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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07. 2021

성향이 정반대인 두 아들, 육아 난이도도 다를까?

인디 밴드 <가을방학>의 노래 중에 <사하> 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에는

이 계절이 추운 것은
태양이 멀어서가 아냐
봄이 없는 나라로부터
부는 바람 때문이야

이런 구절이 있다. 노래를 들으면,


 ‘와, 아름답다. 감성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저 구절은 굉장히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쓰인 글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이 추운 이유는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북서풍 때문이며, 지구와 태양의 공전 거리는 기온과 상관이 없다. 상관이 있다면 태양의 고도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과에 공대 출신이라 저렇게밖에 생각을 못한다. 그러면 여기서 합리적인 의문 하나… 이 지루한 과학 상식을 어떻게 저렇게 감성적으로 쓸 수 있을까? 과연 글에 과학 상식과 감성을 동시에 넣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 아이들 역시 이성과 감성을 한 명씩 사이좋게 나누어가졌다. 막냉이는 예민하고 감정적이며, 도통이는 둔감하고 이성적이다. 이렇게 성향이 다른 아이들의 육아 난이도는 어떨까. 어느 쪽이 더 빡셀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대사는 이것일 것이다.


 “배속에 있을 때가 편한겨.”


임신 상태에서는 저 말의 무게가 참으로 가벼이 느껴졌다. 그래서 피식 흘려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육아가 꿈같이 환상적으로 흘러갈 거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것과 겪는 것은 달랐다.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었다. 저 짧은 문장에는 그들의 고난이 강하게 함축되어 겪어보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 위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 그럼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일까.

묻는다면 당연히 아가가 아플 때라고 대답하겠지만, 그건 일상이 아니니 제외하고… 나를 가장 힘들 게 한 것은 그들의 밥과 잠이었다. 아니 여기서 술만 추가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품목들이거늘. 저들은 왜 저 두 품목을 가장 꺼려하는 것일까.

나도 모른다! 모르기에 환장의 육아 랜드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도 안 통하는 저 짐승들이랑 씨름을 하는 것이다. 동화책을 보면 이런 장면이 종종 나온다. 엄마가 아가를 품에 안고 그림책을 보여주면 아기가 스르르 잠드는 장면… 그 부분은 검열되어야 옳다고 본다. 그건 희망 고문이며 현실 기만이다.


아기들은 절대로!! 엉덩이를 통통 쳐서 자라고 한다고 자는 것들이 아니다. 놈들을 잠들게 하려면 여러 단계의 험난한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부차적인 난관은 제외하고, 메인 절차만 보겠다. 게임을 하다 보면 npc들이 이런 말을 한다.


 “후훗, 여기까지 잘도 왔군.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번 층은 나 포세이돈이 지키고 있으니까.”


그렇다. 첫 번째 메인퀘스트가 바로 목욕이다. 나는 이성 도통이에게 명령한다.


 “도통아, 목욕하게 옷 벗어.”

 

그럼 이성 도통이가 대답한다.


 “엄마, 너무 자주 씻는 것은 물낭비인 것 같아. 환경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


어차피 고분고분 벗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너… 어제도 안 씻었잖아. 얼른 벗어.”

 “엄마, 옷을 벗으면 내 몸에 있는 열이 날아가서 더 추워질 것 같아.”


설득을 포기하고 힘으로 하기로 한다.


 “우리 도통이 좋은 말로 할 때 옷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갈까? 진짜로 열나기 싫으면.”

 “엄마는 나한테 좋은 말을 자주 하는 것 같아.”

 

이쯤 되면 내 정수리에서 열이 난다. 이제 진짜고 무력을 쓸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옷을 벗기려고 하면 이성 도통이가 반발을 한다.


 “아, 엄마! 이러지 마! 좋은 말로 한다며!”


이렇게 쌍방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어찌어찌 목욕 퀘스트를 클리어한다.


도통이가 반항 못 하던 시절

그럼 이제 감성 막냉이 차례이다. 역시 녀석에게 명령한다.


 “막냉아, 목욕하게 옷 벗어.”


결국 엄마가 지 형아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을 옆에서 봤으면 그냥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할 법도 한데...


 “싫어.”

 “하…. 이 새끼가… 너는 또 왜?”

 “옷 벗다가 내 배에 이쁜 거가 떨어지면 어떠케!”

 “롸?!?! 이쁜 게… 하… 뭔데?”

 “여기 있잖아! 이쁜 거 3개! 엄마가 이쁘다며!”

 

어차피 말이 통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니가 말하는 이쁜 거 3개가 젖꼭지 두 개랑 배꼽 한 개를 말하는 거라면…


 “쓰읍.... 하아....막냉아? 그것들은 절대 떨어지지 않아. 걱정 마.”

 “아냐!!!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몰라?? 그래… 상대는 5살짜리 아기다. 어른스럽게 행동하자.


 “엄마는 알아. 엄마를 믿어. 만약에 떨어지면 엄마가 다시 주워 줄게. 그러니까 말로 할 때 옷 벗자.”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쓰읍!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아니야! 목욕 안 하는 아기는 더러워. 아유. 우리 막냉이 더러워지겠네."


그 말을 들은 놈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엄마! 아기한테 그런 말 하는 건 바보 어른이야!”


