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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n 12. 2021

나… 신천지한테 까였다?!

내 이마에 호구라고 쓰여있나?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확실한 성향이다.

타인이 나에게 다가올 기회 따위는 주지 않는다. 늘 내가 먼저 다가갔으니까…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김명희, 이 언니가 그 드문 케이스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문학 관련 교양 강의에서였다. 나는 학점은 개판이었지만 취향대로 교양을 고르는 소신 있는 학생이었다. 그렇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으며, 그저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그 결과는 처참했다. 그래도 워낙 수강하고 싶었던 강의였던지라, 청강에만 의미를 두기로 했다. 딱히 여기서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 김국주… 맞지? 오늘 시간 되면 커피나 한잔 할래?”


이런 건 늘 내 역할이었는데… 막상 내가 당하니 기분이가 매우 나쁘고 경계심이 고슴도치 가시 일어나듯 파스슥 돋아났다. 순식간에 방어 체제로 돌입… 하는가 싶더니 또 이 호기심이란 놈이 들고일어났다.


그래서 일단 그녀를 따라갔다. ㅇㅇ. 또 그랬다.

저번에 (도를 아십니까 편) 율군에게 알렸다가 그가 냉큼 쫓아온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냥 학교 앞 카페로 가는 거라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단 둘이 카페에 도착했고, 다시 방어 체계로 전환했다.


 ‘자, 난 준비가 되었다. 오너라. 도인, 보험, 물건 판매, 다단계… 무엇이냐. 다 받아주마.’


그러나 그녀는 쉽사리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무슨 과에요?”

 “네… 기계공학과요…”

 “아이고, 공과대생이 교양으로 이런 걸 듣긴 쉽지는 않으실 텐데요.”

 “네, 그래서 점수는 개판입니다.”

 “왜 그런 어려운 과를 선택했어요?”

 “아… 뭐… 수학을 잘해서?”


아니,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자고 나를 끌고 온건 아닐 테고… 어서 그대의 본론을 꺼내거라. 그러나 그녀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까지 저런 잡스러운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뭐지? 신종 시비인가? 아니면 진짜로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 건가?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


 “국주야, 시간 돼? 커피 한잔?”


만난 지 하루 만에 말꼬리를 잘라먹는 그녀는 내가 이후 일정이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말을 했다. 그 어떤 호구라도 최소 이틀은 투자하라는 것이 위에서 내려온 지침인 듯했다.

그래. 가자! 가보자!! 그런데 그날도,


 “저번에 애인이랑 같이 있는 거 길에서 봤어. 잘 어울리던데. 사귄 지는 얼마나 됐고? 진짜? 니가 쫓아다닌 거야? 와 대박… 과에는 친구 별로 없어? 하긴… 거긴 남자들뿐이니까… 진짜? 대충 놀면 다 친구구나…”

 

이런 세상 쓰레기 같은 대화만 하다가 헤어졌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녀는 본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고, 순전히 나의 이야기만 캐물었다. 질문들이 워낙 습자지 같아서 나 역시 휴지 던지 듯 가볍게 답을 던졌건만… 그녀는 내가 던진 쓰레기들 속에서 그녀만의 작업을 위한 정보를 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틀이면 충분했다.

그다음 수업 시간, 그녀가 드디어 큰 서류 가방을 들고 왔다.


 “국주야, 커피 한잔?”

 “아… 눼… 그럽시다. 가봅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저 가방 안에 니 본론이 들어있겠지. 가자. 가보자. 뭐길래 그리 뜸을 들였는지 한번 보자. 나는 내가 내 손으로 그녀에게 사기를 위한 재료들을 던져준 줄도 모르고 내가 완전 무장을 한 상태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의외로 심리테스트였다?!? 예상치도 못했던 상대방의 패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근거 없는 유사과학들을 좋아했고, 그 테스트 용지를 본 순간… 그나마도 남아있던 부실한 방어군마저 완전히 무장 해제되었다.


‘뭐지? 엄청 평범하잖아? 내가 이 언니를 오해했나? 나도 참…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다니. 그냥 순수하게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거였구나.’


깊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테스트에 임했다.


 “국주야, 내가 이거 분석하는 동안 그림 한 개만 그려볼래? 여기다가 나무 하나만 그려줘.”


우와. 나무를 그리라니. 엄청 전문적인 것이었다.

나는 나무를 그려놓고 두근두근 거리며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심리테스트를 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냥 내가 적은 답변 그대로 나온다. 예를 들면,


Q : 당신은 짜장면과 짬뽕 중 뭘 고르시겠습니까?
A : 짬뽕요.
 
