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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Feb 23. 2022

난 늬들한테 그런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남이 해준 교육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도통이가 아마도 6세 때였다.

평소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녀석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렸더니, 녀석이 노래 부르듯 읊조린 대사였다. 하?!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응!!! 어린이집에서!!! 수세미가!!!”


수세미? 아… 선생님…


 “수세미가!! 누가 나 만지면 이렇게 말하라고 했어!”


이 샠…. 그 ‘누가’에 엄마도 포함인 것이냐?

알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란 것을…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였다. 놈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은 교육의 필요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나를 열받게 했다. 그리고 저 리듬감… 일부로 저렇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받게 만들려고…

마음을 식히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늠시키!!! 엄마가 만지는데!!!!”


그랬더니 녀석이 양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아니야!!! 수세미가 아무도 안 된댔어!!!”


 하… 너 이따가 내가 목욕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거지? 물론 녀석에게도 그건 별개였다.

놈은 내가 지를 목욕시킬 때 구석구석 만지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재미로 지 엉덩이에 손대는 것만 길길이 날뛰었다. 하… 내 몽실몽실 장난감… (오히려 11살인 지금은 별말 안 합니다.)


6세 도통이, 너 귀찮은거 너무 티내는 거 아니니??

이번엔 막냉이가 6세를 맞이했다.

저 놈도 그러겠지? 우리 막냉이 엉덩이까지 금지당하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사나? 그런데… 아무리 주물럭거려도 막냉이 녀석은 저 리듬감 쩌는 멘트를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어린이집에서 너만 안 배웠을 리 없는데. 그래서 슬쩍 물어봤다.


 “막냉아, 어린이집에서… 누가 너 만지면 안 된다고 하라고… 안 배웠어?”


 그랬더니 녀석이 말했다.


 “응! 배웠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하래.”


그래!! 그거!!! 그 리듬감!!! 근데 넌 왜 안 해?


 “그런데 우리 막냉이는 왜 엄마가 엉덩이 만져도 가만있어?”

 

 그랬더니 녀석이 쿨하게 말했다.


 “응… 엄마는 괜찮아.”


하?!? 왓더… 그거… 선택적 허용이 가능한 거였어?!?!? 도통이 이 시키… 그렇게 나는 막냉이 엉덩이 터치 허가권을 얻었다.

(막냉이가 ‘아빠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훗)


그런데 막냉이는 내게 지 엉덩이를 내준 대신 다른 것을 빼앗아갔다.


이것이 5세의 카리스마

“엄마, 집에 술 있어?”

 

어린이 집에서 막 하원한 녀석이 주먹을 불끈 쥐고 따지듯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니가 왜 궁금해하는 거지? 원에서 뭔가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응… 있지… 근데 술은 왜??”

 “당장 갖다 버려!!”


?!?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내 친구들을 갖다 버리라니요?!


 “술은 엄마를 죽일 수도 있어. 샘새미가 그랬어!!”


샘새미?? 아… 선생님…

근데 막냉아, 그건 선생님께서 오해하신 거야. 술이 엄마를 죽이다니… 술은 엄마의 친구란다. 친구끼리 그럴 리 없잖니.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아니야, 막냉아. 술은…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야.“


일단 뭐가 괜찮은지는… 나중에 얘기하는 걸로 하고… 그러자 녀석이 말했다.


 “아니야!! 술을 마시면 배가 단단해지고! (간경화를 말하는 듯…) 뇌가 뒤죽박죽이 되고!! (어지러워진다는 뜻인 듯…) 위가 튀어나오고!!! (토나온단 뜻인 듯…) 막냉이도 기억 못 하고!!! (필름 끊긴다는 뜻인 듯…) 못 걷게 되고!! (집구석에 네발로 기어들어온단 뜻인 듯) 자꾸 술만 먹게 돼!!! (알콜 중독된단 뜻인 듯.)”


와… 그동안 내가… 뭘 마신거니? 그리고 넌 어디서 이렇게 야무지게 배운 걸까?!


