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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01. 2021

둘째가 태어나버렸다?!?

니가 막내이길 간절히 빌며…

도통이(첫째)이랑 한 달 이상 친정에 머물고 있었을 때였다.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가 있었다. 고여사가 무척 괴로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빠릿빠릿 올라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친정과 집까지의 거리였을 것이다. 경기도와 전라남도… 그것도 남해가 보이는 땅끝이었으니 휴게소를 거르고 곧장 가도 장장 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서 신랑 역시 아내와 아이가 있는 처가에 자주 올 수가 없었다. 그 한 달간 딱 한번 왔다.


우리 부부는 한 달 만에 재회한 것이었다.

그때 이미 신혼은 아니었지만, 기간이 무려 한 달이었다. 부부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헤어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처가에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잠시 마실을 나왔다. 그냥 편하게 모텔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우리는 차를 몰고 외진 산속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토리는 거기서 생겼다.

새로운 아기가 생겼음을 알고 가족 전원이 당황했다. 나는 ‘또?’ 이런 생각이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와는 결이 다른 걱정이셨다. 아마 내 예상보다 더 깊은 시름에 잠기셨던 것 같다. 하루는 고여사가 몹시 진중한 얼굴로 물으셨다.


 “국주야, 너 그때.... 여 와있었잖여.“

 “응. 그랬지.”

 “근디 워떠케… 아가(애가)...... 짐서방이랑(김서방이랑) 그랄 짬이(그럴 기회가) 읎었을텐디.”


엇! 그때 알았다. 고여사가 무엇 때문에 그리 시름에 빠지셨던 것인지. 사태가 이렇다 보니 상황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엄마, 뭔 생각을 하는겨. 그럴 기회가 왜 없어? 그때 김서방 왔을 때, 도통이 맡기고 우들(우리) 나갔다 왔자녀. 그때......”


고여사의 얼굴에서 시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호기심이 밀려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딸을 못 믿어서야.


 “어서?” (어디서?)


나는 ‘쩌기...’ 라고 하면서 머뭇머뭇 손가락으로 동네 뒷산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손가락 방향이 공교롭게도 이모네 집 방향과 겹쳤다. 그걸 본 이모가 화들짝 놀라셨다.


 “뭐여? 우리 집에서?”


아니, 이 자매가 왜 이래요? 도대체 나를 얼마나 미쳤다고 생각하는겨?


“내가 왜 이모네 집에서 그런 짓을 혀?”

“그라믄 저짝이(저쪽이) 어딘디? 손꾸락 말고 주디를 써.“

 “00 산 야외 주차장! 왼쪽 맨 앞 코너 자리!”

 “아, 거기. 거 사람도 읎고 좋재. 주차비도 읎고.”

 “그려, 그 자리가 쩰 들어강께 아늑하고 좋았겄네.”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자매는 납득하셨다. 주차비라는 단어가 걸리지만 그냥 넘어가는 걸로… 돈 아낄라고 그런 거 아닌디.


그래서 우리 둘째의 태명은 차에서 생겼다고 해서 ‘차순’이었다. 사람들은 차순이의 차를 둘째 次라고 생각했지만, 수레車였다. 次순이가 아닌 車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딸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뒤에 ‘순’을 붙였다. 물론 세상사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 흔한 입덧도 없었으며, 소화가 안 되거나 체한 적도 없었다. 다리에 쥐가 나본 적도 없었고, 막달까지 방방 뛰어다녔다. 초기엔 운동을 삼가라 하셔서, 15주 차부터 임산부 요가라는 걸 했다. 그런데 요가 선생님께서 동작 시전을 보일 때는 항상 나를 불러서 시키셨다. 내가 없는 날은 시전도 없었다. 다시 말해 자타 공인 임신 건강 체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7개월째 접어들자 담당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아지셨다.


 “김국주 산모님, 아기가 이미 3.5킬로예요. 이대로라면 다음 달에 4킬로가 넘을 것 같아요. 산모님이 양수도 충분하고 하도 건강하셔서. 이제 그만 먹고 운동 좀 하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남한산성 등반을 시작했다. 그만 먹으라는 말씀은 뇌에서 지웠다. 수박만한 배를 안고 남한산성을 매주 주말마다 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남한산성이 싫다. 그날도 우리는 남한 산성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가던 젊은 커플이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이런 대사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오빠앙, 성희 힘들어서 더 이상 못 가겠떠염.”

 “에구 우리 댜기, 내가 업어두까영??“


이놔… 니들 뭐 히말라야 등반하니? 고만 앙앙 거리고 썩 비키거라. 우리는 슬쩍 옆으로 돌아 그 커플을 앞질렀다. 그들은 이미 만삭인 내 남산만한 배와, 아이를 바벨처럼 목에 걸고 힘차게 오르는 코끼리 같은 내 신랑을 보고 그 입을 다물었다. 나약한 젊은이들 같으니…


매일 요가에 매주 등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양수가 많아서 아이가 편안함을 느껴서 안 나오는 거라고… 누가 그랬어? 둘째는 일찍 나온다고.


마지막 한 달간 가진통, 배뭉침 증상이 반복되었고,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는 점점 강도도 세지고 주기도 짧아졌다. 자연 진통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도통이를 유도 분만하다가 저승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기에 유도 분만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41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그 날,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는 쑥쑥 자랐고, 나는 유도 분만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날은 정기 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입원 준비물을 모두 챙겨서 갔다.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김국주 산모님. 지금 양수도 충분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가 노닐기에 좋은 환경이에요.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도 될 것 같은데, 자연진통을 더 기다려볼 것인지, 아니면 오늘 유도분만을 할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산모님이 선택하세요.”


