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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가 망친 나의 오늘

by 콩지

각지고 작은 가방이 필요했다. 겨울 코트와 어울리는 차분한 색, 적당한 가격, 촬영할 때도 맬 수 있게 브랜드 로고나 글씨가 적히지 않은 가방 등등 몇 가지의 조건을 달았다. 모든 소비에는 각자의 기준과 고민이 당연히 필요하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더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가장 완벽한 것을 사기. 그러니까, 이 모든 조건에 합당하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조건을 갖추면서도 그중 가장 완벽한 것을 사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10년은 맬 수 있을 만큼 클래식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덧붙였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친구의 집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고민 중인 가방 몇 가지를 보여주었더니 친구가 걱정하며 말했다. "완벽주의라는 감옥문을 나가며 알지?"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꺽꺽대며 웃었다. 이 문구는 코넬리아 마크의 <완벽주의에 작별을 고하다>라는 책의 서문에 적힌 말이었다. '그냥 가방 하나 사려고 했던 것인데, 나의 이 쓸데없는 완벽주의 습관이 또 나왔구나.'라고 깨달았다. 완벽주의라는 감옥문을 노크하며 오늘의 행복을 놓칠 때마다 이 말을 자주 외쳐주던 친구였다. 그리고는 사진으로 보내줬던 가방의 쇼핑 링크들을 자신의 카톡으로 싹 다 보내달라 말했다. 내일 점심까지 네가 가방을 사지 않으면 이 중 하나가 배송될 거고, 금액이 적힌 계좌번호를 보낼 거라며 나를 협박했다. 덕분에 나는 다음날 점심 전까지 완벽하진 않지만 한 두 해는 들만한 적당한 가방을 살 수 있었다.


완벽한 신발을 사기 위해 3일 정도 백화점과 아울렛을 돌고, 두세 번의 환불을 해서야 적당한 신발을 사기도 했다. 약간의 디테일이 다른 두 개의 검정 코트를 들고 직원도 포기할 만큼의 시간을 고민하다 겨우 하나를 고르던 날도 기억이 난다. 다행히 아주 잘 입고 있다. 물론 실패한 적도 많다. 캐시미어 니트는 오래 입어야 하기 때문에 색을 잘 골라야 하는데, 작년에 나는 고민 끝에 이도 저도 아닌 색을 사버렸다. 옷장에서 볼 때마다 화가 나서 거금을 주고 산 니트를 호의를 베푸는 척, 엄마에게 줘버렸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완벽주의가 아닌 결정 장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소비에서 뿐만 아니라 연기, 작품, 취미, 운동, 연애 등등 모든 것에서 나는 완벽을 원하고 있었고 특히 '연기'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실수를 두려워하며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커지자 오늘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과거에 대한 후회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하지만 연기에는 완벽이 없다. 연기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완벽이란 것이 존재할까? 완벽한 엄마도 딸도 없고, 완벽한 삶도 완벽한 행복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지난 가을을 나를 혹사시키며 살았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정신을 차림에 감사할 뿐이다.


아직 완벽주의라는 감옥문을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헛된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을 지키는 방법이 오늘의 나에게도 사랑과 가능성을 주는 것이 맞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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