 “막냉아… 엄마는 그 정도로… 먹진 않아.”

 “아냐!!!! 내가 봤어!! 재희 이모랑!!!”


뭐? 신재희??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니 눈앞에서 네발로 집구석에 기어 와서는 너도 못 알아보고 토를 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막냉아, 엄마보다는 재희 이모가 많이 마셔.”


미안하다. 신재희. 토리의 관심을 좀 돌릴 필요가 있어서… 그리고 거짓말은 아니잖니.


 “재희 이모??? 지금 당장 전화해 봐!! 지금도 술 먹고 있는지!! 아니아니, 전화하지 마. 전화해도 어지러워서 못 받을 거야. 막냉이도 기억 못 할 거야!! 흐엉!!”


아니, 막냉아. 진정해 봐.

아무리 신재희라도 오후 2시부터 그렇게까지 먹진 않아.


그 뒤로도 녀석은 툭하면 신재희한테 전화를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고, 나는 결국 집에 있는 술을 모두 숨겼다. 그리고 한동안은 신재희 집에서 마셨다.

하… 저 콩알만 한 게 뭐라고 내가 이리 눈치를 보다니.


그렇게 한 달쯤 흘렀을까.

저녁 초대를 받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 집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당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져있었고, 우리는 아이들을 2층으로 올려 보내고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런데 술판을 본 막냉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내 옆에 착 달라붙어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젠장… 특히 녀석은 소윤 이모에게 몹시 눈을 박고 있었다.


 “엄마, 소윤 이모는 뭐 먹는 거야? 저 하얀 거 뭐야?”

 “응. 막걸리.”

 “막걸리가 뭔데?”

 “… 쌀로 만든 술이지.”


미안하다. 친구야. 나에겐 너를 지켜줄 여유가 없는지라… 소윤이가 주종을 바꾸자 녀석이 또 물었다.


“엄마, 소윤 이모 지금은 뭐 먹어?”

 “응… 맥주.”

 “맥주는 뭐야?”

 “…… 보리로 만든 술이지.”

 “앗!! 이모가 방금 맥주에 뭐 부었어!!! 저건 뭐야? 저 투명하고 다이아몬드 같은 거!!! “

 “응?? 다이아몬드?! 아… 소주?”


왜때문인지 녀석은 투명하기만 하면 전부 다이아몬드 같다고 한다.


 “소주는 뭐야?? 그것도 술이야?”

 “응. 다이아몬드 같은 술이지. 우리 막냉이가 이젠 잘 아는구나.”

 “근데 왜 보리에 다이아몬드를 부어?”

 “응… 술을 더 고급지게 만들려고 그러지. 소윤 이모는 보리만 들어간 거 싫어하거든.”

 “소윤 이모는 다이아몬드를 더 좋아해?”

 “응… 뭐… 그런 셈이지.“

 “엄마, 다이아몬드가 보리보다 더 좋은 거야?? 다이아몬드랑 보리랑 싸우면 누가 이겨? 누가 더 쎄??”


아니, 걔들이 느닷없이 왜 싸우니? 일단 섞어놓으면 누구보다도 친화력 있게 어울리는 친구들인데…


 “으흥… 뭐가 더 세긴, 소윤 이모가 제일 세지.”

 “아하!! 소윤 이모가 제일 세? 엄마보다??”

 “당연하지. 소윤 이모는 세계 챔피언(?)이야.”


소윤 이모가 엄마보다 더 세다는 사실에 놀란 녀석은 그 뒤로도 소윤 이모만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이아몬드를 프리패스시키는 소윤 이모의 목만 바라봤다.


그날 막냉이는 깨달았다.

자고로 쎈 사람은 고급진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마시고도 배가 단단해지지도, 저를 못 알아보지도, 뇌가 어지러워지지도, 위장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녀석은 그날 이후부터… 나의 술 금지령을 풀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희에게 이럴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 내가 이런 짓들을 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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