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월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2>를 정주행했다.(스포는 없다)
<데블스 플랜 2>가 5월 6일부터 매주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이목을 끌고 있다. 데블스 플랜 2에 이세돌 바둑기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의 존재감이 눈에 도드라졌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목 빠지게 기다린 이유 중 하나는 이세돌의 활약상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8할이었다. 오후 4시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공개되었고 나는 그날 밤늦게까지 프로그램을 봤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주중에 시리즈 정주행은 못 할 짓이지만 게임 게임 서바이벌의 도파민은 그만큼 강력했다.
<데블스 플랜 2>는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특히 미술이 굉장히 좋고, 설계가 정말 치밀하다. 실제로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들을 곳곳에 숨겨 두었고, 플레이어들은 그런 환경에서 게임을 하며 몰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인매치와 데스매치로 준비된 게임들도 꽤나 탄탄했다. 또한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며 재밌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생에 딱 한번 방탈출을 하러 간 기억을 되짚어 본다. 승부욕이 없는 나와 내 친구들이 허허거리다가 게임이 끝나버렸고 그날 나는 알았다. 아, 내가 만약 이런 걸로 대회나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난 무조건 첫판 탈락이다.(실제로 그렇게 두뇌가 비상하지도 않아서 뽑히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로그램의 환경에 더 눈길이 갔다. 어떻게 설계가 되었는지, 어떻게 미술을 했는지, 게임 장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등.
두뇌 게임 서바이벌의 계보는 지니어스게임부터 본격화된다. 지니어스게임의 첫 방송이 2013년에 시작되었으니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청자들도 이 게임의 구조에 익숙해졌다. 두뇌 게임 서바이벌 류는 정치, 음모, 배신 등이 허용된다.(한때는 절도도 허락되었으나 한 시즌에 큰 문제가 되어 그 이후 절도는 안된다고 룰에 명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두뇌 게임 서바이벌에서 다양한 종류의 우승자가 탄생했다. 결국 맨 마지막 매치에 가서는 모두가 개인을 위해 게임을 하고 승기를 잡지만, 그 과정으로 가는 데에 있어 누군가는 정치로, 누군가는 나 홀로, 누군가는 협력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에피소드들이 방영된 것을 보며 플레이어들은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암묵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생각 또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 이런 두뇌 게임 서바이벌 장르는 그 게임 내에서 "사회적인 약속이 해제된다"는 전제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우리의 삶에서 적용되던 도덕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고 적어도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들이 해제된 세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한 명이 이기는 게임이고, 이기는 것이 절대선으로 그려진다. 남을 함부로 속이면 안 된다는 우리의 다짐도, 신의를 지켜야 한다 라는 당위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관계적인 합의도 해제된다. 결국 그것이 "게임이니까". 모든 것이 "이건 게임이니까"라는 한 마디에 다 무장 해제된다. 연합하고 누군가는 소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깨졌을 때 배덕감과 함께 도파민이 터진다.
이런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봐 온 우리는 이제는 그 "이건 게임이니까"의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비난한다. 결국 네가 이기고 싶은 것 아니야? 결국 이기적인 일을 하게 될 텐데, 왜 이타적인 척 해? 노선을 정해 - 라고 강조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데블스 플랜 1>의 궤도였다. 그리고 그가 모두를 구하는 전략을 주장했을 때, 그는 온갖 비난을 받았다. 프로그램 자체를 노잼으로 만들었다고. 그리고 결승에 간 궤도에게 착한척하다가 결국 결승 가네? 처음부터 우승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간 거였으면 착한 척 사람들을 조종하지 말았어야지,라고 비난을 받는다. 결승에서의 궤도는 많이 지쳐 보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어쩌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궤도의 방송을 이전부터 많이 봐 왔기에 그를 무조건적으로 좋게 보는 것이거나 확대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궤도가 한 선택들이 "사회적 암묵적 룰이 해제된다"는 두뇌 게임 서바이벌의 전제 자체를 흔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좋지 못한 명제이고, 아무리 그 구조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협력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궤도는 인류가 협력했을 때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다는 과학적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단기적으로 해제되는 사회적 합의가 그럼에도 지켜졌을 때의 구조가 기존의 두뇌 게임 서바이벌의 구조를 해체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발견한 "이타성"이 공생을 이끌어냈던 것을 증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비록 궤도의 전략이 전체 게임을 "노잼"으로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궤도가 나왔던 시즌 1에서 "적자생존"을 강제하는 프로그램 장르 자체에 대한 또 다른 전략을 제시하려고 했던 시도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암묵적 룰이 깨지는 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배덕감과 재미가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조금 혼란스럽다. 현실이 더 판타지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두뇌 게임 서바이벌류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지친다고 느낀다. 타인을 불신하는 것, 언제든 그가 나를 배신할 수 있다고 염두에 두는 것. 그런 상황들을 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과 그렇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서. 판타지보다도 더 판타지스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도파민(혹은 아드레날린)이 아닌 노잼이라도 연대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