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한 민간요법.
그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런데 이 사람... 상태가 영 이상했다. 하얗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잦은 기침에 기운도 없어 보였다. 누가 봐도 딱 감기 증상이었다.
“선배님, 아파요?”
“아니, 안 아파. 그냥 몸살감기야.”
선배님... 그게 아픈 거예요. 아프면 나를 부를 것이지 왜 굳이 여기까지 꾸역꾸역 온 겁니까.
“선배님, 그럼 집에서 쉬어요. 내가 바래다줄게요.”
“아니야. 나 안 아파. 괜찮아.”
아니, 너 아프다고.
도대체 쓸데없는 고집은 왜 부리는 것인지. 그렇게 둘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던 신재희가 위풍당당하게 일어서면서 말했다. (신재희는 내 동생이자, 당시 내 동거인이었음.)
“형부! 걱정 말아요! 내가 감기에 좋은 거(?) 만들어줄게요!”
아니, 걱정된다. 그러지 마라.
그 말을 듣자 그의 얼굴 역시 한층 더 사색이 되었다. 신재희가 뭘 준다는 건지는 몰라도 그것이 무엇이건 좋은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한사코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던 그가 빠르게 항복을 하고 일어섰다.
“국주야, 니 말이 맞는 거 같아. 나... 아무래도 집에 가는 게 좋겠어.”
그러자 신재희가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서 다시 앉혔다.
“형부, 기왕 온 거 조금만 기다려요. 먹고 가세요.”
그러게 선배님... 보내줄 때 가지 그랬어요.
지금은 늦었습니다. 포기하세요. 쟤도 한번 꽂힌 것은 그게 무엇이든 끝까지 합니다. (그리고 신선생, 아무한테나 힘쓰지 말라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정말 하안참 지났다.
그의 표정은 세상만사를 다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 살짝 손을 대보았다. 후끈함이 느껴졌다. 어... 미열이 있는 거 같은데? 확실하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선배님, 열이 있는 거 같은데요? 이거 정확히 알려면 제 이마를 선배님 이마에 갖다 대야 해요.”
“…… 그걸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래야 약을 지어오죠.”
“아니, 난 괜찮아.”
췟. 실패했다.
그런데 잠깐만 기다리라던 신재희는 왜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이 인간이 재료를 재배하나. (신재희는 정말로 뭔가를 재배합니다.) 궁금해서 금단의 구역, 그녀가 뭔가를 조재하고 있는 부엌을 빠꼼히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그녀가… 앞뒤로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갈고 있다기보다는 팔에 힘줄을 세워가며 거의 맨손으로 그것을 으깨고 있었다. 동시에 입으로는 왜인지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여태 저러고 있었던 거야?
“너... 뭐하냐?”
“응, 생강차 만들게.”
오… 생각보다 제법 평범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거… 생강차였니? 그런데 왜 너는 악력을 쓰고 있지? 옆에 믹서기 놔두고… 여기가 뭐 신석기도 아니고… 니가 침팬지도 아닌데 도대체 왜…”
“아냐!! 언니가 몰라서 그래. 나는 생강즙을 짜고 있는 거야. 생각차는 생강엑기스로 만드는 거잖아.”
아하… 그러니까 손으로 생강을 짜고 있었구나.
아니야, 재희야.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재희야, 형부가 니 마음만 마시겠데. 당장 그만둬.”
“아... 너무 오래 걸렸지? 형부 집에 가야 하는데... 에이, 모르겠다.”
그러더니 녀석은 으깨져서 형체가 없는 놈들은 물론, 미처 갈리지 못해 원형 그대로 남은 덩어리까지 컵에 투척했다.
“와우, 그 덩어리는 왜 넣는 건데?”
“언니, 몰라? 다다익선(多多益善).”
와ㅆ… 개간지… 거기서 사자성어를 쓰다니…
신재희의 덩어리 친구는 컵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나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안녕? 작은 친구?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아래에는 더 대단한 것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막아야 했다. 나는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덩어리는 컵이 좁아서 힘들어하는 거 같은데? 쟤는 좀 빼는 게 어때?”
