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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y 17. 2021

아이한테 말발로 밀리기 시작했다.

진정 놈들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아이들은 자고로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

알고는 있다. 그런데... 주야장천 뛰어놀게만 하다 보면 엄마로서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얘가 뭘 배우고 있긴 한 걸까? 한글은 어느 정도 아는 걸까?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길, 한글은 현명한 자는 반나절이면 충분하고, 둔한 자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세종대왕님을 믿었다. 그래서 한글은 그냥 두었다. 그 결과 도통이는 7세 겨울, 즉 학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한글을 뗐다. 막냉이는... 언젠간 뗄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은... 아니, 산수는 어디까지 알까? 이건 그냥 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닐 텐데.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이때 도통이 나이 7세였다.


 “도통아, 엄마가 도통이에게 마이쮸를 7개 줬어. 근데 두 개를 뺏었다? 그럼 몇 개가 남을까?”


 나는 녀석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하여  ‘7-2=5’ 라는, 더 이상 난이도를 낮추려야 낮출 수도 없는 문제를 낸 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녀석의 얼굴에 왜때문인지 억울함이 슬슬 떠올랐다. 그러더니 주댕이를 댓발 뽑은 상태로 꿍얼거렸다.


 “엄마, 줬던걸 뺏으면 안 되지. 뺏는 건 나쁜 거야”


그렇다. 녀석의 머릿속에 수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즉각 확인을 포기하고 내 할 일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녀석이 내 뒤통수에다가 대고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준다던 마이쮸 7개는 주고 가야지.”


녀석은 수 개념은 몰라도 한글 사용법은 기깔나게 익히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 소득 없이 마이쮸 7개만 삥 뜯겼다.


어느 날, 여동생이 놀러 왔다.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집 안을 유령처럼 방황하던 녀석아 눈에 거슬렸다.


 “도통아...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들어가서 수학 숙제할까?”


그러자 거실을 하릴없이 배회하던 녀석이 우뚝 멈추더니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여동생이,

  

 “우와, 도통이 엄청 착하네. 엄마가 숙제하라고 하니까 바로 숙제하러 들어가네.”


 그 말을 들은 녀석이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서 검지 손가락을 척 올리면서 말했다.


“이모. 내가 착한 게 아니에요. 엄마가 하라는 데 안 한다고 해봤자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라도 하면 최소 한 시간이에요. 한 시간 혼날 바엔 삼십 분 수학 하는 게 낫잖아요.”


순간 나와 그녀는 잠깐의 일시 정지를 겪었다. 고작 어른일 뿐인 우리가 이 상황에서 뭐라고 대꾸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순간의 무력함이란… 고작 열 살짜리의 말에 불혹의 입 두 개가 얼어버린 것이다. 내가 한 말 이라곤,


 “야...너... 내가 뭘 또 한 시간씩이나 혼냈다고.”


이것뿐이었다. 없어 보여도 이렇게 없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막냉이가 어릴 때는 도통이만 감당하면 되었다.


막냉이가 7살이 되자 둘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와, 아이가 둘이면 두 배는 힘들겠어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두 배가 아니라 제곱이다. 세명이면? 세제곱...이겠지. (아이 셋 어머님들 존경합니다.)


어느 날 막냉이가 나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정말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라 도저히 대답이 불가능한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 원래 그냥 그런 거야.”


정말 진짜 원래 그런 거였다. 그랬더니 녀석 하는 말,


“엄마.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냥은 없어.”


하아.. 저절로 튀어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참았건만, 옆에 있던 도통이가 그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엄마, 요즘 생각 안 하시죠?“


 하하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저 말을 어른이 했다면 저건 질문이 아니라, 명백한 시비일 것이다. 모르겠다. 상대 의도고 나발이고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열 살짜리 아이가 아닌다. 저 놈은 진정으로 ‘우리 엄마가 정말로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닌지.’ 이것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놈은 순수하게 진심이었다. 그래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물론 이 놈들이 뭉쳐서 협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우리는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차에 탑승했다. 막냉이가 카시트에 앉자 안전벨트를 지가 직접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 스스로 하겠다는 취지는 하는 건 좋은데 우린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 건지… 녀석은 벨트를 당기는 것도 힘겨워했고, 꽂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해 보였다. 한참을 낑낑대도 안 되자, 지도 답답한지 징징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통이가 막냉이를 엄하게 혼냈다.


 “너 그렇게 징징댈 거면 하지 마. 형아가 해줄게.”


그러자 막냉이가 눈물이 글썽해져서 대답했다.


 “아니야! 선생님이 뭐든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랬어!”


그러자 도통이가 말했다.


 “그럼 안 된다고 징징대지 말고 차분하게 해 봐.”


그러자 막냉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안 되니까 징징대지! 되면 징징 안 대지!”


순간 도통이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스쳐갔다.

푸하하. 김도통, 너도 한방 먹었구나. 자... 너는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 3초간 침묵을 지키던 도통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엄마, 근데 오늘 저녁은 뭐 먹어?”


롸?! 씹어도 되는 거였어???

사소한 거 하나하나 신경 쓰고 미련을 못 버리며, 어디서든 이유를 만들어야 하고, 결과가 있어야 하는 우리 어른들은, 중요하지 않은 일은 거품 걷어내듯 걷어내 버리는 저 아이들을 절대로 못 이긴다. 아이들의 한글이 터짐과 동시에 우리가 녀석들에게 밀리는 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다른 작은 생명체들에게 밀릴 것이다. 흐흐흐흐. 그때 보자.


아하?! 그래서 내가 도통이한테 밀릴 때마다 우리 엄마 표정이 그리 행복해 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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