결과 -
당신은 짬뽕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그게 참 신기했고, 늘 같은 답이 나오는 데도 또 새삼 설레어했으며, 같은 답을 받으면 안도했다. 그런데… 그랬는데… 나는 또 늘 듣던 대답을 또 들으려고 두근두근 거리며 기다렸는데… 그녀가 하는 말.


 “국주야, 너 머리 나쁘지?”


와우!! 이건 실로 신박했다. 다른 테스트와는 달랐다. 심지어 저 말은 사실이었다. 하여 나는 이 테스트는 진짜다. 라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이런 정보는 언제 날린 거지?)


 “와… 대박. 언니… 어떻게 알았어요?”

 “니가 니 입으로 머리 나쁘다고 했으면 나도 안 믿었을 거야. 근데 테스트 결과가 그리 나왔네. 친구들은 안 믿지?”


 아니, 내 친구들은 나 머리 나쁜 거 알아. 모를 리가.

 

 “근데… 국주 너 머리 나쁜걸 책이 숨겨주고 있어. 너 독서 안 했으면 머리 나쁜 거 엄청 티 났을 거야.”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아리까리한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독서에 감사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티가 안 났다면 너도 몰랐겠지!! 티가 나니까 너같은 거한테까지 들킨거겠지!! (슬픔)


그 때 그린 그림 대충 재현함

내가 정성껏(?) 그린 이 그림을 본 그녀가 말했다.


 “너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이건 나를 한두 번만 보면 파악이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방어 체제를 무장 해제시키면서 뇌까지 해체했다. 하여 그런 판단을 할 뇌가 없었다.


 “우와! 결과에 그런 것도 나와있어요?”

 “응. 그런데 그러느라 정작 필요한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있어. 니가 그린 나무 그림 봐봐. 잎에 비해 줄기가 너무 없지? 정말 중요한 일은 안 하고 있단 뜻이야. 그리고 여기 중앙에 구멍 뚫렸잖아. 나무가 썩었다는 뜻이지. 자아가 없다는 뜻이야. 그런 주제에 열매는 많아. 쓸데없이 목표만 크다는 얘기지. 구멍 안에 다람쥐는… 어… 동물을 좋아하나 봐?”


자아가 없다. 중요한 일을 놓친다. 이건 상당히 애매모호한 말들이다. 그리고 목표가 크다. 이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들이다. 어느 누가 목표를 작게 갖겠는가. 하지만 이런 애매하고 광범위한 말들일 수록 이미 홀리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먹힌다. 그리고 나는 그 초입 단계였다. 다만 저 다람쥐는 교육 과정에 없었는지, 지도 할말이 없었던 것 같다.


 “아!! 맞아요!! 나 중요한 걸 안 하고 있긴 해요!!”


그래서 다음 주가 시험인데 공부는 안 하고 너랑 이러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국주 너… 좀 공격적인 면이 있네.”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공격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이런저런 매우 공격적인 생각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걸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즉,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내면의 공격성타인이 밖으로 표출한 미미한 외면의 공격성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애당초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하여 이 역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김명희… 이 사람은 초짜였다. 사람을 입구까지 꼬드겼으면 살살 끌어당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계속 밀어내서는 결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점점 열받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이끄는 그 초입에서 발을 돌려버렸다. 욕만 들어 처먹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아니, 거기 좋은 말은 없어요?”

 “응. 그런데 국주 니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걸 좀 눌러주고 있어. 넌 화를 잘 안 내잖아.”


아니, 왠지 너한테는 화를 낼 수 있을 거 같다.


 “아, 그리고 본인은 수학을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아니야. 일단 공간 감각이 없어. 수학도 딱 거기까지야. 아마 운전도 잘 못 할 거야.”


허… 이봐… 적당히 하지?

내가 공대를 간 이유 하나. 고3 때 내 별명은 수학 답안지였다. 수학 시험이 끝나고 나면 반 친구들이 수학 성적을 채점하는 기준이 내 답이었다. 전국에서 보는 모의고사가 있는 날에는 선생님들도 내 시험지를 가져갔다. 즉, 수학은 내 답이 정답이었다. 심지어 당시 수학 과외로 용돈을 벌고 있었으며, 꽤 인기 있는 샘이었다. 그런 나에게 수학을 못 한다고? (지금 나에게 턱걸이를 못 한다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임.) 내 인성 패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공격적인 줄 알면서 자신의 소견을 밀어붙이는 저 김명희가 참으로 패기로와 보였다.


 “그리고 말을 상당히 꾸미는 편이네. 솔직하지 못하고.”


