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Feb 22. 2021

혹시 내 아이가 영재일지도?

아가, 느려도 괜찮아.

 “이거 혹시.... 내 아이가 영재인 건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글쎄... 누구나 한 번쯤??


도통이는 40주 꽉 채워서 3.7킬로의 우량아로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목에서 커다란 혹이 만져졌다. 병원에서는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난산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거라고 했다. 재활을 해서 혹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내가 도통이를 출산했을 때 얼굴과 눈에 핏줄이 터져서 그 피가 아래로 몰려 턱이 늘어져있었으니, 난산이 원인이 맞았던 것도 같다. 얼마나 심했냐면… 행여 내가 거울을 보고 충격받을까 봐 신랑이 병실 거울을 가려놨을 정도였다.


이 세상에는 돈을 지불하는 입장이어도 절대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일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다. 의사가 아이의 재활이 필요하다 하면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설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라고 하더라도. 아기를 재활을 할 때는 엄마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가슴 아파서 못 볼 것이라고.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엄마가 보지 못한다는 것인지. 내 아이가 관련되어 있는데 보지 못할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도통이가 재활하던 첫날 그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나오면서 그다음 예약을 싹 다 취소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나더러 쿨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방치하는 거 아니냐고 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쿨하지 않았다. 아이의 재활하는 모습을 보고 속이 무너졌기에 예약을 전부 취소한 것이었다. 나는 세상 약한 엄마였다.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았다. 내 손으로 아이의 재활을 해주었다. 그날 눈에 박아둔 것이 있었기에 그대로 해줄 수 있었다. 혹이 사라지기까지는 약 반년이 걸렸다. 만약에 도통이의 혹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날의 선택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해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당시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자가 유행이었다. 그런데 도통이는 크게 태어나서 작게 자랐다. 도통이의 돌잔치 때, 하나하나 챙기기가 귀찮았던 나는 코스로 전부 준비해 주는 돌잔치를 구매했다. 사회자도 업체 측에서 제공해 주었다. 돌잔치 마지막쯤 퀴즈를 맞추면 선물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사회자가 낸 문제는 도통이의 몸무게를 맞히는 것이었는데,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 도통이 몸무게가 8킬로가 안 되었었다. 3.7 키로 우량아로 태어나 1년 만에 상위 1프로를 찍은 것이었다. 퀴즈 문제를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걸렀을 텐데.


아이를 낳고 알았다. 악의 없는 선한 말에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인들이 의미 없이 흘리는 말에 상처가 났고, 지나가는 행인1, 행인2가 하는 말들마저도 때로는 비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쳐도 웃는 법을 배웠다. 어쩌겠는가. 나는 한없이 가벼운 도통이를 안고 웃으며 돌잔치를 마무리했다.


도통이가 3살이 되던 해 (정확히는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한테서 아이가 성장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것 같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여기저기 필사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검사 과정이 아이를 많이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 검사를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걸 하기에 아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1년만 더, 딱 1년만 더 키우고 하자. 검사를 미루면서 마음으로는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냥 힘든 아이를 볼 자신이 없어서 또다시 상황에서 도망친 것뿐이었다.


그리고 도통이가 5살이 되었다. 아이는 그때까지 말을 잘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언어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고, 나는 다시 한번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때 우리 시어머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율군이가 크면서 이마이 느렸다. 아빠 닮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마래이.”


의사의 말보다 시어머니의 말씀을 믿고 싶었다. 어쨌든 내 신랑은 지금 멋진 사람이 아니던가. 아빠를 닮았다면 저 아이도 잘 자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도통이는 그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느렸다. 천천히 한발 한발 정성껏 제 갈 길을 가는 거북이 같았다. 하여 나는 ‘도통이가 똑똑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할 기회가 없었다. 아예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그저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기만 했다.


그런 도통이가 1학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학생 전원이 참가하는 달리기 시합이 열렸다. 녀석은 꼴찌를 했고, 그 영상을 우리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여기 2등 하는 아이가 도통이니?”

 “아니? 꼴찌 하는 아이가 도통이야.”


우리 부모님께선 선뜻 이해를 못 하셨다. 내 딸은 학교 다닐 적에 공부는 못 했어도 운동을 못 한 적은 없었는데... 왜 우리 손주는 운동을 못 하니?

응, 엄마... 김서방 닮아서 그래…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아이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집어넣었다. 넣으면서 이실직고하는 마음으로 관장님께 말씀드렸다.


