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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황금들녘에서 우리답게 결혼할래

둘만의 첫 프로젝트, 셀프웨딩의 기록

by amy moong


— 작년 10월, 마침내 ‘결혼’ 이라는 걸 하다


예전부터 나는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밟고 싶다기보단, “평생의 반려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금의 배우자가 내 인생에 들어왔고, 우린 차분하고도 속도감 있게 결혼이라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 결혼식 날이요.


그만큼 내 인생의 가장 깊은 기억으로 남은, 정말 뜻깊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으니까.


사실 나이를 먹으며 “결혼식이란 걸 꼭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결혼’을 한다라고 하면, 결혼의 본질보다는 화려한 예식장, 값비싼 예복 등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틀 안에서 내가 정말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결혼이 가능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혼식일까?

결혼이라는 행사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나는 정작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은 걸까? 왜 불필요한 것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결혼의 모습은 무엇일까?


평소 ‘가치 있는 소비’를 추구해 온 나는, 과거 주변의 수많은 결혼식을 지켜보며 돈만 퍼다 붓는, 이른바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식이 내 인생에 과연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러 복잡한 절차와 관습들로 인해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이 다투며 스트레스받고 싶지도, 우리에게도, 하객들에게도, 의미 없는 순간들로 가득한 형식적인 결혼식을 치르고 싶진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스몰웨딩, 셀프웨딩, 하우스웨딩, 해외 웨딩 등 과거 형식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각자의 개성을 담은 새로운 결혼 트렌드가 유행하고는 있다지만, 그마저도 거품이 많이 끼여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내가 결혼식을 올린 경북 예천의 작은 시골마을 어르신들께서 우리의 결혼소식을 듣고 줄곧 하시던 말씀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큰 일


그만큼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결혼’이라는 여정이기에, 우린 허례허식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진심과 감동이 있는, 작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둘만의 특별한 ‘스몰웨딩’을 기획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작은 결혼식”을 꿈꾸며, 단순히 비용을 아끼기 위한 절약형 스몰웨딩이 아닌 ‘현명한 소비’와 ‘진정성 있는 결혼식 문화’를 위한 규모, 형식, 내용 등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 내가 줄곧 꿈꾸던 결혼식


1.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공간’에서, ‘우리 사람들’과 함께하는 결혼식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장소가 아닌, 불 품 없이 허름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의 기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평소 자주 연락하지 않는 지인, 친척, 어르신 하객들로 가득한, 정신없는 결혼식이 아닌,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아껴온, 우리의 삶을 누구보다 응원해 줄 수 있는, ‘우리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고 싶었다.


2. ‘하객과 함께’ 하는 결혼식

신랑 신부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참석한 하객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결혼식을 꿈꿔왔다.

누군가의 주말이 ‘내 결혼식에 참석하는 시간’으로 날아가버리는 게 아닌,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3. 축의금 없는 결혼식

우리나라 결혼식의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인, “축의금”이라는 걸 한번 없애보고 싶었다.

청첩장을 받아 들고 시장통처럼 붐비는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에게 눈도장만 찍고 빚을 갚듯 축의만 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여태껏 부모님과 내가 냈던 축의금을 돌려받는, 이른바 밀린 수금을 하는 듯한 결혼식은 원하지 않았다.

대신 그런 형식적인 부담 없이, 오롯이 축하의 마음만을 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돈보다는 함께 와주는 그 시간과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


4. 두 사람의 개성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결혼식

작고 소박하지만 우리만의 온도와 이야기, 진심을 담고 싶었다. 오직 우리 다운 방식으로 꾸미고, 우리 다운 언어로 약속을 나누며, 사람의 손때가 묻은 듯, 따스하고 진심 어린 그런 결혼 말이다.



— 상상 속 수제 결혼식, 과연 가능할까?


물론 이런 웨딩을 꿈꿔오긴 했지만, 사실 진짜 내가 어떻게 결혼할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기에, 두 사람의 의견이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참 운이 좋게도 나와 생각이 닮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작지만 단단한 결혼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만의 특별한 공간에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우리끼리 적당한 날짜까지 잡았지만, “과연 이게 진짜 가능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두 달여간의 시간 동안 둘이서 함께 매일같이 하나씩 준비하며 그 상상은 조금씩 현실로 변해갔다.


준비기간 동안에는 “나중에 둘이서 스몰웨딩 업체나 차릴까?”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고, 하나하나 손수 다 준비해 나가는 만큼 힘을 줄 곳은 확실하게 주고 힘을 뺄 곳은 과감 없이 빼며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더 정확히 담아내려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돈’은 아끼되, 우리가 초대한 분들을 ’ 대접하기 위한 돈‘ 그리고 ’ 우리의 추억을 더욱 빛내기 위한 시간과 돈‘은 아낌없이 투자했다.



—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했던,

우리 다웠던 예식날


결과적으로 결혼식은 예상보다 더 만족스러웠고
따스하고도 행복했던 결혼식이 끝나고 나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여운이 밀려왔다.


물론 공장식 결혼식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돈을 들인 만큼 나의 수고와 시간을 확실히 덜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한 참여도는 떨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의 배움과 추억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다 준비한다면, 힘든 부분도 많고 ’ 이래서 돈 주고 맡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힘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얻는 성장의 폭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직접 이것저것 알아보고 업체와 협상을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우린 잘할 수 있다며 서로 격려해 주던, 이 모든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단순히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인생에 필요한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를 견고히 다져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우리는 운이 좋게도 모두가 즐길 수 있을 만한 둘만의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양가 부모님 모두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운이 좋게도 둘 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생활이었기에, 이 결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상황을 뒷받침한 것은 결국 ”우리가 주체가 되어 모든 걸 직접 기획하고 꾸며나가겠다 “는 단단한 의지였다. 누구보다 그 의지가 강했기에,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믿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다웠던 수제 작은 결혼식의 두 달간의 여정을 하나씩 풀어나가보려 한다.


이제는 [결혼]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나’와 ‘배우자’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고, 가장 밀도 높은 사랑과 축복으로 충만한 ‘행복한 결혼’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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