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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n 14. 2021

둘째는 정말로 그리 예쁠까.

나의 애완 인간.

“엄마, 이렇게 예쁜 아기가 태어날 줄은 몰랐지?”


자기 입으로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아이, 우리 둘째 막냉이다. 녀석은 세상에서 지가 제일 이쁜 줄 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길가다가 형형색색의 삐까뻔쩍한 지하철이 지나가기에 막냉이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막냉아, 무지개 지하철 봐봐. 멋지지?”

 “응! 지하철은 멋지고! 막냉이는 예쁘고!”


그리고 녀석은 갑자기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 막냉이는 예쁜 나라에서 왔나 봐! 너무 예쁘잖아.


 또는


 “종이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막냉이는 예쁜걸로 만들어졌고.”


이쯤 되면 내가 얘한테 몹시 잘못된 생각을 주입시켰나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막냉이는 실제로… 아니 객관적으로 미모가 뛰어날까??


막냉이가 태어나던 날, 3.8킬로의 우량아를 자력으로 뽑아낸 나는 온 영혼과 육체가 파스스스 가루가 되었었다. 그런 내 배 위에 아기 막냉이가 올려졌다. 하하하하. 드디어 열 달을 꼬박 기다린 (심지어는 오버타임 되었었음.) 내 둘째를 만나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막냉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데… 어?


 “어… 왜 이렇게 못 생겼지?”


이것이 내가 막냉이에게 건넨 첫인사였다.

막냉이는 굳이 따지자면 못생긴 측에 속한다. 그리고 나 닮았다. 이렇게 말하면 반발이 들어온다.


 “원래 신생아들은 못 생겼어요.”


안다. 나도 경력자다. 그런데 신생아치고도 못 생긴 편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미간에 인상을 쓰면서 태어났다. 그것이 녀석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약 삼 일 후, 녀석이 눈을 떴다. 동시에 나는 궁금해졌다. 어? 눈 다 뜬거 맞아?? 그 날밤 조리원에 놀러 온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야, 우리 막냉이 이거… 눈이 너무 작은 거 같은데… 걱정이 될 정도예요.”


녀석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랑 하는 말,


 “어… 아니야. 신생아라 눈을 아직 다 못 뜬 거야.”

 “그럴까요? 다 뜬 거 같은데…“

 “근데… 여보야, 얘 못 생겼다고 여보야가 구박했어? 아기가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계셔?”

 “아니에요. 여보야. 태어날 때 찌그러뜨린 미간을 아직도 안 풀고 있네요. 뭔가 불편한 걸까요?“

 “여보야, 얘 못생긴 건… 아기한테는 비밀로 하자.”


며칠 후,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 하고 녀석의 눈을 손가락으로 살짝 벌려봤다. 정말로 눈이 이게 전부인지… 그것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녀석의 눈은 그게 전부였다.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막냉이를 ‘예쁜이’ 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막냉이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막냉이만은 모르길 바랬다.


별일 아님, 그냥 혼자서 티셔츠 입는 중.
별일 아닙니다. 그냥 티셔츠를 입는 중입니다.티를 혼자 입겠다고 우기길래 맡겼더니 저렇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니.


그래서였을까. 막냉이는 애교를 디폴트 옵션으로 장착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질문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이 질문에 도통이는 ‘맥주, 치킨, 아빠’ 라고 적었다. 도통아, 기왕이면 아빠를 맨 앞으로 옮겨줄래? 아빠가 치킨한테도 밀리면 어떡하니? 그리고 막냉이는 같은 질문에 지 이름을 적어놨다. 녀석에게 물었다.


 “막냉아, 너는 ‘엄마’ 하면 막냉이가 생각나?“

 “응!“

 “왜?”

 “막냉이는 엄마 꺼. 엄마도 막냉이꺼!!“


허… 나는 니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려는데 녀석이 내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는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입도 이뻐. 안 예쁜 데가 없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와… 정녕 친정 아빠한테도 못 들어본 말을 내 새끼한테 들어버렸다.


6개월, 10개월 된 막냉이 in 2015

그런 막냉이를 보고있으면 내가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를 낳은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녀석은 사진 속에서도 늘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해 웃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진기 뒤의 나를 보고 웃는 것이다. 녀석은 지 눈 앞에 내가 없으면 웃지 않는다. 저 눈웃음의 대상은 가족 한정이었다.


막냉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녀석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러 나왔다. 아마도 막냉이에게는 그것이 첫 지하철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녀석이 실린 유아차를 지하철 구석에 박아놓고, 유아차 뒤에 서있었다. 그런데… 막냉이 앞에 계신 분들의 표정이 애매모호해 지는 것이었다. 웃어야 하나, 참아야 하나… 아니 웃어도 되나, 뭐 대충 그런 표정들이었다. . 뭐지? 무슨 일이지? 그래서 유아차 안의 녀석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oh, my…

6개월 된 막냉이의 첫 지하철 여행 in 2015

 녀석이 지 앞에 앉아계신 분, 지 앞에 서계신 분들을 죄다 저런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댕이는 명란젓 모양을 만들어놓고… 저 시선 폭격을 당하신 분들이 얼굴이 따끔거려 지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아… 시비는 지가 걸어놓고… 내 새끼가 저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시비를 걸고 있으니 애미된 입장에서 어떻게 든 저 짓을 말려야 했다.


 “막냉아… 사람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안 돼.”


ㅇㅇ. 씨알도 안 먹혔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녀석이 또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래, 지하철을 안 타면 되지… 그날 우린 걸어갔다.


며칠 전 문득 궁금하여 막냉이에게 물었다. 왜 그리 본인을 이쁘다고 생각하는지 그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했다.


 “막냉아, 너는 왜 그리 예뻐?”

 

그랬더니 녀석이 내 얼굴에 지 얼굴을 비비면서 말했다.


 “응! 엄마 닮아서 예쁘지.”


어… 그렇구나.

나 닮아서 못생긴 우리 막냉이는 늘 내게 예쁘다 말해준다. 나는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보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를 닮아도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사실을… 녀석이 가르쳐줬다. 내 막냉이가…


애완 [愛玩]

1. 동식물이나 공예품 따위를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며 귀여워함.
2.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며 귀여워하다.
[출처 : Duam 한국어 백과사전]

덧붙_


막냉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도통이보다 더 예쁜 아기가 태어날 수는 없다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런데… 무릇 직접 겪어보기 전까진 확단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첫째가 내 자식이라면, 둘째는 애완 인간이더군요. 첫째 때는 아이가 잠들면 행여나 깰까 전전긍긍했는데…

 

둘째에겐 이런 짓도 합니다.

아무리 몸통 위에 타요를 굴려도 안 깨더군요.


하여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아… 이래도 잘 잡니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하게 해보겠…

아차차. 깨버렸습니다.

미안… 엄마가 실수로 너를 깨우고 말았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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