너는 지금부터 말을 꾸미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카페를 두 발로 걸어서 나가고 싶으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시비를 터는 이유가 뭘까. 도대체 너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아! 혹시 한대 처맞고 합의금 뜯어내려는 속셈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동안, 그년은 아니 그녀는 지 할 말만 계속했다.


 “너는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너 자신은 편할 거야. 그런데 니 주위 사람이 힘들어. 다 떠나고 말 꺼야. 이거 문제가 심각해. 그냥 두면 안 될꺼같아. 그러다 니 애인도 떠나갈 거야.”


어. 그래. 너 방금 선 넘었어.

지금 너에게 얼마나 급한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애인은 언터처블이 국룰이다.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다. 니 정성은 갸륵하지만 여기서 그만 끝내야겠다. 더 갔다가는 다음 날 아침에 너는 병원에서 나는 구치소에서 눈을 뜨게 될 것 같다. 내가 이런 또라이 저런 또라이 많이 만나봤는데 너 같은 종류의 또라이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니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것 같으니 내가 솔직하고 좋은 말로 마무리를 해주마.


 “명희야. 이제 그만 하자. 넌 최선을 다 했다. 근데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응? 뭐?”


뭘 되묻니? 뇌는 그래도 귀는 멀쩡 할 텐데.

 

 “다단계든, 물건 판매든 아니면 합의금이든… 니가 원하는 게 나한테 없다고.”

 “아니, 난 사람들이 너 때문에 힘들어서 너랑 인연 끊을까 봐 걱정돼서…”

 “어… 그래. 그럼 끊으면 되지. 일단 너부터 좀 끊어야겠다.”

 “어? 나는 왜… 아니, 그래도… 사람들이 다 떠나기 전에 막을 방법이 있어.”

 “막아? 뭐를? 너 내 성격 파악됐다며. 아니야?”

 “너 사람 좋아하니까…”

 “명희야…. 난 어디까지나 내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개나 소나 쓰레기나 아무나 다 미친년처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사람이 떠나잖아? 그럼 그건 내 사람 아닌 거고, 개나 소나 쓰레기나가 되는 거야. 내가 쓰레기를 왜 잡아? 아 물론 너도 곧 그렇게 될 거고..”

 “어… 어?”


 내 말에 당황해서 입술만 들썩이던 김명희는 몇 초 후에 가까스로 입을 움직여 중얼거렸다.


  “와… 국주야, 지금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 그걸 본인이 인지를 못 하면 소용이 없어.”

 “어. 괜찮아. 나는 안 심각해. 니가 심각하지… 그렇다면 그건 니 사정이고… 그리고 니 사정은 내 알바 아니고… 우리 명희 알아들었지? 니가 아가리를 못 털어서 그렇지 귀는 뚫렸잔니.”


오우… 아가리 파이터, 김국주 세상 스윗해졌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고… 우리는 그렇게 다정한 질의 및 응답을 몇 번 더 주고받고 나서 헤어졌다. 그 뒤로 김명희는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미치지 않은 이상…


그리고 몇 달 후, 어떤 강의를 신청했다가 전화를 받았다.


 “국주씨, 김명희예요.”


허, 웬 존댓말? 이제야 내가 불편해졌나 봐?


 “어… 왜? “

 “00 강의 신청하셨죠?”

 “… 그런데?”

 “그거 강사가 저예요.”


씨바… 몰랐다. 너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냐?


 “국주 씨… 강의 취소해주세요.”


 어. 강사가 너라면 취소해야지.

 고맙다. 친히 전화까지 해주고.

 

그날 신재희와 맥주를 마시면서 안주 삼아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신재희 하는 말.


 “언니, 김명희 그거… 신천지야.”

 “신천지가 뭔데?”

 “그 과에는 소문 다 났는데, 몰랐어?”

 “어… 일단 신천지가 뭔데?”

 “푸하하하. 언니가 마지막 남은 호구였나 보네. 언니한테 작업한 거 보니까. 근데 김명희도 불쌍하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김국주를 작업하냐.”

 “아니, 그래서 신천지가 뭐냐고.”

 “근데 김명희가 언니한테 강의 취소해달라고 했다고? 푸하하. 니 신천지한테도 까인 거냐? 진짜 김국주 여러모로 대단하다. 푸하하하하하.”


이… 슬슬 열받는다.


 “…… 그… 신천지가 뭐냐고.”

 “푸하하하. 김명희가 사람 보는 눈은 있나 보네. 심테 한방에 김국주를 놔준 걸 보면. 푸하하하하.”

 “그니까 그 씨바 신천지가 뭐냐… 아니다. 됐다. 그냥 니 웃던 거나 마저 웃어라.”


결국 신천지가 뭔지는 2020년에 뉴스에서 들었다. 늬들… 유명해졌더라?



*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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