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받은 건 교습소를 열고 6개월쯤 지난 후였다. 부장은 오랫만이라는 인사와 함께 복직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교육회사에서 15년 일했고 그중 10년은 지사를 운영하며 본사 교육을 지원했다. 교육단을 정비 중이라며 단장을 제안했다. '지사장님만큼 교육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추켜 세우고 2년이나 지난 퇴사를 이제와 아쉬워했다.
지사를 그만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달라진 회사 분위기가 컸다. 퇴사하기 3년 전 회사가 혁신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소리로 이해했다. 기대와 달리 회사는 오래 같이 일한 직원을 해고하고 영업 전문 인력과 신규지사를 영입해 규모를 확장했다. 상품 역시 내실보단 포장지를 바꾸는데 더 많이 투자했다. 새로 개발한 상품도 혁신이라 내놓은 방향성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 애정이 깊었다. 초창기부터 회사의 성장을 지켜봤고 상품에 자신이 있었다. 교육을 중시하는 회사 철학이 맘에 들었고 나와 맞다고 생각했다. 영업이 최우선이 되면서 교육은 뒷전이 됐다. 지사장들은 경쟁을 넘어 편이 갈라졌다. 영향력 있는 몇몇 지사장들에게 휘둘리는 회사가 꼴 보기 싫었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상품 영업이 잘될 리 없었다. 문제를 제시하면 지사장 영업력을 지적했다. 지사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교육자라 생각하며 살던 정체성에 금이 갔다. 물론 다 나 같진 않았다. 바뀐 정책을 찬성하는 지사장도 있고 실적 높은 사람도 있었다. 비판은 힘들고 자책은 쉬웠는지 변한 시장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단 생각이 들 때쯤 퇴사를 결정했다.
부장의 전화는 전후사정 듣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졌다. 영업력만으로 교육회사가 유지될 리 없었다. 폐지시킨 교육단을 담당할만한 사람들은 퇴사했거나 해고됐을 테니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을 것이다. 본사 교육팀을 지원할 때 전국을 돌며 교육하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 있었다. 현장에서 바로 받는 피드백은 설렜고 강의 준비하며 연구하는 과정도 즐거웠다. 지사장, 교육팀장이라 찍힌 명함도 보기 좋았다.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차 끌고 출장 다니면서 바쁜 와중에도 대접받으니 고생인 줄 몰랐다.
부장의 제안을 듣고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불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곧 불씨가 될지도 모를 희미한 연기 한 자락이 마음에 솟아올랐다. 작은 교습소가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강의할 모습을 그려봤다. 재밌겠네. 멋져 보이겠네. 교습소 원장보다는 교육단장이 있어 보이긴 하겠네. 연락 기다리겠다는 말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 시절 만족스럽던 기억만큼 불행했던 감각도 생생했다.
자존심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존재감에 대한 인식이고 자존감은 존재를 드러내며 느끼는 행복이다. 스스로 잘 나간다 믿었던 시간은 주위에 맞춰 색을 바꾸는 곤충과 같은 삶이었다. 겁이 나 몸을 부풀리듯 자존심을 부풀렸다. 세상의 기준으로 존재감을 갖추려니 올라가야 할 곳은 끝도 없고 힘이 들었다. 가진 것으로 나를 설명하려 들고 부족하면 실망했다. 성과가 기대 이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실적이 자존심이 되는 세계에서 지내는 동안 자주 초라했다.
그곳을 떠나며 나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는 리더십이 부족하고 패거리 문화를 싫어하고 조직 적응력이 약하고 영업을 못하는 사람이다. 겸손이나 비하가 아니라 그게 솔직한 나다. 세상 사람 모두 리더십이 높고 조직생활이 다 맞을 리 없으며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아니다. 기준을 회사에 적합한 인간으로 놓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었다.
부족한 능력은 모자람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거란 걸 이제는 안다. 자체로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 판단은 외부에서 온다. 회사에 있었다면 열등감을 느꼈겠지만 회사를 나오니 상관없었다. 타인이 원하는 인간상에 맞추려니 버거웠지만 기준을 나로 바꾸니 편안했다. 세상이 멋있어하는 모습을 내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로 착각했다. 그러니 고단했지만 놓고나니 이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었다.
초나라 왕이 장자에게 재상자리를 청했을 때 장자가 말하길 제사상에 올릴 소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여도 때가 되면 죽여 제사상에 올릴 것인데 그런 소보다 고독하더라도 자유로운 한 마리의 돼지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거절한다고 했을 때 부장은 좋은 기회인데 아쉽다고 했다. 재상자리와 비교할 만큼 대단한 자리는 아니지만 고돈(孤豚)이 된 기분이었다. 고독하지만 행복한 (날씬하고 싶은) 돼지. 퇴사하며 인생관이 크게 바뀌었다. 회사를 나올 땐 경쟁에서 도태된 기분이었다. 지나고 보니 자유를 깨닫고 평안을 얻기 위한 여정이었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진리를 여전히 배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