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주 May 10. 2021

사회성 0인 내 아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031 번호로 전화가 왔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도통이 어머님이시죠?”

 “네에, 누구세요?”

 “...... 도통이 담임이에요.”


아뿔싸!?! 때는 학부모 상담 기간이었고 저 전화는 담임 선생님의 상담 전화였다. 심지어 이 상담 시간은 내가 콕 집어서 신청한 것이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하물며 ‘누구세요?’ 라니. 와, 시작부터 x 됐다.


보통 학기 초의 상담은 선생님보다는 학부모가 말을 많이 한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할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학부모를 통해 아이를 좀 더 알아가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번 상담은 살짝 결이 달랐다. 초장부터 망했다는 것도 있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 덕분에 나는 선생님의 세심한 성향과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 이 분이 도통이를 많이 걱정하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더더욱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도통이는 하교 후에 보통 뭐 하나요?”

 “네. 학원 다닙니다.”


학원을 다닌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원이 녀석의 하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하지만 걱정이 크신 선생님께 녀석의 진짜 하루를 까발릴 수는 없었다.


 “무슨 학원 다니나요?”

 “수영, 미술, 축구, 태권도 다녀요.”

 “잘하셨어요.”


 왜때문인지 칭찬을 들었다. 왜지?


“도통이는 활동적인 것을 할 필요가 있어요.”


아하… 그래서였구나.

 

 “그리고요, 어머님. 도통이가 친구들한테 영 관심이 없어요.”


이건 각오했던 멘트다. 매년 듣고, 매번 듣는다.


 “그리고 도통이는 친구들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겠지요. 그런데요, 선생님. 그건 사실 아닌가요. 사람은 원래 타인에게 딱히 관심이 없답니다. 그걸 일찍 깨우칠수록 세상이 편해지는 법이라고요. 인간은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이거든요.


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찍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여기까지도 예상했다. 이 역시 매년 들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선생님들의 반응은 매년 달랐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본인이 사귀고 싶은데 못 사귀는 것이 아니라,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거잖아요. 그럼 괜찮아요.”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친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어머님께서 딱히 도통이가 인싸가 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면 도통이 같은 아이는 친한 친구 한두 명만 사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 사태를 살짝 심각하게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은 우리 측에서 했다. 아니, 도통이가 했다.


 “어머님, 도통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에 ‘없음’이라고 적었어요. 보통 아이들은 엄마 아니면 아빠를 적거든요. 그런데 도통이는 없다고 적었네요. 도통이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떤가요?”


 하하하하. 이 신선한 새끼가… 여기까지는 예상 못 했다. 나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그... 럴리가 없는데요. 도통이가... 그래요... 나는 그렇다 치고 지 아빠는 엄청 좋아하는데...”


비루한 변명과, 찝찝한 대화가 약 15분간 더 이어졌다. 남들은 학기 초 상담을 5분을 못 넘긴다던데. 나는 시간을 풀로 채우고도 싸다 끊은 것 같은 느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놈을 호출했다.


 “도통아, 너... 왜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했어?”

 “나? 없으니까??“


허, 이 자식이...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는 시리얼에 말아먹었나.


 “너...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는 좋아하잖아.”

 “어? 그 질문에 가족도 포함이야?”

 

어?? 가족은 왜 제끼는데??


 “엄마, 그 질문에 가족이 포함이면 물어보나 마나 한 거 아냐? 학교가 나한테 당연한 걸 왜 물어? 그건 시간 낭비야.”


아하… 그렇구나?!! 니 생각은 그렇구나??? 근데 원래 교육의 태반은 시간 낭비란다.


 “그럼 넌 그 질문을 뭐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 중에 고르라는 줄 알았지.”


아?! 그런데... 그것도 문제 아니니?


 “그럼 너는 친구 중에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

 “응. 없어.”

 

와, 단호한 새끼.


 “왜 없어?”

 “그게 꼭 있어야 해?”


아니, 됐다. 내가 아직 도(道)가 부족한 모양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나가면 온 동네 친구들을 다 사귈 기세인 나로서는 도저히 저 놈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저런 섭섭한 일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강제 생이별을 하고 몇 달째 되던 날이었다. 우리는 마스크로 무장을 한 상태로 밤 산책을 나갔다. 그때 어떤 친구가 도통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도통아, 안녕? 잘 지냈어?”


1학년 때 도통이와 같은 반이었던 덕배였다. 정이 많고 착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어서 나도 적잖이 반가웠다. 그런데 나만 반가웠던 모양이다. 도통이 이놈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응... 잘 지냈어?”

 

그러거나 말거나 덕배가 도통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보고 싶었어.”

 “응... “


 도통이는 단답형의 대답을 휙 던지고 가버렸고, 녀석들은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섭섭함과 미안함은 또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수습하듯 덕배와의 인사를 대신 마무리 하고, 집에 와서 놈에게 물었다.

 

 “너 왜 친구가 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너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응? 왜? 무슨 말을 해야 해?”

 “하… 너도 보고 싶었다던지... 그런 말들 있잖아.”

 “그치만 난 안 보고 싶었는데?”

 

하하. 이 자식이?!?

나도 부모로서 아이에게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부모로서의 역량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게 된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고 해줄 순 있잖아.”

 “나더러 거짓말하라고?”


그래!! 거짓말하라고. 새끼야!!! 제발 그냥 거짓말이라도 하라고!

 

 “어. 거짓말하라고…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안다. 보통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지금은 제발 거짓말이라도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렇듯 뇌에 렉이 걸리면 단어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논리적인 대화란,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녀석이 인사나마 받아주는 인간관계는 친구에 한정되어 있다. 친구의 직계 가족부터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하루는 길을 가다 도통이 친구의 엄마를 만났고, 그녀는 녀석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녀석은 못 들은 척 눈길 한번 안 주고 그냥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뭐가 생각난 듯 멈춰서 다시 돌아오더니 하는 말,


 “아, 맞다. 저번에 과자 사주신 엄마시지요.”


그렇다. 놈은 진정 육성으로 저 말을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그러더니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아... 이 대쪽 같은 자식아. 차라리 그냥 지나가지…


인류의 사회성이 본능인지, 학습된 결과인지 나는 모른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문명을 이룬 것인지, 문명을 이루었기 때문에 사회성이 길러진 것인지도 모른다. 즉, 후천적인 것인지 선청적인 것인지 절대로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믿으련다.


여보야, 도통이가 너 닮아서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하단다
이전 21화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