“이 언니가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생강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나? 누군 빼고 누군 넣게? 듣는 덩어리 섭섭해하잖아.”
우와… 뭔 개솔… 그리고 사자성어 또 나왔어.
그녀가 흐뭇한 표정으로 컵을 흔들자, 그녀의 덩어리 친구들이 앞다투어 들썩이며 아우성을 쳤다. 와… 순간 확신했다. 쟤들 분명 아직 살아있다. 그녀는 그 친구들을 애정 있게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국그릇에 옮겨 담았다.
“컵이 작긴 작은 거 같아. 더 넓은 곳으로 옮겨담자. 그리고 맛이 조금 쓸지도 모르니까 꿀 조금만 타자.”
꿀을 조금만 탄다던 그녀는 참혹한 생강 폭격 현장을 꿀로 잔뜩 덮고 끓는 물을 부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선배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하여 완성된 생강차... 아니 허니 생강 덩어리 아우성 파르페는 물과 생강의 비율이 2:8이었다.
드디어 최종 결과물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국그릇에 담긴 것이 제법 사약 같았다. 그는 끓는 물 안에 찐득한 무언가(꿀)로 덮인 덩어리(생강)와 시해 잔해물(생강)을 바라보더니 마땅히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 도대체 이게 뭐지?”
“넵. 선배님. 허니 생강 덩어리 아우성 파르페입니다.”
그러자 신재희가 팔을 동동거리며 억울해했다.
“아니에요. 형부. 이거 그냥 평범한 꿀생강차에요.”
재희야, 너는 평범의 사전적 의미를 오해하고 있구나. 그 말을 들은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짧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아우성 파르페를 한 모금을 마셨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는 경고음이 울렸다. 여러 명의 율군이 그의 내면에서 비상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율 1 : 이걸 먹으면 넌 죽고 말 거야.
율 2 : 아니야, 그래도 동생이 한 시간 넘게 만든 건데 성의를 봐서라도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율 3 : 성의랑 니 생명을 바꿀 셈이야?’
율 4 : 설마 죽기야 하겠어?
율 5 : 어. 죽어. 너 그거 마시면 죽어.
율 6 : 그냥 먹고 죽어. 그래야 우리가 탈출할 수 있어.
그래. 이걸 마셔야 여기서 나갈 수 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 아우성 파르페를 사약 들이키듯 원샷했다. 그리고 국그릇을 내려놓고 약 30초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우리는 그의 처분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국주야... 나 감기 다 나은 것 같아.”
어우, 재희야. 니가 만병통치약을 만들어냈구나.
그의 생명의 은인인 신재희의 얼굴에는 인류애가 만연했고, 그는 그날 그렇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가 또 감기에 걸려버렸다.
와, 이 사람… 생각보다 허약하네?
“선배님, 또 감기 걸렸어요?”
그러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안 걸렸는데요? 나 완전 멀쩡한데요?”
“얼굴이 시뻘겋고 뒷덜미에서 열감이 느껴지는데요?”
그랬더니 그가 내 손을 덥석 잡고 몹시 간절한 눈으로 애원했다.
“국주야… 동생한테는 제발 비밀로 해줄래?”
네, 선배님... 면역력은 그렇게 키우는 겁니다.
비밀로 해주는 대신에 체온 재는 거 허락해줄래요?
이런 사정을 알리 없는 신재희는 형부가 자기의 허니 생강 덩어리 아우성 파르페를 원샷한 후로 절대고 감기에 안 걸린다며 기뻐했다.
이 글을 빌어 고백한다.
응. 그런 거 아니야. 재희야.
그 후 이야기
저는 제 아이들 체온도 이마 to 이마로 잽니다.
손보다 정확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녀석은 엄살이 아주 범우주적으로 심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스스로 체온계를 들고 스스로 드러누워서는 스스로 수시로 찍어대죠. 체온 체크도 알아서 합니다. 누구 닮아서 그러는지 참...
그리고 솔직합니다.
“엄마 꺼 맛없어! 안 먹어!”
“이모 꺼 생강차 안 먹어! 악마가 만든 거 같아!!”
이렇게 그녀의 생강차 무패행진은 무참히 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