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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l 19. 2021

둘째는 빠르다?!?!

누가 그랬어??

막냉이는 태어나는 것부터 느렸다.

예정일보다 10일이나 늦었으니… 그나마도 나올 생각이 전혀 없는 놈을 유도분만으로 억지로 빼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 기다렸다면 4kg이 넘었을 테니까… 나도 살아야겠기에.

 

5개월 막냉

막냉이 5개월 차.

겨우 뒤집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뒤집은 상태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힘겹게 고개를 들고는 나를 바라보고 배시시 웃는다. 저 상태가 단 3초간 유지 가능하다.


막냉이 7개월

그리고 막냉이 7개월 차.

스스로 앉아있지 못해서 늘 범보 의자에 앉혔다. 그나마 범보 의자 위에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때 녀석의 키와 체중은 9개월 아가의 크기였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는 9개월짜리 아가가 앉지도 기지도 못 하는 걸로 보였고, 당시 걱정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아이가 좀 느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첫째 도통이가 막냉이보다 더 느렸으며, 키워놓고 보면 그 발달의 속도는 그저 일기장에 쓰일 소재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가 평균보다 크기가 커서 더 그리 보였던 듯했다.

  

막냉이가 5개월 때, 문화센터에서 하는 ‘베이비 마사지’ 라는 프로그램을 들으러 갔다. 아기한테 뭔 마사지가 필요했겠냐마는, 그저 바깥나들이 삼아 그리고 또래 친구를 사귀러 갔다. 그 강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나, 큰애가 왔네요. 잡고 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수업은 누워있는 아기들이 받는 수업이라서요.“


 선생님… 얘가 크기만 크고 개월수는 어려요. 그리고 서기는커녕 앉지도 못해요.


하루는 녀석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어디까지나 도통이를 위한 나들이었다. 막냉이는 돌아다니지를 못 해서 내 옆에만 붙어있었다. 그랬더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너는 왜 혼자 안 놀고 엄마 옆에만 붙어있니?"


 이렇게 말하면서 내 품에서 막냉이를 뜯어가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아줌마랑 저기 가볼까? 저기 방방이!! 손 잡고 가보자. 걸음마해 보자. 걸음마.”


나는 너무 놀라 아기를 더 꼭 그러안았다. 그리고 정신을 부여잡고 그 아줌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애기를 맡아준다니… 고마운데요… 미치셨습니까? 지금 니 눈에 아기만 보이고 나는 안 보입니까? 애 엄마가 바로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랬더니 그 아줌마…


“아니!! 애기가 엄마 때문에 못 노는 거 같아서 그렇지!! 저기 방방이 가서 뛰어놀게 해 줄라고…”


 “저기요. 얘는 방방이고 나발이고 기지도 못 해요.“


 그랬더니 그 아줌마 얼굴에 충격과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하… 얘가 또래보다 느린 것도 사실이긴 한데… 생각하시는 만큼 큰 애도 아니라구요.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쩌면 막냉이는 느린 게 아니라 느긋했던 게 아닐까 싶다. 녀석은 잘 먹고 잘 자는 천사 같은 아기였다. 눕혀놓으면 그냥 잤다. 엄마 따위 옆에 없어도 그냥 잤다. 그리고 오오오래 잤다. 그렇다. 나는 정말 녀석을 거저 키웠다.


막냉이가 5개월 때쯤 국내에 메르스가 발생하여 친정으로 피신을 왔다. 뜨거운 한여름이었다.


친정은 아직 6개월도 안 된 아기가 왔다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빠는 ‘막냉이를 재운다.’ 는 이유로 녀석을 안고 굳이 태양이 작열하는 밖으로 나가셨다가 한참 후에 땀으로 머리가 물미역이 되어서는 돌아오셨다. 물론 막냉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막냉이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냥 눕혀만 놓으면 잘 잔다.


고여사님은 막냉이를 눕혀놓고 목청껏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외할머니의 성량에 녀석은 잠들려다가도 흠칫흠칫 놀라서 깼지만, 그 험난한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잠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그분들은 ‘아기를 겨우 재웠다.’ 라고 말씀하시며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사실 막냉이가 그 힘든 상황 속에서 겨우 잠들었던 것이지만… 그냥 두면 잘 잔다고 말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혔을 뿐…


하루는 고여사님과 막냉이, 단 둘만 남기고 도통이와 산책을 다녀왔다. 나는 혼자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막냉이를 믿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고여사님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어있었다. 뭔가… 몹시 힘든 일이 있었음에 분명했다. 의아했다. 왜지? 막냉이랑 단둘이 있으면 딱히 얼굴이 벌게질 일이 없었을 텐데.


그때 고여사님께서 의기양양하게 말씀하셨다.


 “국주야!! 내가 막냉이를 재우는 비결을 알아냈다!”


아니… 그냥 눕히면 잔다니까요…

그게 비결이 있을 리 없지만 고여사님께서 내놓은 회심의 비결은 이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주야, 아기를 이렇게 팔다리를 싸서 김밥처럼 돌돌 말아놓으면 잘 잔데…”


아?! 아니에요. 이거 아니에요. 엄마.

팔다리를 싸놓는 건 신생아들한테나 하는 거고…

쟤한테 하면 그냥 포박이잖아요… 그리고 김밥이라뇨. 이것(?)도 사람인데… 그리고 막냉이는 저렇게 돌돌 말아놔서 잘 자는 게 아니라 돌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잘 자는 거예요. 아마 저 상태에서 한 바퀴 굴려도 잘 거예요. 막냉이는 그런 놈이에요. 그래서 엄마한테 맡긴 거라고요.


하고 말하려는 순간 고여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응! 저렇게 싸서 잠들 때까지 안고 돌아다녔어.”


 왓?!?! 저 무거운 걸 싸서 안고 돌아다녔다고요?

 얼굴이 벌게지시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등에는 땀이 흥건하면서도 기쁨에 넘쳐있는 고여사님의 모습이 이제야 해가 갔다. 그래서…


 ‘쟤는 그냥 눕혀놔도 잘 잔다.’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당분간은 뜻대로 생각하시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듣지도 않으시고…


그리고 그 후부터는 막냉이와 고여사님을 단둘이 두고 나가는 일을 자제했다. 이유 없이 괜히 둘 다 고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누가 그랬어?? 둘째는 빠르다고?!?

500ml 우유 원샷하는 5세 막냉이
그렇게 느릿느릿 여유롭게 자란 막냉이는 지금도 느립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아가들,
느린 게 아니고, 여유로운 거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느려도 괜찮아요.
언젠간 엄마가 올려다볼 날이 올 겁니다.
그때는 지금이 그리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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