 “관장님, 도통이가 운동을 많이 못 합니다. 그래서 발전에 대한 기대치는 딱히 없어요. 운동은 못 해도 좋으니까 운동에 대한 자신감만 좀 심어주세요.


 “에이, 어머님이 운동 머신인데 그럴 리가요. 혹시 기대치가 높으신 거 아닌가요?”


그리도 한 달 후, 관장님께서 몹시 의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어머님, 제가 거짓말은 못 해서요. 도통이가 운동 실력은 없어요. 그런데요. 어머님 걱정과는 달리 자신감은 넘쳐나요.”


그날 저녁 엄마가 관장님과 상담을 한 사실을 안 도통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 관장님이 뭐라셔? 나 너무 잘한다지? 관장님도 아마 놀라셨을 거야. 내가 너무 잘해서.”


그렇다. 녀석에게 자신감을 따로 심어줄 필요가 없었다. 녀석에게는 무척 단단한 자신감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통이의 방학 숙제
문제를 풀면서 내가 잘 몰랐던 점 :
모르는 게 없다.

문제를 풀면서 내가 더 나아진 점 :
너무 똑똑해서 더 나아질 것이 없다.
뺄셈 딱 2개 틀린 건 실수다.

이 정도면 뭐… 자신감 하나는 거의 상위 1% 아닌가?


라고 생각했건만…

바로 방과 후 바둑 학부모 참관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하나에 학생 여럿이 참가하여 바둑 문제를 푸는 수업 중이었고, 문제를 다 풀면 등수까지 나오는 스마트한 시스템이었다.


선생님께서는 1, 2, 17등을 한 학생들에게 초콜릿을 나눠 주시겠다고 선언하셨고, 문제가 끝나자 교실 앞 큰 화면에는 1, 2, 17등 아이들의 이름이 오픈되었다.

1등 :  장상현
2등 : 김덕배
17등 : 김도통

????? 그리고 바둑반의 전원은 17명이었다. 도대체 꼴찌는 왜 오픈하는 건지…


나는 어미로써 저렇게 꼴찌라고 공개적으로 오픈된 내 아이가 저걸 보고 괜찮은 건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괜찮은지 물어보려는데… 녀석이 양손에 초콜릿을 쥐고 팔짝팔짝 기뻐 날뛰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저 초콜릿을 받았다는 사실에 행복한 저 아이를 보며… 어쩌면 저 녀석은 자신감이고 뭐고 간에 그저 이유 없이 행복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콜릿을 안 사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몇 달 후, 반에서 축구팀이 결성됐다. 나는 늘 그렇듯 축구 감독님께도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아이가 운동 실력이 없습니다. 딱히 잘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즐겁게만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아이를 속단하시면 안 됩니다.”


속단이라뇨. 제가 놈을 만 6년을 봐왔습니다만.

열정이 넘치셨던 감독님은 매시간 동영상을 보내주셨고, 딱히 편집은 안 하셨다. 그래서 영상에는 도통이가 혼자 뒤처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는 괜찮았다. 녀석이 뒤쳐지는 거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하루는 영상에 유난히 슬픈 장면이 많았고, 아이가 괜찮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녀석이 오면 위로라도 해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하원한 도통이가 신발을 벗으면서 말했다.


 “어휴, 오랜만에 축구다운 축구를 했네. 엄마! 내가 오늘 얼마나 잘했는지 엄마는 모르지?”


??!? 아…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도통이는, 저 아이는 ‘속상했겠다.‘, ’잘할 수 있다.’ 같은 위로 따위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 말을 해야 하는 거였다. 아이를 꼭 안고 말했다.


 “우리 도통이 정말 대단하다. 잘하고 있구나.”


그리고 사랑한다.



부모의 사랑은 하늘 같다고 말을 한다. 또는 아이는 네 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말을 한다.

글쎄... 나는 언제나 내가 주는 사랑보다 도통이에게 받는 사랑이 더 컸다. 어쩌면 도통이의 이 뜻 모를 자신감은 약하디 약한 엄마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위한 도통이만의 사랑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아가, 느려도 괜찮아. 사랑해.




‘육아는 전쟁이다.‘ 1권 끝

도통이가 태어나고 약 2년 반 후에 또 다른 종류의 느린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누가 그랬어. 둘째는 빠르다고.


그리고 둘째 이야기는 2권에서 시작됩니다.


이전 24화 난 늬들한테 그런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