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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Mar 26. 2024

해남(海男)과의 인터뷰

-『몰인설』이 말하고 있는 직업과 나 -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파스칼 -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서로의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평판, 직업적 특성 등까지 염두에 두어서일 것이리라. 필자는 소시적, 사람의 마음 즉 본질이 중요한 것이지 직업을 따지는 것은 속물근성이 배어나오는 것이거나 남의 시선을 필요이상으로 의식한 비(非)주체성의 발로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에 있어 ‘직업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사유의 용암이 안정적으로 서서히 응고되어감을 느낀다. 아니, 그 사유는 이미 냉각을 마친 화강암이 되어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용암과 화강암 채석장.  그냥 신기하다.  나의(우리의) 가치관도 이렇게 경화되어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죽천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그의 문집인 『죽천집(竹泉集)』에서 몰인설(沒人說)을 통해 자신과 직업을 되돌아보고 있다. 남자 잠수부인 해남(海男)을 직접 인터뷰함으로써 당시 거제도 잠수인(沒人)의 외양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표현하였고, 본인과는 대조적으로 해남의 자기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자신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음을 밝히고 있다.  


죽천집 권6 잡저조  몰인설(沒人說) 원문 (좌측)

   


당신이 하는 일의 이득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이 천한 일을 어찌 묻습니까

바다는 죽음의 땅이고전복은 반드시 바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한 그물이 아닌 갈고리로 잡을 수 있으며반드시 바닥까지 들어가야 합니다숨을 멈추고 잠깐 동안 머무르며 찾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중략)


또 바다에는 사람을 잘 무는 나쁜 고기들도 많으며바다 속은 아주 차가워서 비록 무더위에 잠수하는 사람들도 항상 추워서 오들오들 떠니 잠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이런 까닭에 십여 세가 넘으면 얕은 데서 익히다가 조금씩 깊은 데로 갑니다

이십 세가 되어야 전복잡이가 가능하고사십이 넘으면 그만둡니다

또한 잠수하는 사람은 항상 바다에 있으니 머리카락이 타고 마르며살갗은 거칠고 얼룩얼룩합니다그 처지와 모습이 일반인과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동료로 삼지 않고 천하게 여기므로이 일의 괴롭고 천함이 이와 같습니다

관청에 바치는 것도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하는데 어찌 이득이 있겠습니까?”      


    

 조선 후기에 신분제가 동요하기는 하였으나, 그 동요에 관계없이 언제나 미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해남은 위와 같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푸념하고 있다. 일견 불평과 한탄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틀린 말은 아닐 진대, 필자는 최근 주위에서 바로 위와 같은 해남을 만났던 것 같은 ‘데쟈뷰(dejavu)’ 현상을 느낀다. 

이러한 기시감(旣視感)은 사실 예전부터 종종 있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며, 장점보다는 그 반대에 몰입하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전문직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환경에서 평생 같은 일을 반복하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업가를 부러워한다. 반면 매달 직원들 급여일을 두려워하는 사업가는 맘 편한 급여소득자나, 갑의 위치에 있을 것 같은 공무원을 동경하기도 한다. 또 급여소득자나 공무원들은 사업가와 같이 화끈한 인생을 꿈꾸며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를 넘어가는 즐거운(?) 상상을 매일 하지만 울타리 밖은 사파리일 뿐이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직업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불편과 고통에만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 최소 10위 안에는 들고 싶은데 모두 쉽지가 않구나.



그런 즉혹시 병이 나면 어쩌는가?  어찌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가?”     


잠수부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말하였다.    

 

무슨 일이 잠수부보다 편한 것이 있겠습니까

잠수부와 같은 사람은 참으로 괴롭고 천하나익숙해지면 물속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들어가 살피면서 머무를 수 있습니다.     (중략

길을 돌아다니면 잔물결을 치면서가벼이 물거품 위에 머무르다가 빠르게 들어갔다가 재빨리 나오니 물길의 평탄하기가 땅 위의 큰 길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살펴보다가 찌르는 것이 빠르니 전복을 잡는 것이 고동이나 조개를 잡는 것보다 어렵지 않습니다또 쇳소리를 울리며 물에 들어가면 사람을 무는 나쁜 고기들을 물리칠 수 있고불을 피워 놓아 물에서 나가면 추위에 떠는 것을 풀 수 있습니다

관청에 물건을 바치고 다행히 남는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죽을 끓여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입니다

먹고 힘을 내어 일을 하니 가정이 화락(和樂)합니다.

사람들은 비록 나를 천하게 여기나 나는 또한 귀하고 천함이 있는 줄을 모릅니다.        


  

 위의 몰인(몰인은 잠수부를 뜻한다) 또한 김진규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들이 동경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자신에게 적합한지 깨달으며 새삼 만족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천직이다. 한창 진로를 모색하여 찾아가는 청년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시 거제도로 유배를 온 김진규는 아래 잠수부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깨달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직업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또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내가 고을에서 보니 우리 무리들은 그 즐거움이 항상 편안하며벼슬하는 사람들이 꾸짖으며 와서 몸을 묶더라도 그 사람 또한 그 하나일 뿐입니다

어느 일이 더 위태롭고 편안하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구별했을 것이니 어찌 그대의 일을 후회하지 않으면서 나보고 도리어 이 일을 버리라고 깨우칩니까.  그만둡시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 땀에 젖고 놀라서 입이 벌어져 오랫동안 대답할 수 없었다.


해녀가 물질하여 온 조개류를 판매하는 장면


머구리(잠수) 장비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  잠수장비는 우주복과 비슷하게 보인다.


 ‘몰인설’은 거제도로 유배를 온 김진규가 남자 잠수부, 즉 해남과의 대화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벼슬길의 어려움을 깨닫는 내용이다. 하지만 해남이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며 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일에 긍지와 만족을 가질 것을 권하는 고전수필(說)이라 할 수 있다.    


       

 오호라, 옛사람들이 벼슬길을 바다에 비유했으나 나는 믿지 않았다. 

지금 잠수부의 말로써 시험하니 벼슬길의 위태로움이 바다보다도 심하구나

그 말을 기록하여 일의 택함이 잘못된 것을 슬퍼하고, 훗날 벼슬길에 오르기를 탐하는 사람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직업은 곧 나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제야 옛 어른들이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이름 앞에 직업을 ‘아호(雅號)’처럼 붙였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습관은 천성을 이기듯이 직업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할 것이다. 



불후의 명작 '닥터 지바고'  요즘 의대증원 관련하여 우려가 많다.  과연 지바고라면 어떻게 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 본래 의미의 해남(海男)은 존재하지 않지만, 군인으로서 세계 최강의 해군해난구조대(SSU)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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