타협이고 나발이고 이번에도 역시 힘으로 하기로 한다. 결국 강제 탈의가 시행되었고, 녀석은 늘 울며불며 광란의 목욕 타임을 보냈다.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왜 저것들은 좋은 말로 할 때 안 듣고, 매일매일을 대환장 타임으로 채우는 것일까.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 안 들어간다고 울고불던 녀석들은 한번 들어가면 또 안 나온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다. 하…

막냉이가 반항 못 하전 시절

이제 드디어 아이들을 재우려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책을 읽어준다. 나는 미래의 작가의 감성을 담아 아이들 책은 꽤 진정성 있게 고르는 편이다… 아니, 편이었다. 이 날은 <어린 왕자> 였다. 그런데 소행성 B612가 등장하자 이성 도통이가 반발했다.


김민지 일러스트 <인디고 출판사의 어린 왕자>

“엄마, 저렇게 작은 별은 중력이 부족해서 저런 정확한 구모양을 만들 수 없어.”


신랑이 저렇게 말했다면 명백한 시비였겠지만, 9살짜리 아이가 아닌가. 그래서 최대한 다정하게 응답해 줬다.


“그...래? 그럼 어떤 모양인데?”

“길바닥에 있는 돌 모양이겠지. 그리고 저런 의자가 박혀 있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러자 감성 막냉이가 물었다.


 “엄마, 어린 왕자는 얼마나 어려?”


작가의 감성이고 나발이고 어린 왕자는 포기했다. 그냥 아이들용 동화책을 읽어줬다. 그 내용인즉슨 외계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눈물겨운 우정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막냉이가 물었다.


 “형아!! 외계인 친구한테 편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성 도통이가 대답했다.


 “글쎄… 편지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다 타버릴 텐데 그 편지가 도착이 가능할까?“


 그랬더니 감성 막냉이가 대답했다.


 “우와…. 편지 속상하겠다.”


이번엔 좀 더 대중적인 것을 읽어줬다.

토끼와 거북이였다. 너무 하향패치된 레벨에 조금 뾰로통해진 이성 도통이가 투덜거렸다.


 “거북이는 이렇게 이기면 기분 좋을까? 이게 이긴 거야?“


그러자 감성 막냉이가 말했다.


 “우와… 토끼 속상하겠다.”


막냉이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주는 도통이 Before Corona

상횡이 이러하니 이성 도통이는 감성 막냉이에게 툭하면 뭔가를 살명해 주고 싶어했다.


 “막냉아, 하늘이 파란 이유태양에서 오는 빛이 지구의 대기에 부딪치면서 파란색이 가장 많이 퍼져서 그런 거야.”


그러면 막냉이는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만 골라 듣고 나에게 이렇게 전달해 준다.


 “엄마! 형아가 그러는데, 하늘이 파란 이유는! 태양이 지구랑 부딪쳐서..... (그 뒤가 생각이 안 나서 잠시 머뭇거림) 멍 들어서 그런 거래! 지구 속상하겠다. 그지??“


그런데 이런 이성 도통이의 성향이 가끔 곤란할 때도 있다. 문제는 산타에서 발생했다. ㅇㅇ. 생각하는 그 산타 맞다. 녀석이 생각하는 산타는 그야말로 비과학의 집약체였다. 일단 날아다니는 썰매부터가 비과학적이지만, 뭐... 썰매가 날 수 있다고 쳐도 그 썰매의 속도 또한 넘나도 비과학적이다. 산타 한 명이 단 하룻밤에 전 세계의 집을 다 돈다? 빛의 속도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산타가 여러 명이고 담당 구역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썰매를 코가 빛나는 외톨이 순록이 끈다. 그러자면 순록이 날아다녀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순록이 날 수 있다고 쳐도 산타는 우리 집의 현관 비밀번호를 뚫어야 한다. 시작부터 도착까지 비과학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산타가 존재한다고 설득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녀석에게 말했다.


 “산타 없는 거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마.”

 “왜?”

 “니 동심은 깨졌어도 친구들 동심은 지켜줘야지.”

 “동심이 중요해? 진실이 중요해?”


아하? 이럴 땐 괜히 돌려 말하면 역효과 난다.


 “다른 엄마들이 싫어해. 엄마도 지켜줘.“

 “그래. 진실보단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니까.”


아?!? 어쨌든 협상 완료.


사실 도통이의 성향이 이러한 것은 내 책임이 없지 않다. 녀석을 임신하고 남들은 연예인 사진으로 태교 할 때 나는 신랑 사진으로 태교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빌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신랑이랑 똑같이 생긴 아이가 태어나게 해 주세요.”


그냥 그땐 신랑이 젤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지 애비 유전자 몰빵 도통이가 태어났다. 그러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래서 도통이 교육은 신랑에게 일임했다. 여보야, 얘는 아무래도 오빠 유전자만 들어간 거 같아.


그런데 막냉이는 도대체 누굴 닮은 걸까?

하루는 녀석의 배를 툭툭 턴 후에 말했다.


 “앗, 우리 막냉이 배에 있던 이쁜 거 다 떨어졌다.”

 

그랬더니 녀석이 울기 시작했다.

 

 “이쁜 거 없어져서 엄마가 나 안 이뻐하면 어떠케!”


아?!? 이런…

아가, 세상이 두쪽이 나도 그럴 일은 없단다. 엄마가 어떻게 너희들을 안 이뻐하니.


그럴 수 있다면 애초에 너희랑 씨름을 안 했겠지.


Before Corona
덧붙_ 크면 성향이 바뀔까?

하루는 막냉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달은 태양의 나침반이야.”

응? 나침반? 형아랑 붙어있더니 성향도 바뀌나?

 “와… 우리 막냉이는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 형아가 가르쳐줬어?”

 “아니? 달이 가면 태양이 오자나. 태양이 오는 길을 달이 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나침반이지.”

ㅇㅇ.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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