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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n 21. 2021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아이들에게 이 보다 더 곤란한 질문이 또 있을까.

이건 어디를 밟던 지뢰다. 도통이도 아기 때는 별생각 없이 아주 솔직하게 ‘아빠’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일주일 중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처세를 바꾸었다. 뭐… 녀석의 처세술이래 봤자, 엄마가 물어보면 엄마라고 대답하고 아빠가 물어보면 아빠라고 대답하는 수준이었지만. 지딴엔 나름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렇다면 막냉이는?

놈은 저 질문을 받으면 그냥 주댕이를 댓발 뽑고 삐죽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뭐… 어떻게 대답하건 결말이 좋았던 적은 없었을테니까… 녀석에게는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도대체 왜!! 아이들을 곤란하게 하고 급기야는 울리는 저 짓을 계속할까? 그야… 재미있으니까!?! 억울하면 다음엔 니들이 내 부모로 태어나던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심심해진 우리는 도통이에게 또 시비를 걸었다.


 “도통이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녀석은 우리를 세상 한심한 듯 한참을 쳐다보더니…


 “엄마… 아빠… 그거 물어볼 때마다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물어보는 게 더 똑똑한 어른 아닐까?”


7세 도통이의 대답이었다. 그 우문현답에 불혹의 입 두 개가 얼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우리 이제… 재미는 끝났구나.


그렇다면 이 녀석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우리 신랑은 콜라를 몹시 좋아한다. 그냥 평소에 물 대신 콜라를 마신다. 딴에는 제로 코크로 마시긴 하는데, 같이 사는 입장에서는 물대싱 콜라를 마시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랑이 콜라를 마실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여보야, 콜라만 마시지 말고 물도 마셔요.”


막상 당사자인 신랑은 귀를 착착 닫고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불만이 엄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도통이 녀석이 반복되는 저 잔소리가 꽤나 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엄마, 그냥 냅둬. 아빠는 콜라가 좋다잖아.”


그러자 막냉이가 덩달아 따지고 들었다.


 “물이 좋으면 엄마가 물을 마셔.”


허?! 내 새끼들이 이젠 팀플을 하는구나.


 “아무리 칼로리가 없어도 물 대신 콜라를 마시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아빠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거야.”


그 말을 들은 녀석들이 조용해졌다?!?

어? 말이 통했나? 설득된 거야? 그런데…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도통이가 아주 조용하게 마지막 한방을 날렸다.


 “엄마는 맥주 마시잖아.”


완패했다. 신랑은 귀 닫고, 입 닫고 승리했다. 그렇다. 놈들은 대놓고 아빠 편이다.


도대체 왜!!

아침에 질근질근 깨물어서 깨워주고, 안 먹겠다는 아침밥 입에 쑤셔 넣어주고, 궁디 팡팡해서 학교 보내주고, 하교 후에는 학원으로 리드미컬하게 순차 배송해주고, 숙제하라고 닦달해주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놈들 잡아다가 탈탈 털어서 씻겨주고, 제발 잠 좀 자라고 포박해서 꿈나라까지 보내주는 건 난데!!?!


늬들은 왜 아빠냐고?!


아빠에게 아기를 맡기면… in 2013

하루는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을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니 지갑을 두고 온 것이었다.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 집 대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잡았는데…


 “우와아아아아아!!”

 “엄마 나갔다!!!”


기쁨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명백히 내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놈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다. 이 시점에서 내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면 굉장한 악역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지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고리를 잡고 고민했다. 하지만 놈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얼른 게임기 켜!!!!”

 “아이스크림도 먹자!”

 “응! 아빠! 내가 가져올게.”


그렇다. 저 흥분의 도가니탕에는 신랑도 포함이었다. 아니, 필시 그가 주동자였다. 그렇다면 도가니탕의 열기는 쉽사리 식지 않을 것이다.


 ‘그래… 지갑 좀 없으면 어때. 그냥… 구걸하지 뭐.


결국 그 문을 열지 못했다. 이 순간… 나는 이 남자들 사이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빈손으로 나가면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들이랑 같은 종이라서 일지도…


여보야, 그거 먹는거 아니에요. in 2013

하지만 생각해보면 신랑이 아이들을 많이 예뻐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진 속에서도 늘 아기를 흡입… 아니, 아기에게 뽀뽀를 해주고 있다. 도통이가 저 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에게 아기 때 기억은 없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도통이에게 물어봤다.


“너는 아빠가 왜 좋아?”


“응, 아빠는 다정해서, 나랑 잘 놀아줘서,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같이 노래를 불러줘서, 요리를 잘해줘서, 멋있어서, 잘 생겨서, 개구쟁이라서(응?),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웅?!?) 뚱뚱해서(…) 그리고…”


어…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중 in 2016

그런데 사실 녀석들이 아빠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좀 더 커서였다. 그냥 동네 놀이터의 평범한 시소도 아빠랑 타면 사정이 달라졌다. 반대편에 무려 아빠가 탔다는 이유만으로 재미없는 시소가 공원의 놀이기구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익스트림 스포츠로 바꾸는 아빠의 능력을 보며,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생각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즐거운 시간과 공간에 늘 아빠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여보야…


덧붙1_ 도통의 그 후 이야기

그이런 도통이도 크니까 마냥 맹목적이진 않습니다. 하루는 녀석이 묻더군요.

 “엄마, 엄마는 왜 아빠 같은 개구쟁이랑 결혼했어요?“

이건 또 무슨 느자구 없는 질문일까?!?

 “왜 그런 걸 물어보지?”
 “좀 더 멋진 남자랑 결혼할 수 있었잖아요.”

너 그거 알아? 너 늬 아빠 복붙인거…

 “도통아… 엄마가 아빠를 먼저 좋아해서 결혼한 거야.”
 “아하… 그럼 아빠는 왜 엄마 같은 말썽꾸러기랑 결혼한 거에요? 둘 중 한 명은 얌전하고 착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ㅇㅇ. 현재 녀석의 입장은 중립입니다.
여전히 괘씸하지만…
덧붙2_ 막냉의 그후 이야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며칠전에 막냉이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지체없이 대답하더군요.

“응. 엄마.”

너무 빠른 대답에 살짝 의아해서 물었지요.

“우리 막냉이 엄마가 저런 질문하면 곤란하지 않아?”

그랬더니 놈이 쿨하게 그러더군요.

“아니! 안 곤란해! 엄마가 물어보면 엄마라고 대답하고 아빠가 물어보면 아빠라고 대답라면 돼!! 그럼 별 문제 없어!!”

아하?!? 이제 재미는 끝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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