어우, 그 놈의 양수. 삼국지에서는 양수가 계륵 때문에 깝치다 조조한테 죽었건만, 나는 양수 때문에 죽게 생겼다.


 “유도 가죠, 선생님. 얘 4킬로가 넘어간다면서요.”

 “어머님은 둘째시니까. 게다가 첫째도 크게 낳으셨고.”


 “선생님, 아무리 두 번째라도 똥꼬에서 멜론 빼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그 멜론이 수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유도 분만을 준비하는 도중, 오전 11시에 이슬이 비쳤다. 내진을 하니 이미 2.5센티가 열린 상태였다. 뭐지? 2.5센티가 열렸는데 진통이 없었단 말이야? 이게 둘째의 위력인가?! 입원하자마자 촉진제를 투여했고 정오부터는 촉진제를 줄였다. 나는 그때 짐볼을 타며 폰겜을 하던 중이었다. 폰겜을 하면 많은 분들께 톡으로 하트가 쏴지게 되는데, 보통은 씹히거나 하트로 답을 받는다. 하지만 그 날은 다른 답들이 돌아왔다.


 “이런 미친... 너 지금 진통 중 아냐?”

 “돌았어? 왜 분만 중에 하트질이지?”


그래서 책을 읽었다. 그 후 4시간 동안 별다른 진통은 없었다. 이거 촉진제가 제대로 들어가는 거 맞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다른 산모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독서를 했다. 그때 몹시 위급해 보이는 산모가 이동식 침대에 실려왔다. 간호사들은 분만실이 없다며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내 분만실을 빌려줬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 산모는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분만실에서 나와서 이동 침대 위에서 읽던 책을 계속 읽었고 내 분만실을 빌렸던 산모는 예상대로 빠르게 해결하고 나왔다.


오후 4시쯤 관장을 했고, 양수가 터졌다. 동시에 허리를 쥐어짜는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 진통이 진짜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한번 겪어봤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다고 엄살을 피워 4시 반에 무통 시술에 들어갔다. 시술을 하는 내내 무통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 선생님을 혼내셨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에혀, 직장 생활 힘들죠? 오후 5시쯤 5센티, 6센티가 열렸고, 무통 천국 속이라 진통은 없었다. 그리고 오후 6시쯤 무통을 중단하고 무통 선생님께서 퇴근하셨다. 그리고 오후 6시 반쯤 7센티가 열리고 무통빨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 진통이라는 것이 사이클이 있어서 쉬는 텀엔 그래도 웃을 수 있다. 게다가 신랑이 지속적으로 정신나간 드립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 7시까지 우리 가족분만실에서는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났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분만실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셨다.


 “똥 마려우면 호출하세요.”


그래서 정말로 똥 마려울 때마다 호출했고,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왜인지 화를 내셨다.


“진짜로 똥 마려울때마다 부르시면 어떠케욧!!”


거 똥 마려우면 부르라면서요?!? 사람 참 이상하네…


오후 7시부터는 옆으로 누워서 힘주기 연습을 했다. 아가가 안 내려올 땐 옆으로 누워서 힘주면 더 잘 내려온다고 했다. 중력이 그렇게 작용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이때부터 분만실에서 웃음소리가 멈췄다. 신랑이 아무리 개드립을 쳐도 들리지 않았다. 오후 7시 20분쯤부터 아기가 내려오는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옥의 20분 후,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아기의 머리가 너무 커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세 번을 반복했다. 그리고 세 번째에 드디어 머리가 완벽하게 나왔다. 원래는 아기 머리가 나오면 그 뒤로 몸까지 쑥 나온다. 그런데 울 아기는 덩치가 워낙 컸다. 그래서 어깨를 뺄 때 한번 더 힘을 줬다. 무슨 아기 어깨빨이… 그리고 회음부 절개… 아프지는 않았다. 마취를 한다고 들었다. 도통이를 출산할 때는 영혼이 출가 상태였다. 그런데 둘째 때는 몹시 제정신이었다. 힘주면서 보았던 벽걸이 액자의 그림까지 생각난다.


오후 7시 50분, 둘째가 탄생했다. 4킬로가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몸무게는 생각보다 무난한 3.8킬로였다. 아기는 내 배 위에 올려졌고 후처치가 시작되었다. 태반 빼기와 회음부 봉합. 역시 아프지 않았다. 이로써 내 인생의 임신과 출산은 끝이 났다. 모든 게 끝났다는 기쁨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카카카칵칵.”


그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신랑이 의사 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분만하다 정신분열이 올 수도 있는 건가요?”

 

의사 선생님께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다.


 “아뇨. 산모님 성격이 원래 저러신 거 같던데요? 모르셨어요??“


롸?!? 뭐 어쨌든…

이날 나의 둘째, 막냉이가 태어났다!!!!

니가 막내이길 바라며…


내 사랑 막냉이 안녕? 반가워
덧붙_ 출산 큐잉

저는 자연 분만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속골반이 작았고요. 유도분만으로 시작을 한 터라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신랑이 동의서에 싸인까지 해놓은 상태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힘으로 뽑아냈습니다.

우선 산고는 누워있을 때가 가장 아픕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앉거나 서서 견디는 편이 낫습니다. 그 강도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이 큽니다. 맨몸으로 스쿼트를 하는 것과 바벨을 짊어지고 점프 스쿼트를 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줄 때는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똥 싸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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