 같이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미운 점은 아무런 조건 없이 묻어 두고, 나와 함께 살며 변해 가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만 안고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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